뭍으로 올라온 세월호  지금까지 드러난 진실만 봐도 처벌해야 할 책임자가 한둘이 아니다 

2016년 6월 27일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참사 당일 세월호에 제주 해군기지 건설용 철근 수백 톤이 실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람 수로 치면 4천~5천 명에 해당하는 무게다. 이 철근 수백 톤은 규정을 어긴 채 부실하게 고박됐다. “고박 규정을 다 지키면 적재 공간이 적게 나오기 때문”이다. 

화물을 과적하니 그만큼 평형수를 빼야 했다. 참사 당일 세월호는 화물은 최대 적재량의 갑절 이상, 평형수는 최소 필요한 양의 절반 이하를 실었다!

9월 1일 세월호 특조위는 한 발 더 나아가 세월호 자체가 애초부터 제주 해군기지 물동량을 노리고 청해진해운이 들여온 배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청해진해운의 영업 실적 자료를 분석해 보면, 2010년부터 청해진해운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으로 물동량이 증가할 것을 예상하며 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해 세월호 도입을 논의하고 결정했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에 선박 사용연령 제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연장했다. 덕분에 청해진해운은 일본에서 18년간 쓰던 낡은 배를 구입해 올 수 있었다. 오래된 중고 선박 가격은 새 여객선 가격의 10분의 1 정도였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본격화된 2012년부터 제주항으로 들어오는 주요 건설자재 입항 화물량이 급격히 상승해 2013년에는 갑절 가까이 폭증했다. 청해진해운은 허위 계약서까지 작성해 일본에서 사 온 배를 급하게 증개축했다. 이명박 정부가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며 기지 건설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였다.

이쯤 되면 정부가 과적을 눈감아 준 수준이 아니라 지시했을 공산이 크다. 

제주 해군기지행 철근 과적은 구조 방기와 규제 완화의 책임만이 아니라, 세월호를 침몰하게 만든 직접적 책임이 정부에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3백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는 위험천만한 친제국주의 정책을 위해 제주도로 가는 길이었던 것이다.

한편 청해진해운이 급하게 증개축한 세월호는 누가 봐도 비정상적이었다. 선수 우현에 있던 램프를 무턱대고 떼어 내면서 배 왼쪽 부분이 30톤 무거워졌던 것이다. 세월호 선원들은 이 배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배”라고 불렀다.

복원성도 심각하게 나빠져서 실을 수 있는 화물량은 절반으로 줄고, 넣어야 하는 평형수는 네 배로 늘어 버렸다. 이런 배로 과적 운행을 예사로 하며 이윤을 내 온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선급, 인천항만청, 인천해경 모두 세월호의 문제점을 눈감아 주며 허가해 줬다.

심지어 청해진해운은 2011년 해양수산부로부터 종합우수선사로 선정됐고, 2013년에는 인천해경·항만청 등의 합동 특별점검에서 비상훈련 실시 분야에서 ‘양호’ 평가를 받았다!

예견된 허술한 대처

정부는 생명보다 비용을 우선하는 수많은 정책으로 대형 참사를 사실상 ‘준비’해 왔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재난 관리에 대한 재정 투입은 마이너스 4.9퍼센트를 기록했다. 있던 것도 없앤 것이다. 선박 좌초 시 대처를 담당하던 지방 해양경찰청들의 수색구조계가 예산 축소로 없어졌다.

2012년에는 ‘수난구호법’을 개정해 해양 사고가 발생했을 때 구조·구난의 많은 부분을 민간에 맡기도록 했다. 해경은 “해양 사고는 연간 계속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장비를 계속 보유하고 있으면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민간하고 네트워킹을 잘 하면 예산이 절감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시스템 때문에 참사 현장에 출동했던 유일한 경비정 123정 대원들은 평소에 빠진 사람 가까이 가서 구명볼을 던져 주고 그것을 잡고 나올 수 있도록 하는 방법만 배웠다. 그마저도 2014년 2월 정기 인사로 직원이 바뀐 뒤에는 훈련이 없었고 김경일 정장도 그 일부였다. 

사고 현장에 도착하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한 대원이 123정 내 취사실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을 지경이었다.

정부의 ‘세월호 지우기’

정부는 세월호와 함께 ‘돈보다 생명’ 요구도 지워버리려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가 ‘진짜로’ 달라지려면 실제로 기업주들의 맹목적인 이윤 추구에 제동을걸고, 기업주들로부터 대대적으로 세금을 걷어 안전에 투자해야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그럴 생각도 의지도 없었다. 오히려 경제 위기에 앓는 소리를 내며 더 많은 알짜배기 공공 사업들을 시장으로 넘기라고 아우성치는 자본가들을 위해 국정을 운영했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참사를 낳은 여러 친기업·이윤 우선 정책들을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박근혜는 이런 정책들을 계속 강행하기 위해, 사람들의 기억에서 세월호를 지워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특히 ‘돈보다 생명’이라는 세월호 운동의 기치가 노동자들의 투쟁, 특히 철도나 의료의 공공성을 지키는 투쟁 등으로 연결될까 봐 염려했을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는 참사의 진상 규명을 회피하고 선체 인양을 차일피일 미뤘다. 해경에 대한 압수수색을 가로막았고,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누더기로 만들었다. 끈질기게 항의하는 유가족들의 도덕성을 훼손하려고 유가족을 ‘돈벌레’, ‘세금 도둑’ 취급하며 모욕했다.

동시에 또 다른 참사를 낳을 정책들을 지속했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의 대안이랍시고 내놓은 ‘안전 혁신 마스터플랜’에는 기업주의 돈벌이 방안이 가득했다. 정부는 안전 산업의 범위를 확대하고 안전 투자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했다. “공공부문이 안전 기능을 상당수 독점”하고 있다면서 안전 규제를 더욱 풀 것도 암시했다. 

심지어 재난 피해자들을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하기는커녕 민간 재난 보험을 활성화하겠다는 대책 아닌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민자철도사업 활성화 방안 등 의료·철도 민영화도 추진했다. 

그러는 사이에 메르스 참사, 판교 환풍구 사고, 가습기 살균제 참사,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조류인플루엔자(AI), 동탄 메타폴리스 화재 등 ‘제2, 제3의 세월호’들이 쉴 새 없이 발생했다.

책임자를 처벌하라

진상 규명을 위해 만든 세월호특조위가 정부·여당의 방해와 주류 야당의 배신 또는 무관심으로 강제 종료되자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진상 규명의 첫 발걸음도 못 뗐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확실히 기득권층의 진실 규명 방해 시도는 집요했다. 그러나 완벽하지는 못했다. 참사 이후 1, 2년 사이만 해도 참사의 원인을 신자유주의나 친기업적 정부 정책, 정경유착 등 큰 틀에서 분석한 서적들이 많이 나왔다.

세월호특조위도 궂은 방해를 뚫고 제주 해군기지행 철근 과적 사실을 밝혔고, 부실하게 고박된 화물의 이동이 침몰에 끼친 영향 등을 과학적으로 추정했다. 

그래서 진실이 1백 퍼센트 규명된 것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우리는 이 참사에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이 누군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세월호 참사 제1의 책임자인 박근혜가 감옥에서 수사를 받고 있는 지금, 박근혜가 구속 수사만이 아니라 강력하게 처벌받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 

세월호 수사에 외압을 넣은 황교안과 우병우, 유가족들에 대한 감시와 탄압을 지시한 김기춘 도 죗값을 톡톡히 치르게 만들어야 한다. 

이들을 뒤따라 수갑을 차야 할 해수부, 해경 책임자들도 한둘이 아니다. 검찰은 세월호 참사로 2백5명을 기소했지만, 그중 공직자는 단 53명뿐이었고 이 중 처벌받은 공직자는 딱 한 명, 123정 정장뿐이기 때문이다.

아직 국가 요직을 돌아다니며 떵떵거리고 사는 이들을 당장 잡아들여 처벌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당장 실현해야 할 정의 아니겠는가?

진상 규명의 주요 걸림돌이었던 이 자들을 처벌하고 권력에서 물러나게 한다면 참사의 진실을 찾는 길도 한걸음 가까워질 것이다.

이 기사를 읽은 후에 “세월호 참사: 과거 민주당 정부들은 좀 달랐을까?”를 읽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