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법으로 불리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이 내년 2월 4일부터 시행된다. 이 법은 2016년 1월 17일에 입법돼 지난달 시행됐지만, 연명치료 중단 등 핵심 결정 조항의 시행일이 6개월 연기돼 사실상 입법 후 2년이 지나서야 본격 시행될 예정인 것이다.

2009년 세브란스병원에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김 할머니 사건’은 실제 연명치료 중단 사례인데, 9년 만에 법률적 뒷받침을 받게 된 것이다. 즉, 현실과 법안 도입 시기의 간극도 상당하다.

이런 뒤늦은 법률 도입은 그동안 평범한 사람들이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가 크게 제약받아 왔음을 뜻한다. 또, 객관적으로 환자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상태가 됐을 때, 그 가족이나 지인들은 아무런 결정권도 갖지 못하면서 병원비 등 부양 책임만 떠맡는 가혹한 일이 반복돼 왔음을 뜻하기도 한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고자 2007년 대선 때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존엄사법' 제정을 공약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난 몇 년 동안 진보적 보건의료 단체와 활동가들이 웰다잉법 논의에 적극 나서지 않은 데에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제대로 발휘되기 힘든 현실이 영향을 끼쳤다. 큰 치료비 부담이다.

예를 들어 환자 1명당 말기 연명치료비는 비보험진료비를 제외하고 연평균 1500만 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대학병원 등에서 연명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1억 원 이상 지출하는 일도 허다하다(건강보험공단 정책연구원 보고서).

병원비 지출 때문에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비율(재난적 의료비 가구비율)도 한국은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다. 2014년 온 가족이 자살한 ‘세 모녀 사건’의 직접적 원인은 이 가족의 주소득원이었던 아버지의 병원비 때문에 빈곤층으로 추락한 것이었다. 이런 현실에 비춰 보면 문재인 정부가 최근 발표한 일부 보장성 강화 조처는 미흡하기 짝이 없다.

이런 한국 의료제도의 취약성 때문에 최소한 유럽국가나 일본 같은 수준으로 의료비 부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도입되지 않는다면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하는 자기결정권이 왜곡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연명치료 중단과 관련된 지난 7년 간의 논의에서 문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현실적으로 그 결정을 대리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인 보호자의 결정권은 오히려 부차적으로 다뤄졌다. '악용' 방지 장치 마련에 대한 논의, 의료 전문가와 국가의 통제에 대한 논의가 더 많았다. 마치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 부모와 자식을 간단히 포기하기라도 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보수 우파의 이데올로기가 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결국 웰다잉법에는 의료 전문가와 국가기관(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의 통제 권한이 명시되는 등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요소가 많이 포함됐다. 연명의료중단서, 전문의 동의, 녹취 등 의료인들의 승인이 필요하고, 연명의료관리기관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데이터베이스화해서 관리 감독을 하는 기능도 부여됐다.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권리는 환자에게 있다

연명치료 중단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는 환자가 자신의 죽음에 대한 결정권을 갖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보호자가 경제적 압력에서 자유롭게 온전히 환자의 권리만을 위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따라서 의료비 부담을 유럽 수준으로 낮추고 전국민 무상의료를 실시하면 될 일을, 전문가와 국가기관의 통제 장치 마련에 시간과 노력을 낭비한 셈이다.

보수 언론과 보수 정당은 연명치료로 낭비되는 '비용'을 주된 화두로 삼았다. 그들이 보기에 '쓸모없게 된' 가난한 노동자들을 살려 주느라 돈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형병원과 호스피스·요양 병원의 수익성도 고려 대상이었을 것이다. 중환자실 운영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

그러나 삶의 고통을 끝내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권리는 다름 아닌 환자 스스로 가져야 한다. 자본과 국가 권력이 죽음의 순간과 과정마저 통제하는 것은 우리 삶의 자율성을 크게 위협한다. 따라서 아직 한국 환자들이 경제적 고려에서 벗어나 죽음을 결정하는 것이 어려운 사정이더라도 연명치료중단법을 지지하고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국가기관의 과도한 통제를 없애고, 의료 전문가의 소견보다 환자와 보호자의 결정권을 우선순위에 두도록 해야 한다. 또, 이를 제대로 구현하려면 무상의료 같은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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