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 민족주의 청년에게 암살됐다. 이 사건은 불과 5주 후 주요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전쟁에 돌입하는 제1차세계대전으로 번져 버렸다. 이 전쟁은 4년간 지속됐고 거기서 1000만 명이 희생됐다.

오늘날 서방 지배자들은 제1차세계대전이 문명을 지키고자 벌인 불가피한 전쟁이었다고 치장한다. 또는 정치인들의 오판과 우연이 연쇄 작용해 벌어진 불가사의한(즉, 운이 나빠서 벌어진) 사건이라고 치부한다.

그러나 레닌, 트로츠키, 로자 룩셈부르크 등 당대 혁명가들이 지적했듯이, 제1차세계대전은 자본주의 발전의 동역학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즉, 제국주의 전쟁이었다.


제국주의와 식민지 경쟁

1876년 아프리카에서 유럽이 지배하는 땅은 10퍼센트도 안 됐다. 그러나 1900년에는 90퍼센트가 유럽 식민지였다. 사반세기 동안 유럽 열강은 아프리카 대륙을 유린했다. 같은 기간에 중국은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했고, 조선과 대만은 일본 식민지가 됐다. 서구 열강은 경쟁적으로 식민지를 확보해 각기 세력권을 형성했다. 아시아·아프리카에서 독립국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서구 지배자들은 자국의 식민 지배가 야만에 문명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고 강변했으나, 진정한 야만은 서구 제국주의였다. 제국주의자들은 세계 곳곳에서 학살·약탈·성범죄를 자행했다.

1906년 북나이지리아 영국 보호령에서 농민 폭동이 일어나자 영국 식민 당국은 말살을 자행했다. 괭이와 손도끼를 든 주민 약 2000명은 연발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에게 살육당했다. 포로들은 참수됐고, 그들의 목은 창에 꽂혔다.

벨기에가 차지한 콩고는 영토 전체가 강제노동수용소로 바뀌었다. 1885~1908년에 수백만 명이 전쟁, 굶주림, 질병으로 죽었다. 할당된 고무를 채취하지 못한 콩고 노동자들은 손이 잘렸다.

1894년 (조선 관군과 함께) 일본군이 동학농민군을 패퇴시키고 무차별 보복과 대량 학살을 자행한 것은 당대 제국주의자들이 저지른 수많은 범죄의 하나였다.

인종차별은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세계 나머지 지역을 정복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필요했다. 그러나 이윤이 영토 확장의 진정한 동기였다. 제국주의자들은 광활한 제국이 더 많은 부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다.

인종차별

19세기에 자본주의는 진정한 세계경제를 창출해 냈다. 그리고 자본의 집적과 집중 과정 속에 갈수록 더 소수의 거대 기업들이 경제를 쥐락펴락했다. 이제 자본들은 점점 더 세계적 수준에서 활동하게 됐다. 19세기 말에 유럽 자본이 엄청난 규모로 나머지 세계에 투자됐고, 자본들의 경제적 경쟁이 점점 더 국제화된 것이다.

이제 자본들은 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고 자국에 기대게 됐고, 국가들도 다른 국가와의 지정학적 경쟁에서 이기려고 자국 자본에게 점점 더 기대게 됐다. 자본주의 경쟁은 국가들 사이의 군사적·지리적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식민 제국 건설에서 선두 주자는 영국이었다. 인도 같은 식민지는 영국 자본들에게 안정적으로 보장된 투자처이자 상품 수출 시장 구실을 해 줬다. 영국은 여러 식민지에서 공업 생산에 필요한 값싼 원자재를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동시에 식민지는 식민지가 아닌 다른 곳의 투자 경로를 보호하는 군사적 발판을 제공했다.

영국 제국주의의 성공을 보면서, 다른 강대국들도 식민지 확보와 제국 건설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래서 19세기 마지막 25년 동안 세계는 강대국들에 의해 분할됐다.  

전 세계의 5분의 1을 차지한 영국 제국주의는 자국의 공식·비공식 제국을 계속 유지하고자 했다. 막강한 영국 해군이 이 제국을 지켰는데, 당시 영국 해군의 우위는 영국의 우수한 산업 경쟁력에 기초해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역동적 성격 때문에 상황이 바뀌었다. 독일과 미국 등 후발 주자들의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산업 강국 영국의 지위를 위협했다. 그래서 1914년 무렵 독일과 미국 모두 영국을 추월한 산업 강국이 됐다.

당시 영국 지배자들에게 독일의 부상은 영국 제국을 위협하는 가장 큰 위협으로 여겨졌다. 독일은 식민지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독일 지배자들은 영국·프랑스 등이 식민지를 너무 많이 차지한 나머지, 자국의 수출 시장과 원료 확보가 어려워지는 것을 염려했다.

독일은 여러 방면으로 영토를 확장하려고 애썼는데, 어느 쪽으로 확장을 시도하든 모두 기존의 식민 제국들과의 충돌이 불가피했다.

제국주의 열강은 세계 곳곳에서 충돌하기 시작했다. 경제적 경쟁이 영토 확장 경쟁으로 변했고, 결국 그 승패는 군사력에 달려 있었다. 독일은 전함을 대거 건조해 영국의 해상 지배에 도전했고, 영국도 전함을 29척(1899년)에서 49척(1914년)으로 늘리는 것으로 대응했다. 프랑스, 러시아 등 다른 강대국들도 군비 경쟁 대열에 합류했다.  

독일이 부상하자 영국은 이해관계의 충돌을 겪던 프랑스, 러시아와 손잡아야 했다. 유럽은 영국·프랑스·러시아가 뭉친 진영과 독일, 오스트리아 등이 결집한 진영으로 나뉘었다.

제국주의 경쟁이 열강의 정면 충돌을 향해 치닫고 있었던 것이다.  


발칸반도 ― 유럽의 화약고

유럽의 동남부인 발칸반도는 당시에 가장 위험한 지역이었다. 유럽 열강은 발칸반도의 특정 국가를 각기 자국의 종속국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당시 발칸반도의 여러 민족들은 유럽 선진국처럼 자신들만의 국민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는데, 이는 다른 민족 사람들을 자국 영토에서 강제 추방하고 심지어 학살해야 실현 가능한 과제였다.

반도 내 지역 국가들의 충돌이 유럽 열강의 이해관계 충돌과 맞물리면서, 발칸 지역 전체가 거대한 화약고가 됐다.

1914년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 암살은 그 화약고에 불을 지핀 불쏘시개 구실을 했다.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는데, 세르비아를 후원하던 러시아는 자국의 지위가 위협당할 것을 염려해 전쟁에 뛰어들었다. 금세 영국, 프랑스, 독일도 상대방에 선전포고를 하며 전쟁을 시작했다.

제국주의 지배자들은 이 전쟁이 수개월 안에 자국이 승리하는 “밝고 즐거운 전쟁”이 되리라 확신했다. 그러나 그게 엄청난 오판이었음이 드러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배신

과연 제1차세계대전은 결코 저지할 수 없는 비극이었을까?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에릭 홉스봄(1917~2012)은 1910년 이후 많은 사람들이 유럽에 전쟁이 임박해 오고 있음을 감지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레닌을 비롯한 혁명가들은 1914년 8월 전쟁 발발에 놀라지 않았다.

레닌, 트로츠키 등이 진정 경악한 것은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자국 지배계급의 전쟁을 지지하고 나선 것이었다.

전쟁 발발 전에 제2인터내셔널[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국제조직]은 수차례 반전 결의문을 채택했고,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을 종식하고 자본가 계급의 지배를 쓰러뜨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자, 독일 사회민주당은 약속을 뒤집었다. 8월 4일 독일 사회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전쟁 예산에 찬성표를 던졌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8월 4일 배신에 이어 프랑스 사회당 등도 노동계급의 대의를 배신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오랫동안 부르주아 민주주의 안에서 순응하고 자본주의 국가 구조 안에서 개혁을 추구해 왔던 탓에, 막상 자국이 군사적 갈등에 휘말리자 그 국가 편을 들었던 것이다.

1914년 8월 이후 유럽 전체를 통틀어 원칙 있는 반전 세력은 한 줌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혁명적 좌파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전쟁 반대를 위한 조직과 선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특히 러시아의 볼셰비키는 전쟁 반대와 노동계급의 경제투쟁을 연결시키려 노력하며 작업장에서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 운동을 건설해 갔다. 


크리스마스는 집에서 보낼 줄 알았는데

장군들의 예측과 달리, 신속하게 시작된 전쟁은 곧 장기간의 소모전으로 변했다. 크리스마스는 집에서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군인들의 희망은 점차 사그라졌다. 양측은 상대방이 참호를 파고 지키는 방어선을 돌파하려고 할 때마다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전선은 확장됐고, 물적·인적 피해는 날로 커졌다.

장군과 자본가들은 곧 이 전쟁이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싸워야 하는 총력전임을 깨달았다. 그들에게 중도 포기나 타협은 있을 수 없었다. 전 세계에서 자국의 힘이 약해지는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고, 다른 나라를 희생시켜 자신의 것을 지키고 자국 자본주의를 확장하고자 했다.

전쟁의 장기화는 전선뿐만 아니라 후방에도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낳았다. 노동자들은 궁핍과 혼란에 직면했고 전통적 노동 방식과 생활 방식을 더는 방어할 수 없게 됐다.

제1차세계대전은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라고 불렸다. 그 말에는 참혹한 살육전은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는 절박한 바람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라는 전쟁 기계는 한시도 멈추지 않고 사람들의 피를 계속 빨아들였다.

그러나 절망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피와 오물이 뒤범벅된 참호 속에서, 내핍을 강요당하는 후방들에서 반란의 불씨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1914년에 전쟁으로 내달렸던 지배자들은 훗날 자신들이 혁명이라는 판도라 상자를 열었음을 깨닫고 경악했다.

따라서 1914년은 30년 넘게 지속된 “전쟁과 혁명의 시대”의 서막이었다.


※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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