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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왜 테러의 대상이 되는가?
유럽 국가들의 제국주의·인종차별이 진정한 원인

유럽연합의 공동 경찰 조직 ‘유로폴’은 2006년부터 유럽에서 일어나는 테러 공격을 조사해 해마다 보고서를 발표한다. 올해 6월에 발표한 ‘유럽연합 테러 활동 현황과 추세’를 보면, 지난해 유럽에서는 총 1백42건의 공격 시도가 있었다. 그중 실행까지 완료된 것은 47건이었다.

전체 공격 시도의 압도 다수인 99건은 “민족주의·분리주의”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분리주의 조직 ‘바스크 조국과 자유’(ETA)가 이런 유형의 공격을 한다. 반면, “지하드주의”, 즉 일부 이슬람교 관련 단체의 공격 시도는 13건이었다. 이것만 봐도 ‘이슬람=테러리스트’ 공식은 완전히 틀렸다. 그럼에도 언론은 무슬림이 저지른 테러를 부각한다.

한편 적어도 2014년부터는 “지하드주의” 관련 사건이 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올해 상반기까지 언론에 보도된 것으로만 6건의 공격이 있었으니, 올해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일부 이슬람교 단체와 관련된 테러 공격을 다루겠다.

테러를 보는 마르크스주의의 관점

마르크스주의는 원칙적으로 테러를 반대한다.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는 “국제 사회주의는 테러리즘에 항상 반대해 왔으며, 그것도 아주 비타협적으로 반대해 왔다”고 했다. 물론 그는 테러(우익이 저지르는 ‘백색테러’는 제외)를 감행하는 사람들이 품고 있는 체제와 지배자들에 대한 들끓는 적개심과 분노는 정당하다고 봤다. 또, 지배자들이 ‘인간 생명’ 운운하며 테러를 비난하는 것에는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럼에도 테러는 반대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마르크스주의의 노동계급 자력 해방 원칙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테러는 소수의 음모적 행동이므로 성공하든 실패하든, 사회 변혁의 진정한 잠재력을 가진 노동계급 대중은 수동적 관찰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우리가 테러 행위를 반대하는 것은 단지 한 가지 이유, 즉 개인적 복수가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 인간성을 짓밟는 모든 범죄와, 우리의 육신과 정신에 가해지는 모든 모욕들을 기존 사회 체제의 왜곡된 산물이자 왜곡된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 그리하여 왜곡된 체제에 반대하는 집단적 투쟁 속에 우리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의 불타는 적개심이 최고의 도덕적 만족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1

우리는 트로츠키의 주장을 기초로 삼아 한 가지를 더 고려해야 한다. 최근의 테러 공격이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015년 11월 프랑스 파리 연쇄 공격은 금요일 저녁 공연장과 식당 등에서 일어났고, 그 결과 1백30명이 죽고 더 많은 사람이 다쳤다. 그들의 다수는 일주일의 고된 노동에서 잠시 벗어나 휴식을 즐기려던 노동자와 그 가족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더더욱 비극적이고, 최근 유럽에서 일어나는 테러 공격에 더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배자들이 이슬람교(와 그 신자인 무슬림)를 테러와 직결시키며 인종차별을 부추기고, 테러 방지를 명목으로 민주적 권리를 제약하는 법을 제정하고, 보복을 이유로 중동에서 전쟁을 벌이는 것에는 절대 찬동할 수 없다. 바로 그런 행위들이야말로 테러를 낳는 뿌리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 미국 조지 W. 부시 정부가 테러를 근절하겠다며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벌인 “테러와의 전쟁”이 테러를 없애기는커녕 훨씬 빈번하게 만든 지금의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다. 테러의 원인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미국이 혼돈의 땅으로 만든 이라크에서 ‘이슬람 국가’라는 괴물이 태어났다

무슬림의 유입이 테러를 낳는가?

가장 흔한 상식은 ‘유럽에 무슬림 인구가 증가해서’일 것이다. 좀더 세련되게 말해, 문화와 전통이 생판 다른 사람들이 기존 공동체에 적응하지 못하며 갈등을 일으키고 종국에는 테러 같은 극단적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한다는 것쯤이 되겠다. 1950년에는 약 1천만 명이었던 유럽 무슬림 인구는 꾸준히 늘어 2010년에는 약 4천2백만 명으로 네 곱절이 됐으니, 얼핏 그럴듯해 보인다. 또, 최근 몇 년 동안 유럽에서는 난민의 대거 유입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공교롭게 그 기간에 무슬림이 저지르는 공격이 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직전 발표된 여론조사는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 줬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주간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편집자 찰리 킴버는 그 여론 조사 결과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당시 유권자의 42퍼센트, 탈퇴 투표 의향자의 65퍼센트가 이주민은 영국 사회 전체로 보면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답했다.

“그런데 자신이 사는 지역에 국한된 영향을 물었을 때는 부정적 응답이 24퍼센트로 뚝 떨어졌다. 탈퇴 투표 의향자의 절반가량은 이주민이 자기 동네에서는 긍정적 영향을 끼치거나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답했다. 나아가, 개인적 경험을 물었을 때는 유권자의 78퍼센트, 탈퇴 투표 의향자의 62퍼센트가 이주민이 자기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거나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답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이주민을 부정적으로 말할 때는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대체로 언론과 정치인들이 떠드는 것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2

내국인과 이민자의 접촉이 잦다고 해서 갈등이 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호 이해가 높아질 수도 있다. 특히나 공동의 투쟁을 경험한다면, 상호 인식이 훨씬 더 좋아진다.

게다가 최근 테러 공격의 범인들은 얼마 전에 유입된 이민자나 난민이 아니다. 대체로 유럽에서 나고 자란 이민자 2·3세들이다. “유럽의 가치들”(과연 존재하는지 의문이지만 어쨌든 그것들)을 배우고 자란 사람들이다. 무슬림들이 테러를 저지르더라도 그 원인을 무슬림 이민자들에게서 찾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그들이 나고 자란 유럽 각국이 그들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2015년 11월 프랑스 파리 연쇄 공격 직후 프랑스 사회주의자 자드 크라스니는 그 “공격을 프랑스 사회와 결부시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3 그의 말인즉, 프랑스 사회에서 무슬림이 겪는 인종차별이야말로 진정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실업률과 빈곤율이 국민 평균의 세 곱절이나 되는 것, 연간 소득이 국민 평균보다 30퍼센트 낮은 것, 전체 인구의 8퍼센트를 차지하는 무슬림이 수감자 중에는 50~70퍼센트를 차지하는 것, 조건이 열악한 대도시 변두리에 무슬림이 몰려 살 수밖에 없는 것, 무슬림 여성에게 공공장소에서 이슬람교 전통 복장을 착용하지 못하도록 국가가 강제하는 것 등이 있다.

이슬람교가 극단주의적이어서?

또 다른 흔한 견해는 이슬람교의 교리가 특별히 호전적이고 이교도에 배척적이라는 것이다. 그 사례로 거론되는 것이 최근에는 ‘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이하 아이시스)이고, 그전에는 알카에다였다.

그러나 이는 이슬람교를 단일하고 동질적인 믿음 체계로 보는 데서 비롯하는 오해이다. 대학원에서 종교사회학을 공부한 최일붕 노동자연대 운영위원의 지적처럼, “이슬람교라 해서 다른 종교보다 특별히 더 근본주의적이 되기 쉬운 까닭은 없다.” “근본주의나 원리주의는 단순히 경전이나 전통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런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생활조건에서 비롯하는 것이다.”4

이제는 꽤 알려져 있다시피, 과거 이슬람 제국들은 “기독교 공동체를 인정했다. 지즈야(jizya)라는 인두세만 내면 유대교와 기독교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상당 기간 세 종교는 평화적 공존을 이어 갔다.”5

전 세계 인구의 24퍼센트인 무슬림 18억 명이 아니라, 이슬람교 교리를 정치 원리로까지 삼는 ‘이슬람주의’ 세력으로 좁혀 보더라도, 그들을 테러와 직접 연결시킬 수는 없다. 다양한 변형들이 있고, 각각의 처지에 따라 주장과 행동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통적 우방 사우디아라비아 정권도, 미국의 ‘경비견’ 이스라엘에 맞서 싸우는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도, 2011년 혁명 덕분에 정권을 잡았다가 이내 군부의 쿠데타로 추락한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도 모두 이슬람주의에 속한다.

이슬람주의는 19세기 말에 등장했다. “역사적으로 세계 무슬림의 다수는 제국주의에 의해 굴욕을 당하고 민주주의를 부정당하고 빈곤과 억압을 겪어”온 것, “그 이면에 서구 제국주의자들과 그들과 유착한 현지 독재자들이 도사리고 있”던 것이 그 배경이었다.6

극도로 종파적이고 반동적인 괴물 아이시스는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이 낳은 것이다. 이라크를 점령한 미국은 저항을 파괴하기 위해 종파적 갈등을 부추기고 엄청난 폭력을 행사했지만 결국 실패하며 굴욕적으로 철군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라크를 정복할 수는 없었지만 극심한 혼돈으로 밀어 넣을 수는 있었다. 또, 시리아 내전에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지역 강대국들과 미국 같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개입해 전쟁을 치르는 것도 아이시스 등장의 배경이 됐다.7

요컨대, 서방 제국주의가 세계 무슬림들을 오랫동안 유린해 온 것, 자국 안에서는 무슬림들을 체계적으로 차별해 온 것이 테러의 진정한 원인이다.

무슬림 여성들이 프랑스 정부가 베일 착용을 금지한 것에 항의하고 있다 ⓒ출처 〈소셜리스트 워커〉

대안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테러 공격으로 말미암은 비극을 보며 ‘테러 반대’라고 말하는 데서 멈추면 안 된다. 그 근본 원인인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을 반대해야 하고 대다수 무슬림을 방어해야 한다.

이 점에서 정의당의 태도는 아쉬운 점이 많다. 정의당은 유럽에서 일어난 테러 공격들에 대해 논평을 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 정부는 … 이번 테러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을 주문한다.”(한창민 대변인, 2016년 3월 23일) “정의당은 이번 런던에서 벌어진 테러를 강력하게 규탄하며, 테러의 원인을 서둘러 밝히고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한창민 대변인, 2017년 3월 23일)

정의당이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은 사실상 제국주의 국가들이 이라크·시리아를 폭격하는 것, “엄정하게 대응”하는 것은 예컨대 프랑스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민주적 권리를 제약하는 것, 그래서 무슬림 인구에게 더 큰 좌절감과 분노를 주는 것, 그래서 또 다른 테러 공격을 부르는 것을 뜻할 수 있다. 정의당이 정녕 이것을 지지하는가?

한국 정부는 테러 위협을 이유로 민주적 권리를 침해하는 테러방지법을 제정했는데, 정의당은 옳게도 테러방지법 제정에 반대했다. 또한 옳게도 “20대 국회에서 반드시 테러방지법 폐지를 이뤄낼 것”이라고 공언했다(강상구 대변인, 2016년 3월 4일). 그런데 테러에 대한 “엄정한 대응” 촉구는 테러방지법 반대 견해를 약화시킬 위험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유럽의 좌파, 특히 프랑스 좌파 중에는 ‘세속주의’를 오해해 무슬림을 적극 방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2004년 노동자투쟁(LO)은 히잡이 “여성의 굴종”을 상징한다며 히잡 금지 법안을 지지했고,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 반자본주의신당 NPA의 전신)은 이 문제를 둘러싸고 모호한 입장을 취해, 반대 운동을 조직하는 데 사실상 실패했다. 이런 태도로는 무슬림들에게 제대로 된 대안으로 보이기 힘들 것이다.

1970년대 이래 아랍에서 이슬람주의가 괄목한 성장을 한 데에도 그전에 세속 민족주의자들(과 그것의 좌파를 이룬 스탈린주의 공산당들)이 거듭 배신하며 꾀죄죄함을 보인 것이 한몫했다.

좌파는 천대받고 차별받는 대다수 무슬림을 확고히 방어하고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맞선 대안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무슬림들이 마음속 응어리를 테러나 아이시스 같은 반동적 조직을 통해서가 아니라 반자본주의적 방식으로 풀 수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와 테러

레온 트로츠키·존 몰리뉴 지음, 노동자연대, 32쪽, 2,000원

  1. 레온 트로츠키, ‘테러리즘 비판’, 《마르크스와 테러》, 노동자연대, 2015.

  2. 김종환, ‘왜 영국은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택했나’, 〈노동자 연대〉 183호, 강조는 원문.

  3. 자드 크라스니, ‘왜 프랑스는 아이시스의 표적이 됐는가’, 〈노동자 연대〉 163호.

  4. 최일붕, ‘무슬림·이슬람교 혐오는 인종차별이다’, 〈노동자 연대〉 176호.

  5. 서정민, ‘이슬람 극단주의의 테러와 역사적 배경’, 〈현안 진단〉 제261호, 코리아연구원, 2015년 2월 17일.

  6. 최일붕, ‘무슬림·이슬람교 혐오는 인종차별이다’, 〈노동자 연대〉 176호.

  7. 김종환, ‘아이시스와 아랍의 반혁명 ―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노동자 연대〉 142호 보충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