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내내 세월호 유가족들은 국회와 여야 합의에 발목이 잡혀 기소권과 수사권이 빠진 채 너덜너덜해진 특별법을 강요당했고, 국회는 유가족들이 원했던 최소치인 특검안을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재인은 대선 후보 시절 세월호 참사 3주기 추모식에서 이렇게 약속했다. “새 정부는 곧바로 제2기 특조위를 구성해서 모든 진실을 낱낱이 규명하겠습니다. 국회에서 법 통과가 안 돼도 대통령 권한으로 특조위를 재가동시키겠습니다.”

하지만 당선 후 정부 차원의 특조위 구성 약속은 강제력이 없는 ‘자문 기구’ 격 조사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으로 축소됐다. 이 위원회가 다룰 내용의 범위도 “1기 특조위 때 왜 조사가 잘 안됐는지 점검”하는 것으로 축소됐다.

8월 16일에는 급기야 이마저도 없던 일이 돼 버렸다. 문재인은 세월호 유가족 2백여 명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특별법의 국회 통과가 잘 될 것으로 믿[는다]”하고 말했다. 공약으로 내걸었던 진상 규명의 책임을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특별법에 떠넘긴 것이다.

문재인은 “강력한 법적 권한을 갖는 2기 특조위가 정부 차원 조사위원회보다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지만,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법적 권한”을 발동시킬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문재인과의 만남 이후 한 유가족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그들(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들)이 법안 통과에 적극적으로 협조할지도 의심되지만, 준비된 법안으로 범죄 혐의자들이 감춰 둔 증거물을 찾아내고 조사하는 것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대통령님께서 검찰에게 엄정한 특별 수사를 지시해 주십시오. 서울중앙지검에는 이미 탄원인이 제출한 고발장이 접수되어 담당 검사가 배당되어 있는 상태이므로 대통령님의 결단에 따라 재수사 착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 지적대로 문재인 정부가 결단만 하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 세월호 참사 책임자 처벌 또한 지난 정권에서 황교안, 우병우 등의 외압과 검찰의 봐주기 수사로 거의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상태 그대로다. 해경과 해수부의 고위 관료들, 당시 해수부 장관이나 국가안보실장 등 청와대의 재난 대처 책임자들 등 죗값을 물어야 할 자들이 여전히 문재인 정부와 부활한 해경, 정부 소관의 특수법인 내에 수두룩한데 아직까지 손도 못 대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장관도 바뀌었지만 해수부의 태도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해수부는 별 이유도 없이 세월호 선체 공개를 돌연 거부해 가족들의 항의를 받았다. 미수습자 수색과 선체 보존도 너무나 미흡하고 정부가 나서서 4·16안전공원을 조성하겠다던 약속도 안 지키고 있다.

문재인은 정부가 나서서 하면 될 진상조사 책임을 국회에 떠넘겼다 ⓒ출처 청와대

책임자 처벌

물론 문재인은 쌀쌀맞기 이를 데 없었던 박근혜와는 달리 세월호 유가족을 청와대에 초청해 위로하고 사과도 했다. 기간제 교사 희생자 두 명의 순직도 인정됐다. 진즉 이뤄졌어야 할 일이 이뤄져 유가족들은 일부 위안을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가족들이 지난 3년 반 동안 가장 간절하게 원한 것은 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낱낱이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 다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안전 사고 때문에 억울하게 희생되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소망과 달리 세월호가 뭍으로 인양돼 올라온 3월 31일, 남대서양에서는 한국 화물선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해 선원들이 실종됐고, 문재인이 당선한 5월 10일 정부는 실종자 수색을 확대하긴커녕 일방적으로 중단해 버렸다. ‘제2의 세월호’라 불리는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은 여전히 정부에게 수색 재개를 요구하면서 항의하고 있다.

문재인은 대통령으로 당선한 뒤 노란 리본 배지를 떼고 우파들에게 ‘협치’의 손길을 내밀었다. 규제를 완화해서 기업의 돈벌이를 돕는다는 정부 기조도 달라진 게 거의 없다. 문재인은 세월호 문제 해결과 안전을 위한 예산이 아니라 국방 예산 늘리기를 더 강조했다. 그러는 동안 세월호 공약과 안전을 위한 공공 투자는 자꾸만 뒷전으로 미뤄지고 있다.

문재인은 “적폐 청산”을 내세웠지만 가장 큰 적폐로 꼽히는 세월호 참사에 관해 실질적으로 가져다 준 변화가 없다. 따라서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 사회 건설이라는 세월호 운동의 요구를 성취하려면, 전 정권 하에서와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와 국가에 요구하며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정부의 냉대·탄압 속에서도 포기 않고 싸운 세월호 유가족들과 운동은 그럴 자격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약속대로 진상 규명·책임자 처벌에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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