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
출간 150년 맞은 《자본론》, 그 어느 때보다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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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9월 14일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 1권이 독일 함부르크에서 출판됐다. 마르크스는 직접 출판업자에게 원고를 가져다 준 후 한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껏 부르주아들의 머리 위로 떨어진 어떤 미사일보다 이 책의 위력이 더 클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주류 학계는 한결같이 《자본론》을 사산아 취급한다
이런 관점으로는 오늘날 《자본론》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전 세계에서 《자본론》 출간 150년 기념 학술대회가 열리고 있다. 나는 지난달 브라질에서 열린 기념 학술대회에 참석했고, 이번 주에
9월 14일은 《자본론》 1권이 출간된 날이기도 하지만, 10년 전 노던록
노던록 대량 인출 사태는 세계 경제·금융 공황이 백일하에 드러난 사건이었다. 세계경제는 지금까지도 그 위기의 여파 속에 있다. 자본가 집단이 혼란에 짓눌려 있다는 것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나 영란은행 같은 각국 중앙은행이 당시 금융 위기 이래로 뚝 떨어진 금리를
《자본론》은 이런 혼란을 떨칠 수 있게 해 준다.
《자본론》의 몇몇 부분은 난해하다.
독창성
19세기 영국 평론가 W H 도슨의 다음과 같은 비평은 여전히 진실이다.
마르크스는 학술 연구자나 교수 직위 같은 안락한 처지에서 이 책을 쓴 것도 아니었다. 마르크스가 경제학 연구에서 주요한 성취를 이룬 1850~60년대 내내 마르크스 가족은 빈곤에 시달렸다. 상황은 때로 심각하게 절망적이었다.
더구나 마르크스는 생애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 활동을 벌이는 와중에 《자본론》을 썼다. 1864~72년 마르크스는 국제노동자협회, 즉 제1인터내셔널의 주요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이 시기에 마르크스는 인터내셔널이 미국 남북전쟁에서는 노예제에 반대한 북부를, 아일랜드 독립 운동을, 1871년 파리 코뮌을 지지하도록 이끌었다.
《자본론》 내용에도 노동자들의 투쟁이 반영돼 있다. 마르크스는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병에 걸리고 “진정 이론적인 부분에서는 진척”을 보이기 어려워서
《자본론》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이유를 먼 데서 찾을 필요 없다. 《자본론》은 노동자들이 고용 불안정, 임금 인상 제약, 무뢰배 같은 사장들에 맞서 싸우는 오늘날의 세계를 다룬 책이기도 하다. 자본주의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 한, 《자본론》도 계속 유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