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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세상에, 트럼프가 한국 국회 연설?

왜 이런 역겨운 인물에게 연단까지 줘야 하나 한반도 긴장을 높여 온 장본인 트럼프의 방한을 환영해선 안 된다

트럼프의 11월 방한 계획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났다. 트럼프는 일본·한국·중국을 차례대로 방문하고 베트남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이번 아시아 순방을 자신의 아시아·태평양 구상을 제시할 기회로 삼을 것이다. 거기에는 당연히 대중국 견제와 대북 압박을 위한 공조 강화도 포함될 것이다.

일본을 방문하고 11월 7일 서울에 오는 트럼프는 문재인과 정상회담을 하고, 국회에서 연설도 할 예정이다. 그리 되면 1993년 빌 클린턴 이후 24년 만에 한국 국회에서 연설하는 미국 대통령이 될 것이다. 제국주의적 대북 공세로 한반도 긴장을 높여 온 장본인인 트럼프가 한국에 오는 것도 분통 터질 일인데, 국회에서 한반도 정책을 놓고 연설까지 하다니 기가 찬다. 진보·좌파가 트럼프 방한 반대 운동을 열심히 건설해야 할 이유다.

트럼프의 국회 연설은 문재인 정부가 상당히 공을 들였다고 한다. 정부는 대북 강경 노선을 굽히지 않는 트럼프를 잘 설득해 국회 연설에서 북한과의 대화의 여지를 주는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고 변명한다.

〈한겨레〉 같은 중도진보 언론들이 갖고 있는 이런 기대는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 과거 경험을 보면, 설사 트럼프가 방한 기간에 다소 누그러진 대북 정책을 언급하더라도 상황이 본질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2002년 1월 당시 미국 대통령 부시 2세는 북한을 이란·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하며 한반도 긴장을 한껏 높인 바 있다.(물론 전쟁은 한반도가 아니라 이라크에서 일으켰다.) 그런데 그다음 달 한국에 온 부시는 북한을 침략할 의도가 없다고 밝히고, 도라산역을 방문해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도 말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 인사들은 자신들의 설득 덕분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게 ‘립 서비스’에 불과했음이 금세 드러났다. 그해 10월 미국은 별 근거 없이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의혹을 제기하며 압박해 제2차 북핵 위기를 낳았다.

게다가 지금 미국 대통령은 바로 트럼프다. 각국 지도자들이 말로라도 평화를 얘기하는 유엔 총회에서 트럼프는 15년 전 “악의 축” 연설을 능가하는 초강경 연설을 했다. 그가 한국에 와서 비슷한 말을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백악관은 국회 연설에서 “대북 압박을 최대화하는 데 동참하도록 국제사회에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엔 총회

트럼프의 “북한 완전 파괴” 같은 초강경 발언은 단지 말에 그치는 게 아니다. 전략 폭격기를 비롯한 미군 전략 무기의 빈번한 전개 등 한·미 군사력을 강화하고, 거기에 북한의 돈줄을 죄는 국제 대북제재 강화를 결합시키고 있다. 지금도 미군 핵항공모함 등이 한반도 인근에 집결해 한·미 연합훈련에 돌입했다. 트럼프와 그의 장군들은 연일 “군사 옵션 검토” 운운하며 대북 협박을 멈추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정부는 계속 미국과의 공조를 강조하며 사태 악화에 사실상 일조하고 있다. 정세현, 이종석 등 문재인을 지지하던 햇볕정책 이데올로그들마저 문재인 정부가 “미국에 너무 경도돼 있다”고 공개 비판할 정도다.

물론 최근 백악관 비서실장 존 켈리가 나서서 “북한 핵 위협”은 관리가 가능하다며 북한을 다루는 데 외교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등 대북 압박 수위를 조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미국이 한반도를 첨단무기 전시장으로 만들어 놓고 제재를 강화할수록, 북한의 반발만 부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 붕괴가 가장 두려운 북한 지배자들은 “풀을 뜯어먹더라도”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우발적 충돌 가능성도 높아진다. 과거 경험을 돌아봐도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군사 행동이나 동맹 강화 등 제국주의적 공세에 나설 때 한반도에서는 서해교전이나 연평도 상호 포격 같은 예기치 않은 충돌이 벌어지곤 했다.

트럼프는 프랑스·독일 등 서방 동맹국들의 우려에도 개의치 않고 이란 핵 합의 불인증을 감행했다. 이란이 핵 합의를 충실히 이행해 왔음이 국제적으로 입증됐는데도 말이다. 이란 핵 합의가 폐기되면, 중동에서 이란의 영향력이 제고되는 것을 경계해 온 공화당 우익과 이스라엘이 반길 것이다. 또한 트럼프는 이란·북한 등 소위 불량국가의 핵확산 통제 문제에서 오바마보다 훨씬 단호하고 강경하다는 점을 보이고 싶은 것 같다.

〈워싱턴 포스트〉는 사설에서 트럼프의 이란 핵 합의 불인증이 북핵 문제에 끼치는 효과를 이렇게 지적했다. “북한은 ‘어떤 핵 합의든 미국이 계속 지키리라고 믿을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향후 북핵 문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