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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는 공동전선의 요구가 될 수 없다

지난해 여름 박근혜가 사드 배치 결정을 강행할 때 명분은 현저하게 커진 “북핵 위협”이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잇달아 시험 발사하자, 문재인 정부도 같은 이유로 사드 배치 과정을 조기에 매듭지으려 한다.

북한의 계속된 핵과 미사일 실험을 계기로 미국과 한국은 군사 행동을 정당화하고 동맹을 강화해 왔다.

이런 상황이 사드 배치 반대 운동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한반도에서 긴장이 높아지고 북핵 ‘위협’을 명분으로 사드가 배치되면서, 운동 내에서 북핵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거듭되고 있는 것이다.

평화주의 단체들은 북핵도 똑같이 주요한 비판 대상으로 삼아야 사드 철회의 대국민 설득력이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사드 반대 운동 연대체인 ‘사드저지전국행동’이 ‘사드 배치 철회’만 주장해서는 운동이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드저지전국행동이 “한반도 비핵화”를 요구로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이 평화협정 체결로 북한에 안전을 보장하려면, 북한도 그에 상응해 핵무기를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는 평화 운동이 북한 핵무기를 지지하는 운동처럼 비춰져서는 안 된다는 합리적 핵심이 담겨 있다.

노동자연대도 북한 핵을 비롯한 모든 핵무기에 반대한다. 북한의 거듭된 핵과 미사일 시험은 남한에서 노동계급의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 운동을 건설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 핵무기는 한반도 안전을 담보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한국 지배자들이 사드 배치를 강행하고 미국의 패권 정책에 협력하는 것에 명분을 줄 뿐이다.

분열

그러나 북한 핵무기가 서방 제국주의의 공세에 대한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주장 수준을 넘어, “한반도 비핵화”를 사드 반대 대중 운동의 요구로 채택하는 것에는 커다란 문제점이 있다.

“한반도 비핵화”는 구체적 맥락 속에서는 흔히 “북한 비핵화”를 의미한다. 예컨대, 6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트럼프와 문재인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한반도 비핵화”(CVID)가 대북 정책의 공통된 목표라고 천명했다. CVID는 미국이 북한을 압박할 때 거론하는 비핵화 방안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진보·좌파에게는 사드 배치를 비롯한 미국 제국주의의 공세와 그에 대한 한국 정부의 협력을 막아야 하는 과제가 있다.

또한 중간 규모의 산업국인 북한의 ‘위협’을 세계 최강국 미국의 위협과 대등한 수준에서 볼 수 없다. 7천 기가 넘는 핵무기를 실전 배치하고, 이미 북한보다 60년 먼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모두 대화 재개의 조건으로 북한의 선 핵 포기를 요구하는 것은 완전한 위선이다.

“한반도 비핵화” 요구는 또한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미국은 북한과 대화 테이블에서 만나더라도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합의를 번번이 폐기하거나 대화를 중단시키곤 했다. 이런 경험 때문에 핵무기 개발에 매달려 온 북한은 핵무기를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한반도 비핵화”를 요구한 운동은 결국 마비될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 맥락 속에서 보면, 사드 반대 대중 운동 측의 “한반도 비핵화” 요구 채택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압박이 한반도 불안정의 당면 원인이라는 점을 흐리는 효과를 낸다. 이는 미국의 공격적 대외 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을 건설할 수 없게 만든다.

사드저지전국행동이 이 요구를 채택하면 운동은 분열할 것이다. 지금 진보·좌파들은 북핵에 관한 견해가 서로 다르다. 사드 반대 운동이 북핵 문제에 관한 견해를 통일시키려 하면, 논쟁하느라 진이 빠져 힘을 모아서 운동을 건설하기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지난 1년 내내 사드저지전국행동 내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 경험

진보·좌파는 2000년대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의 경험을 되돌아봐야 한다. 당시 반전 운동은 ‘테러 반대, 전쟁 반대’ 식의 양비론에 빠지지 않고, 사태의 핵심인 (테러를 빌미로 한) 미국의 전쟁 몰이 반대를 분명히 해 대중 운동을 건설할 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진보·좌파는 강령의 차이를 넘어, 사드 배치를 강행하고 한반도 긴장을 부추기는 미국의 패권 추구와 문재인 정부의 협력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사드 배치를 곧 완료할 태세다. 이제 사드 배치는 박근혜뿐 아니라 문재인의 선택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드 반대 운동이 문재인 정부에 독립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태도 문제는 ‘한반도 비핵화’를 요구로 내세우는 것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