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광주, 군부가 공중 폭격을 준비했다니!:
진압 책임자 전두환 일당을 처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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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광주민중항쟁의 현장 이야기를 잘 그린 영화
영화를 통해 광주항쟁에 관심이 고조된 상황에서 이를 진압하려고 군부가 공중 폭격을 준비했다는 폭로가
올해 초부터 광주항쟁의 초기 학살 국면에 관한 중요한 사실들이 발견되고 새로운 증언이 나오기 시작했다.
증언으로만 존재하던 공격 헬기의 기관총 소사 사실도 인정됐다. 당시 전남도청 앞 전일빌딩에 난 총탄 자국과 각도가 중화기의 공중 사격에 의한 것임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인정한 것이다.
이를 뒷받침할 증언도 있었다. 당시 대구에 본부를 둔 506항공대의 공격 헬기가 중무장을 하고 전주 비행장을 베이스캠프 삼아 매일 광주로 출격했다는 것을 당시 근무 병사들이 올해 1월 광주의 지역 매체
최근 공개된 미국 국방정보국의 기밀 보고서에도 전두환·노태우 신군부의 베트남 전쟁 경험과 살인 진압을 연결시켜 이해하는 대목이 나온다. 권력 꼭대기부터 말단까지 광주에서 살육 전쟁을 치른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육군이나 공수부대만이 아니라 공군까지 동원된 것은 광주에서의 살인 진압과 발포 등이 우발적이거나 군대의 자위권 차원이 아니라 최고위층의 지시로 이뤄진 계획적 행위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당시 전두환 일당은 “공산화 저지”를 명분으로 광주를 신군부의 권력 장악을 위한 제물
박정희와 경호실장 차지철이 “캄보디아에서는
그동안 이런저런 증언들은 있었지만, 학살 진압에 가담한 군인들 중에서는 내부 고발자가 나오지 않았다. 보복이 두려웠을 것이고, 진압에 나선 군대 내 동료들의 눈치도 봤을 것이다. 어떤 이는 진실을 인정하기 두려워 자기 정당화를 하며 스스로 세뇌해 왔을 것이다.
그러나 ‘독재자의 딸’이라는 상징성이 있던 박근혜가 민중의 거대한 시위로 쫓겨난 상황이 내부 고발자들에게 용기를 준 듯하다. 시간이 꽤 흘러 이들 중 일부는 인생을 정리해야 할 때가 됐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변했다. 이제는 광주의 저항을 ‘정의’와 ‘민주주의’라 부르고, 전두환 일당을 ‘불의’와 ‘독재’라고 부른다.
이런 전두환을 대통령 당선증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사면해 준 사람이 김대중이다. 민주당 정부도 여태 저들이 미쳐 날뛰는 일에 일부 일조한 것이다. 그 덕분에 전두환·노태우 일당은 지금까지 조작과 조직적 증언 거부, 왜곡으로 진압 명령 지휘 사실을 부인하며 처벌을 회피해 왔다. 문재인이 지시한 국방부 자체 조사는 국방부가 학살 범죄 집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