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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이 정치 보복 운운했으나:
대중은 더 급진적인 “적폐 청산”을 지지한다

올해 국정감사를 시작하며 원내 제2정당인 자유한국당은 “신적폐” 청산을 내세웠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적폐 청산을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면서 말이다.

박근혜 정권을 몰락시킨 온갖 부패한 정책과 행태들은 물론이고, 국가정보원과 군부가 이명박 때부터 대국민 정치공작을 벌여 온 게 폭로되는 상황에서 맞불을 놓겠다는 것이었다.

온갖 불법과 폭력으로 특권을 유지하려 몸부림쳐 온 구 여권의 정치인들이 “신적폐” 운운하니 역겹다. “정치 보복”이란 단어는, 정권에 불리한 내용을 말했다고 미네르바 같은 순전한 개인이나 공영방송의 탐사보도팀(MBC PD수첩 팀)을 초유의 구속기소로 보복하던 정권에서 “여당 의원”을 하던 자들이, 입에 올릴 단어는 아니다.

시위에서 농민 노인이 경찰의 노림수 진압으로 사망했는데, 경찰이 아니라 시위를 조직한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만 2년째 감옥에 갇혀 있다.

이런 것이 정치 보복이다. 구 여권 정부 아래서 정치 보복은 단지 법적 절차를 통한 협박만이 아니라 (국정원과 군부의 심리전단 등을 동원해) 개인들의 인간관계와 인격을 파괴하려는 양상을 띠었다(가령, 조직적으로 죽으라는 댓글을 단다거나 나체 합성 사진을 유포하거나).

이처럼 우파 정권 9년 동안, 보복 성격을 지닌 국가 탄압은 감히 주인의 밥상머리에 도전한 노예들을 다루는 것 같았다. 그만큼 야비하고 잔인했다.

사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의 범죄 실상이 보여 주듯, 우파 지배자들은 자신들이 국가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자본가 계급 기반 정당인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기간도 “잃어 버린 10년”이라니 말 다한 셈이다.

가령, 국정원은 특수활동비에서 매달 1억 원씩 박근혜 청와대에 정기 상납을 해 왔다. 특수활동비는 이른바 “눈 먼 돈”이지만, 그래도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 돈이다. 이 돈을 건네 받은 건 박근혜의 개인 일정과 비선 관리를 맡아 온 문고리 비서관 안봉근·이재만이다.

이런 돈 흐름은 우파 정권 아래서 국정원의 위상과 이 돈들의 용처를 모두 짐작케 한다. 피부 시술이든, 조직 관리든 명백히 ‘박근혜 비자금’인 것이다.

청와대가 국정원에게 지시했는데, 돈은 지시받아 일한 사람들에게서 일을 시킨 사람들에게 정기적으로 간 것이다. 이는 공공 재산을 자기들 쌈짓돈처럼 다뤄 온 걸 보여 준다.

박근혜 탄핵 때 뛰쳐 나왔다가 지지율이 안 오르니 다시 자유한국당으로 기어들어간 장제원은 10월 하순 국감에서 민주당 의원들 보고 “야당 의원들” 운운하다 놀림을 당했다. 이들의 머릿속에선 아직 박근혜의 임기가 안 끝난 것일까?(박근혜가 파면을 당하지 않았다면 아직 임기 중이었을 것이다.)

자유당 원내대표 정우택은 국감에서 신적폐를 발견했다는 듯이 공기업 강원랜드의 방만 경영을 따졌다. 그러나 정작 강원랜드 사장은 새누리당 의원을 지낸 낙하산 사장이었고, 특혜 채용 비리는 이명박근혜 정권 때 일어난 일이다.

자유당이 내세운 신적폐(새로운 국정 농단 시도) 목록도 오만하기 짝이 없다. 박근혜의 세월호 참사 보고 조작 등을 밝혀 낸 청와대 캐비닛 문건 공개나 MBC와 KBS노조의 방송 파업 같은 것을 신적폐라고 부른다.

이런 일들은 적폐 청산 염원을 대변하는 행동들이지, 문재인 정부의 홍위병 같은 게 아니다. 적폐 청산은 촛불의 염원이었고, 퇴진 촛불이 새누리당 정권의 실세들을 증오한 것은 그들이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사회의 구조적 측면을 수호하는 자들로 보였기 때문이다.

문재인이 친트럼프 행보를 해 왔는데도 “안보 무능”이 신적폐라거나 박근혜의 일방통행식 노동 정책이 아니라는 것만으로 좌파 포퓰리즘 신적폐라고 하는 건 역겹다. 문재인은 박근혜의 침몰에서 반면교사를 얻었을 뿐이다.

그러니 여론조사를 봐도, 대부분이 최근의 구 여권 수사를 정치 보복보다는 “적폐 청산”으로 본다.(보통 세 배가량 많다.) 이런 세력균형 때문에 자유당은 국감 보이콧 선언 나흘 만에 국감에 복귀했다.

자유당에게는 다른 일이 발등의 불이다. 자유당은 박근혜·서청원·최경환 등을 쫓아내는 문제와 보수 대통합을 통한 기사회생 문제로 분열해 있다. 국감이 아니라 11월 3일 최고위원회에서 벌일 논쟁과 표결이 더 걱정이다.

사실은 이런 위기감들 때문에라도 보수 야당들은 내년 예산안 등에 비토를 놓고 방송 장악 운운하며 신경질적인 대여 공세를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적폐 청산을 정부에게 맡겨놓기만 해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가려 하지는 않는다. 자칫 구 여권 청산이 새로운 요구의 범람으로 이어질까 봐 노심초사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구 여권 수사는 촛불이 요구한 적폐 청산의 작은 일부일 뿐인 이유다.

부처별 적폐 청산 TF를 만들게 하고 이명박과 박근혜의 불법 행위는 적발·폭로하고 있지만, 자신들이 직접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적폐들에서는 별 진척이 없다.

최근엔 문재인이 청와대 내부 회의에서 민주노총에 끌려다니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인 홍영표는 재계 인사들을 만난 뒤에 노동 개악을 공언했다. 세월호 참사 해결에서도 박근혜 관련은 청와대가 나서서 폭로하기도 했지만, 구조적으로 문제를 파헤칠 진상조사위원회 문제는 공약을 파기하고 국회로 공을 넘겨 버렸다.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석방(과 이영주 사무총장 수배 해제), 백남기 농민 살인 진압 지휘부 처벌, 세월호 참사 구조 실패·방해 책임자 징계와 처벌, 사드 기습 배치와 민간인 사찰 등 자행한 군부 내 숙청, 노동 개악 정책을 강행한 노동부나 해수부 관료들의 제거 등등.

그런데 잘못된 정책의 철회가 조금이라도 더 정책 방향 전환 같은 효과를 내려면 죄상이 낱낱이 밝혀져야 할 뿐 아니라, 이를 추진한 사람들도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문재인의 적폐(구 여권) 청산이 그 점에서 취약한 이유는 이 정부도 기업주들과 고위 관료 등 지배계급 기반 정당이기 때문이다. 또한 요직 인사들을 포함해 국가관료들과 원만하게 국가기관을 운영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권형 부패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문재인이 구 여권을 대놓고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그만큼 컸고, 한국의 경제·안보 위기 때문에 지배계급 내 갈등도 첨예해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국감장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게임 산업 적폐(농단)를 추궁하다가 청와대 정무수석 전병헌의 이름이 나오자 당황해 열을 낸 것은 우습지만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이 답변을 한 게임물관리위원장 여명숙은 지난해 박근혜 청문회에서 비선 실세 차은택의 전횡을 폭로해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홍종학(민주당 의원)의 과거 발언이나 절세 방식을 보면 평범한 사람들을 깔보고 딴 세계에 사는 점에서는 자유당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홍종학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을 짰다고 알려졌고 개혁파로 인기가 높았다.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참사 해결에 여전히 미온적인 걸 보면, 부처별 적폐 청산 TF에게 맡겨 놓는 것도 미봉책일 수 있다.(스텔라데이지 호 해결도 미온적이다.) 민간인 사찰까지 자행한 군부가 스스로 과거 청산을 철저하게 할 것으로 믿어지지 않는다.

결국은 퇴진촛불이 그랬듯이 노동자 대중이 스스로 나서야 한다. 노동자들이 한반도 긴장 고조에 반대하고 트럼프 방한 반대 행동을 하는 것도 그런 종류의 일일 것이다. 정권 교체는 아직 시작 수준인 적폐 청산을 가능케 한 원인이 아니라, 촛불의 미흡한 결과물이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