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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7:
민족 자결권 보장과 혁명의 관계를 이해한 볼셰비키

국제 사회주의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을 관통하는 사상이었다.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과 볼셰비키 당은 러시아에서의 혁명은 국제 노동계급 운동의 일부이며 혁명은 국제적으로 확산돼야 한다고 한결같이 주장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피억압 민족의 자결권을 지지해야 할 필요성 또한 이해했다

1917년 6월 18일,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페트로그라도 시위대

“민족 문제”에 대해 올바른 입장을 갖는 것은 러시아 혁명가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혁명 전 차르가 지배한 러시아 제국은 “소수민족들의 감옥”이라 불렸다.

러시아 제국은 유럽과 아시아를 가로질러 뻗어 있었지만 그중 러시아인들은 정작 절반도 되지 않았다. 이러한 제국을 하나로 거느리고자 차르 독재 체제는 “대(大)러시아인 우월주의”라는 민족주의 사상을 부추겼다.

이런 반동적인 사상이 러시아의 노동자와 농민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은 혁명가들에게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혁명가들의 정당이었던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RSDLP)은 1903년 열린 당대회에서 “국가에 속한 모든 민족들의 자결권”을 지지했다.

또한 모든 시민이 “[러시아어가 아니라] 자신의 모국어로 교육 받을 권리”를 옹호했다.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은 또한 1903년 같은 당대회에서 볼셰비키와 멘셰비키 두 분파로 분열됐다.

그중 소수민족의 권리를 지지해야 하는 필요성을 진정으로 이해했던 것은 볼셰비키였다. 볼셰비키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내세우는 민족주의와, 억압받는 민족이나 식민지 국가들의 민족주의는 다르다는 것을 이해했다.

노동자와 농민들이 들고 일어났던 1905년 혁명기는 러시아 제국 일부 지역에서 억압받는 민족들의 투쟁이 터져 나온 시기이기도 했다.

폴란드 출신의 독일 혁명가인 로자 룩셈부르크는 [러시아로부터] 폴란드의 독립권을 지지하지 않았다. 로자는 그런 요구가 노동계급의 분열을 낳을 것이라 우려했다.

레닌은 로자 룩셈부르크를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룩셈부르크는 폴란드 ‘민족주의’ 부르주아지들을 도와선 안 된다는 점에 골몰한 나머지 러시아 흑색단을 돕고 있다.”

살인 집단

흑색단은 러시아의 국수주의 살인 집단으로 유대인,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 등 다른 민족들에 대한 살해를 일삼았다.

레닌은 러시아 노동자들이 폴란드의 자결권을 지지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반동적인 러시아 국수주의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노동계급을 더 강력하게 만들 것이라 했다.

또한 볼셰비키는 식민지에서 억압받는 민족들이 제국주의에 맞서는 투쟁의 동맹세력이라고 봤다.

1917년 10월에 노동계급은 자신들이 만든 노동자평의회(“소비에트”)를 통해 권력을 장악했다.

새로 세워진 혁명 정부는 한 달 후에 “러시아 여러 민족의 평등·주권 보장”과 함께 모든 민족은 독립과 자결의 권리가 있음을 공포했다.

혁명 정부는 소수민족 거주 지역이 “자치권”을 가지고, 소수 언어가 “사회·정치 활동의 모든 영역에서” 완전히 평등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볼셰비키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미래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1913년에 민족 문제에 관해 쓴 논문을 거론한다.

스탈린은 국가란 “공통의 언어, 영토, 경제생활과 공통의 문화를 바탕으로” 형성된다고 썼다. 스탈린은 반혁명을 일으킨 뒤, 이 정의를 들이대며 특정 소수민족을 억압하는 명분으로 삼았다.

저개발 상태에 있던 러시아 지역에서는 많은 민족들이 “민족”언어와 문화를 발전시키지 않았던 점을 들어 그들의 자결권 탄압을 정당화한 것이다.

볼셰비키의 관점은 이와 달랐다. 볼셰비키는 억압 받는 모든 민족의 권리를 옹호하며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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