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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계급, 소외, 차별 : 마르크스주의는 계급, 소외, 여성·성소수자·인종 차별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마르크스주의, 착취·소외·차별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이론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는 마르크스의 말에 ‘왜?’라고 토를 달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하다. 오늘날 이 세계의 잔혹함은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은 12년째 OECD 회원국 중 자살률이 1위인 나라인데, 얼마 전 콜센터의 실적 압박으로 괴로워하다 목숨을 끊은 19살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고3 실습생)는 그 한 사례일 뿐이다. 우리는 ‘공부할수록 빚지고, 일할수록 불평등해지고, 갈수록 불안정해지는’ 불의한 사회를 매일같이 맞닥뜨린다.

이런 사회에 대한 분노와 저항도 자라 왔다. 박근혜를 탄핵시킨 운동도 그 중 하나였는데, 이 운동의 근저에는 보수정권 아래 더 심해진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그러나 불평등과 차별의 원인이 무엇이고, 세계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전략)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이 뒤따른다. 차별에 분노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 세계의 착취, 소외, 차별이 별개로 작동하고, 따라서 이에 맞선 각각의 저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최근 한국에서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페미니즘 서적들을 보면, 여성 차별을 착취 문제와 체계적으로 연결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차별의 현실을 잘 폭로할지라도 대체로 차별의 원인과 대안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지 않거나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제프리 디스티 크로익스 외 지음, 책갈피, 344쪽, 15,000원

그 점에서 이 책의 출간이 더욱 값지다. 이 책은 1부에서 인간이 자본주의에서 겪는 고통인 계급(착취)·소외·차별에 대해 이론적으로 다루는데, 각각의 개념과 작동 원리, 그리고 관계를 설명한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해방의 열쇠를 구하는 것과 같다.

2부에서는 여성·성소수자·인종 차별의 구체적 현실을 다룬다. 마르크스주의는 차별을 단순하게 자본주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2부에 실린 글들은 마르크스주의야말로 각각의 차별을 더 풍부하게 설명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 글들의 또 다른 장점은 여성·성소수자·인종 차별에 맞선 투쟁의 경험을 일반화하고 차별 반대 운동에서 등장한 여러 정치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으로 분석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 중 하나가 ‘억압받은 사람만이 그 억압에 맞서 잘 싸울 수 있다’는 정체성 정치인데, 이 정치는 형태를 달리해 한국의 운동에서도 꽤나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에 대해 섀런 스미스는 이 정치의 배경과 정치전략을 예리하게 비판하고 차별에 맞서 어떤 종류의 운동을 건설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계급·소외·차별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설명은 무엇보다 역사적이고 유물론적이다. 즉, 마르크스주의는 그것들이 영원불변하거나, 사람들의 의식 혹은 심리에서 비롯한다고 보지 않았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에서는 해방의 전망도 현실적이다.

우선 계급의 개념을 살펴보자. 사회 주류의 견해는 ‘마르크스의 계급론은 너무 단순해서 복잡한 현대 사회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가 계급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온갖 차이를 밝히고 분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핵심 분단선이 어디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다.(조셉 추나라)

저자들은 마르크스의 계급 개념이 무엇보다 “착취 관계”라고 강조한다. “계급사회에서 사회 구성원 대다수는 노동을 해야 하고, 이들의 노동 덕분에 소수는 노동의 부담에서 해방된다. 이 소수가 다수에게서 부를 뽑아 내는 방법이 바로 착취다.”(조셉 추나라)

왜 계급인가

계급이 착취 관계라는 점이 중요한 이유는, “계급 간 적대와 계급투쟁의 발생 가능성” 때문이다. 즉, “착취 관계를 둘러싸고 언제나 투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조셉 추나라)

계급사회에서 피착취 노동은 사회의 대다수 사람들, 즉 생산자들이 자기 노동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는 과정이다. 소외된 노동은 소외된 사회, 소외된 세계를 만들어 낸다.

보통 소외(의 원인)는 특정 심리 상태로 여겨지는데, 마르크스는 소외의 원인을 물질에서 찾았다. 마르크스주의에서 소외는 인간이 자신의 삶, 자신이 사는 사회, 자신이 만든 생산물, 자신을 둘러싼 외부 세계에 대해 통제력을 잃은 객관적 상태를 말한다.

오늘날 핵 재앙, 지구온난화, 무기 경쟁, 경제 위기 등 우리의 노동 생산물이 우리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소외 때문에 우리의 삶은 더 고독하고 외로워진다. 사람들은 소외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기 위해 쇼핑, 여행, 게임 등 온갖 개인적 취미를 찾아 매달린다. 오늘날 “자존감”과 관련한 심리학 책이 베스트셀러에서 빠지지 않는 이유도 이와 관련 있다.

그러나 주디 콕스는 “우리의 고통은 자율성 결여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 구조(생산양식)에서 비롯한 것”이어서 “소외의 근절은 사회 전체의 변혁에 달려 있다”고 설명한다.

주디 콕스는 소외와 관련해 “특별히 논쟁적”인 분야인 정신적 활동과 예술, 노동 밖의 활동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히는데, 그 중에서도 예술에 대한 설명이 특히 흥미롭다.

‘마르크스주의 차별론’에서 애비 바칸은 착취와 소외, 차별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명쾌하게설명한다.

애비 바칸은 여성, 성소수자, 인종 차별의 역사적 기원은 다 다르지만, 차별은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계급 지배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차별은 “모든 층위에서 계급 분열을 흐리고 같은 계급 내에서 새로운 분열을 조장”하면서 “착취라는 더 근본적인 불이익을 감춘다.” 그래서 “차별은 계급 지배에 도움이 되고 사회적 해방을 위한 계급투쟁의 발목을 잡는다.” 마르크스주의가 차별이 계급을 가로질러 적용되더라도 차별은 노동계급이 해결할 문제라고 주장해 온 이유다.

애비 바칸은 러시아 혁명에서 볼셰비키가 한 구실을 통해 노동계급이 차별을 극복하는 데도 왜 혁명 정당이 필요한지를 보여 준다.

그런데 착취, 소외, 차별의 경험에서 마르크스는 무엇보다 착취 경험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소외와 차별은 사람들에게 무력감과 파편화의 압력을 가하지만, 착취의 경험은 계급을 단결시키기 때문이다. 착취는 “노동자들을 집단적 공동 행동으로 내몰고 노동자와 사용자가 서로 대립하게 만든다.” “착취의 핵심은 … 자체 모순 때문에 해방을 성취할 수 있는 인간의 잠재력, 즉 노동계급의 자주적 행동을 보여 주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착취·소외·차별이 자본주의 계급 지배와 체계적으로 연결돼 있고 착취가 고통일 뿐 아니라 변혁의 잠재력을 제공한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자본주의 체제의 변혁이 가능하고 착취·소외·차별에 맞선 투쟁은 체제 전체에 맞서는 변혁적 운동의 일부가 돼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착취·소외·차별에 맞선 투쟁에는 항상 여러 정치가 경합했다. 그런데 자본주의 소외 때문에 이 운동들에서 보통 더 유력한 정치는 개혁주의와 정체성 정치였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함께 운동을 건설하면서 참을성 있게 이런 정치와 논쟁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인간 해방, 즉 착취·소외·차별로부터의 해방에 관한 과학이다.”(애비 바칸) 우리를 갈라 놓는 차별이 어디서 비롯했는지를 이해하고자 하고, 어떻게 싸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꼭 읽길 바란다.

이 책의 저자 중 하나인 제프리 디스티 크로익스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를 변혁하려면, 우선 세계를 철저히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은,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여러 개념에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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