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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특수용어:
추수주의란 무엇인가?

근래 우리는 운동 안에서 꽁무니 좇기(이하 추수주의) 현상을 자주 본다. 예를 들어, 기간제 교사를 비롯한 학교 비정규 교·강사의 정규직화 문제를 놓고 심지어 많은 좌파 활동가들도 조합 내의 대세를 좇는 모습을 보였다.

대학교 학생회장인 좌파 학생운동가들은 학생회 지지자들의 반대 여론을 의식해, 기간제 교사 등 비정규 교·강사의 정규직화를 지지하기를 삼갔다. 비록 그들의 소속 정당은 그 운동을 지지했지만, 당이 당원에게 당 방침 실천의 책임을 강요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건설노조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문제가 불거졌을 때 많은 좌파 활동가들조차 단속 불가피 여론을 거스르기를 삼갔다.

일부 초(超ultra-)페미니스트들이 성폭력 개념 과잉 확장에 더하여 ‘2차가해’라는 도덕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개념으로 토론을 억눌러서 못 하게 하는 것이 그동안 여성 운동 안에서 대세였다. 이런 관행이 결정적인 형세를 이루는 데에는 진보·좌파 운동가들의 추수주의도 일조했다.

그밖에도 곳곳에서 추수주의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레닌은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의 볼셰비키/멘셰비키 분열을 돌아보며 1904년 2~5월에 《일보 전진, 이보 후퇴》라는 저작을 썼다. 거기서 그는 멘셰비키의 추수주의를 이렇게 정의한다. “계급 전체나 거의 전체가 자본주의 하에서 한 번이라도 계급의 전위, 즉 계급의 사회민주주의적[당시 이 용어는 혁명적 사회주의를 뜻했다] 정당의 의식 수준과 활동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멘셰비키는 당과 계급을 동일시했던 것이다. 달리 말하면, 당(물론 혁명적 당)과 운동의 차이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반대해 레닌은 오직 혁명가들과 가장 선진적인 노동자들로만 구성된 정치조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반으로 개혁주의 정당은 ― 좌파적인 종류일지라도 ― 노동계급 전체의 관념을 수용하려는 정치조직이다. 이런 뜻에서 그 당은 계급을 나타낸다.(계급의 표본이다.)

이에 반해 레닌은 “당[물론 혁명적 정당]이 계급을 나타내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꽁무니

루카치는 《역사와 계급의식》(1923)에서 추수주의를 가장 탁월하게 비판했다.

추수주의는 객관적 사태 전개를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것이다. 노동계급 의식의 가장 선진적인 수준이 아닌 일반적인 수준에 순응하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이는 객관적 상황의 변화만으로도 계급의 의식 수준이 올라간다는 것을 상정한다.(그런 생각은 사회학 저작들에 흔한 실증주의적 가정이다.) 그러나 주관성(조직, 의식, 싸울 태세 등의 요인들)과 객관성(경제·정치·사회 상황)상호작용하는 것이다.

때로 역사적 과정에 의해 ‘역사적 계기’가 순식간에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런 계기는 역사적 과정의 근본적인 추세들이 곪아서 터질 듯해져, 인간 행동이 필요한 결정적 순간이다.

1917년 10월 러시아 상황이 두드러진 사례일 것이다.(그래서 레닌은 봉기의 기예技藝art에 대해 말했다.)

결국 그런 ‘역사적 계기’에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역사적 과정이, 인류의 운명이 결정된다. 객관적 상황은 주관적 행동의 영향을 일부 받는 것이다.

주관성과 객관성의 이러한 변증법적 상호작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혁명적 정치조직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는 ‘운동주의’(운동 만능)로 기울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지나친 좌익주의’(전술 없는 앙상한 원칙뿐)로 기운다.

운동 안에서 소수 혁명가들의 조직이 하는 구실은 중요하다 ⓒ조승진

혁명가들은 노동계급의 의식이 성숙해지는 때를 고대하면서 선전 활동에 국한해서는 안 된다.

노동계급이 성숙한 계급의식을 갖는 것은 전혀 필연이 아니다. 루카치 말처럼, “역사 과정에서 주관적[주관적 요인들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순간들이라는 뜻에서] 계기들이 능동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순간은 있을 수 없다.”

혁명가는 능동적으로 “노동계급의 의식을 현재의 수준에서 객관적으로 가능한 최고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에 관여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숙명론이나 기회주의를 버리고, “비교적 드러나지 않는 계기들”에 응답한다.

혁명적 조직과 노동자들의 관계는 이러한 ‘계기들’이 연속적으로 이동하면서 이루는 과정, 그러나 의식적인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혁명적 당의 구실은 주관성(인간 의지)과 객관성(물질적 조건들)을, ‘당위’와 ‘존재’를, ‘가치’와 ‘실재’를, 궁극적 목표와 당면 과제들을 매개하는 것이다.

혁명가들은 ‘주관적 계기들의 연속으로서의 역사적 과정’의 일부가 돼야 한다. 그저 대세를 추수할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허용된 한계 안에서 매순간 정치적 영향력을 구축해야 한다.

‘되지도 않을 일을 무슨!’ 하는 식의 숙명론적·객관주의적 체념에 사로잡힐 게 아니라,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도 안에서 가능한 성과를 내고자 애써야 한다. 정치적 지도력은 힘들게 싸워서 얻는 것이다.

추천 도서

당과 계급

노동계급에게는 어떤 정치조직이 필요한가?

레온 트로츠키 외 지음, 책갈피, 2012, 8,100원

중 크리스 하먼의 논문 ‘당과 계급’.

추천 도서

역사와 계급의식

죄르지 루카치, 조만영·박정호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2015, 38,000원

(비싸므로 도서관에서 대출하시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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