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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 청산을 둘러싼 정치투쟁

11월 11일 증거 인멸이 우려된다는 취지로 전 국방장관 김관진과 그의 수하였던 전 국방부 정책실장 임관빈이 구속됐을 때에는 수사가 곧 이명박을 향할 것처럼 보였다.

임관빈이 사이버사령부의 정치 공작(‘심리전’)을 진두지휘했고, 그 활동을 보고받고 정리해 이명박에게 보고한 자가 김관진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가정보원의 비밀자금 격인 특수활동비가 이명박과 박근혜에게 상납된 것도 드러났고, 그 결과로 박근혜의 국정원장들인 남재준과 이병기도 구속됐다.(이병호는 박근혜 지시로 돈을 전달했다고 진술해 구속을 면한 듯하다.)

국정원 특수활동비는 정부가 예산 책정해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것이니, 자기들이 쓸 돈을 자기들이 편성하고 자기들이 통과시켜 국정원에 박아 놓은 것이다.(국정원 활동비 수뢰 의혹을 받는 최경환이 예산을 기획하는 기획재정부장관이었다.)

반격의 시작? 정치공작의 일부인 전 국방장관 김관진이 석방돼 촛불의 분노를 사고 있다 ⓒ출처 KBS뉴스 캡쳐

여기까지 밝혀지는 과정에서 우파의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에 파견돼 국정원 비리 은폐를 공모했던 검사 변창훈이 구속 직전 자살한 것이 한 계기였다. 검찰이 자기 칼날로 자기 식구를 친 셈이 됐다. 황교안의 공안검사 라인이나 우병우 라인이 요직에서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도 없다.

그래서 청와대 현직 정무수석이던 전병헌이 순식간에 비리 피의자로 몰려 구속 직전까지 갔을 때, 정부는 당황했던 것 같다. 11월 20일 공개적으로 당정청 긴급 회의를 열어 (검찰이 반대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도입 등 검찰 개혁의 시급성을 연출했다.

법원 내 동향도 이미 심상치 않았다. 국정원 전 국익정보국장 추명호에 대한 영장이 한 차례 기각되더니, 국정원과 방송 장악을 협의한 것이 알려진 전 MBC 사장 김재철의 구속영장 청구도 기각됐다.

결국 판사 신광렬은 구속돼 있던 김관진과 임관빈(보석)을 구속적부심에서 각각 22일, 24일에 석방했다. 신광렬은 KTX 여승무원의 복직 재판에서 노동자 패소 판결을 내린 매우 반동적인 인사다. 공교롭게도 우병우와 고향(TK)도 같고, 서울대 법대 동문이며 사법연수원 동기다.

그는 증거 인멸이 우려된다고 구속된 김관진·임관빈을 ‘범죄 유무를 다투고 있으니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풀어 줬다. 향후 1심에 영향을 미칠 의도일 것이다. 영장심사도 하나의 재판이므로 그 뒤에 특별한 사정 변경 없이는 구속적부심은 이용하지 않는 추세다.(박근혜, 이재용, 김기춘 등 누구도 이를 신청하지 않았다.) 그런 구속적부심을 김관진과 임관빈이 신청하고, 거기에서 아무 새 반증도 없이 석방된 것은 군부 등 지배계급 내 우파의 조직적 반격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군부의 불만과 관계 있을 것이다. 군부는 심리전이 정당한 안보 활동이라고 강변해 왔다. 체제 수호 기관으로서 군부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안보 강화를 위해 북한 등 반국가 세력과 정당한 안보 (이데올로기) 투쟁을 벌였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국방장관 송영무가 김관진 석방이 “참 다행”이라고 한 것에서 이런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이명박으로 확대되던 수사를 일단 차단하는 효과를 낸 김관진 석방은 적폐 청산 수사에 대한 지배계급 내의 반감도 보여 준다. 아주 초보적인 부패 행위 수사조차 국가기관 내 선출되지 않은 권력자들에 의해 견제·방해받은 것이다.(물론 법원은 전병헌의 구속영장도 기각해 ‘균형감’을 보여 줬다.)

날뛰는 우파와 세력 균형

이 때문에 보수적인 검찰조차 반발한 듯하다.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이 국정원의 범죄는 반헌법적이고 검찰 수사는 정당하다고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해야 체제가 안정된다는 논리인데, 윤석열의 팀답다.

이런 종류의 체제 수호 논리조차 우익 지배자들이 관용할지는 향후의 정치적 세력균형에 달려 있는 듯하다.

문재인 정부는 뒤늦게 용산 참사, 밀양 송전탑 반대, 제주 해군기지 반대, 세월호, 사드 배치 반대 등의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사면 의사를 밝혔다. 이는 적폐 청산 수사 약화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달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조차 좌우 양쪽을 만족시킬 것 같지는 않다.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석기 전 의원 등 석방·사면 요구도 더 커질 것이다.

그러므로 공식 정치의 양극화는 더 심화될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망언 퍼레이드는 그런 정치 양극화의 표현이자 조응이다. 이런 상황에 편승해 박근혜는 재판 거부 투쟁을 벌이고, 최순실은 통곡으로 자기 재판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렸다.

검찰의 구 여권 수사가 촛불의 적폐 청산 염원에 등 떠밀린 것인 만큼 우파의 반격은 계급세력관계를 박근혜 몰락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핵심 요직들은 송영무, 김동연처럼 선출되지 않은 권력자들(이너 써클)과 연계된 자들이 차지하고 있고, 전병헌 수사는 문재인 정부 자신도 부패 고리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보여 줬다.

따라서 촛불의 염원을 이어 가려면 문재인 정부에 의존하지 말고(세월호 특별법은 그 부정적 결과다) 독립적이고 더 급진적인 정치와 운동을 발전시켜야 한다. 특히 노동자 운동 안에서 그래야 한다. 이것이 좌파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