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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캐비닛’ 문건 파동:
일벌백계로 단죄해야 한다

‘박근혜의 청와대’가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이른바 ‘캐비닛 문건’이 계속 폭로되고 있다.

청와대의 발표에 따르면, 7월 14일 공개된 3백여 건의 민정수석실 문건에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 관련 보고서가 포함돼 있고, 3일 뒤인 17일에 공개된 정무수석실 문건에는 “삼성 및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내용 … ‘위안부’ 합의, 세월호, 국정교과서 추진, 선거 등과 관련해 적법하지 않은 지시 사항이 포함돼 있다.” 특히 세월호와 관련해 “특조위 무력화를 지시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고 “언론과 협조해 (유가족 등의) 일탈 행위 등을 부각시키라는 세부적인 지침이 담겼”다. “보육 문제와 관련해 누리과정 예산이 정국 쟁점으로 떠오르면 언론사 가운데 어디를 활용해서 이렇게 하라는 식의 내용도 적혀 있다.”

청와대는 7월 18일에도 국가안보실과 국정상황실 캐비닛에서 문건 수천 건을, 8월 28일에는 옛 청와대 제2부속실에서 9천여 건의 문서 파일을 무더기로 발견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발견된 문건 중에는 이명박 정부의 ‘제2롯데월드 인허가’ 관련 문건도 있다고 한다. ‘제2롯데월드’는 대표적인 정부 특혜 사업으로 비판을 받았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구 여권인 보수 야당들은 뻔뻔하게 나오고 있다. 자유한국당 은 “전 정권 망신 주면 현 정부도 정치 보복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협박하면서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을 고발했다. 바른정당은 “이제는 그다지 놀랍지도 않은 문건쇼”라며 그 의미를 깎아내렸다.

그러나 8월 30일 파기환송심에서 원세훈이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을 모두 위반했다고 유죄 판결이 나온 것에서 보듯이 위법까지 감수한 구 여권의 작태는 보수적인 법원에서조차 유죄로 판결할 정도로 처단당해 마땅한 구악이자 적폐의 일환이다.

청와대 ‘문건’ 폭로의 본질은 박근혜 정권이 친기업·반노동 정책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틀어막고 탄압하기 위해 치밀하고도 악랄한 짓들을 몰래 벌여 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재판 중인 박근혜와 이재용을 엄중 처벌해야 하고 민정수석실 문건 작성을 지시한 우병우와 실행 관련자들을 죄다 재수사하고 처벌해야 한다.

폭로된 행태들의 성격에 비춰 볼 때, 국민의당이 구 여권과 자유한국당을 비판하면서도 “(청와대가) 사소한 트집을 잡아 정치쟁점화하고 있다”며 양비론을 편 것은 웃기는 일이다.

구두선

그런데 이미 확보된 문서들일 텐데 순차적으로 발표하는 것이나 어떤 성격의 자료인지 검증할 시간이 부족하지 않음에도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 것 등에서 문재인 정부의 의도도 엿보인다. 구 여권과의 차별성을 부각하며 대중의 환심을 사는 한편, 우파들을 압박해 국정 운영에 협조하게끔 하려는 것일 테다. 사실 새 정부가 전 정부의 불법 행위를 털어 집권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일은 매번 있는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진보적 대중이 우려할 것은 문재인 정부가 그 문건들을 구 여권 압박용으로만 활용하고, 실제로 진실을 명백히 밝혀내 처벌하는 것은 회피하는 경우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여러 부패·비리 사건이 터졌듯, 문재인 정부 내 인사들 또한 부패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국정농단’ 세력을 뿌리까지 일관되게 청산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는 한국 경제의 위기 속에서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친자본·반노동 정책의 큰 틀을 유지할 것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에게도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탄압·관리하면서 자본주의 국가를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물론 그 방식은 사회적 대화를 강조하는 등 좀 더 유연하게 하겠다지만, 그렇다고 필수불가결한 억압기관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발목을 잡을 일을 할 것 같지는 않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 때도 억압적 국가기관들의 비중이 컸다.

저항을 탄압하기 위한 국가의 공작 행위에 대한 처벌은 구두선에 그쳐선 안 된다. 문재인 정부에게 그저 손뼉 쳐 주는 것이 부적절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