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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피해자 보호는커녕 가해자 편이나 든 경찰

지난 11월 2일, 가정폭력 가해자인 남편이 피해 여성과 아이들이 거주하던 한국여성의전화 부설 가정폭력피해자 쉼터에 침입해 난동을 부린 사건이 벌어졌다.

한국여성의전화 측에 따르면, 가해자는 “자녀를 보기 전까지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며 버텼다. 시설장과 쉼터 활동가들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가해자를 격리하기는커녕 “나도 자녀가 있는 아빠다”, “자녀만 보면 돌아갈 사람이다” 하며 오히려 가해자 편만 들었다.

가해자가 활동가들의 사진을 찍으며 모욕하는데도 경찰은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고, 여성청소년계 경찰관은 활동가들에게 가해자를 대면해 설득하라고 요구했다.

이 사건 직후 한국여성의전화를 비롯한 여성단체 활동가들은 경찰의 부당한 대응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경찰의 공개 사과와 관련자 징계도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들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여성단체들은 11월 30일 다시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에 강력히 항의했다.

11월 20일 경찰의 부당 대응 강력규탄 기자회견 ⓒ김은영

기자회견에 참가한 보호시설 활동가들은 “폭력과 죽음이 두려워 쉼터에 온 피해자들이 여기에서마저 가해자를 만나게 되면 어떤 심정이겠느냐”, “특히 아동들은 또 한 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는다”며 이번 경찰 대응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여성차별적 편견

피해자 보호시설에서 활동하는 한 상담원은 직접 상담한 사례를 들어 여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는 경찰을 강력하게 규탄했다.

“저희 시설에서 보호하고 있는 피해자는 수개월 전 어린 세 자녀를 두고 긴급 피난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생명의 위협에 처했다. 시설에서 생활하면서 간신히 안정을 찾았다. 그런데 두 아이만 데려 오고 일곱 살짜리 막내는 어린이집의 비협조로 데려 오지 못했다. 그 뒤 경찰은 줄기차게 시설에 전화를 걸어 엄마와 시설을 유괴범으로 몰았다. 가해자가 경찰에 집요하게 연락해 귀찮게 하자, 경찰이 시설에 연락해 ‘가해자를 처리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기자회견에서는 또 다른 경찰 피해 사례도 소개됐다. “나는 친족 성폭력과 데이트폭력의 생존자다. 전 남자친구의 데이트폭력으로 심한 폭행을 당해 꼬리뼈가 깨지면서 신경을 다쳐 영구적 배뇨, 배변 장애를 갖게 됐다. 그날도 심하게 맞다가 가해자 몰래 경찰에 신고했다. 그런데 출동한 경찰은 ‘장애인이면 어차피 장애인이랑 결혼해서 살 테니 남자친구랑 앞으로 결혼할 사이 아니냐? 장애인들끼리 서로 돕고 오손도손 살아야지 좀 싸웠다고 이런 걸로 신고를 하냐’고 했다.

“몇 년 후에는 방범창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심한 스토킹을 당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혼자 사냐? 장애까지 있는데 여자 혼자 사니까 이런 일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일로 일일이 신고하면 안 된다. 경찰이 24시간 지켜주는 보디가드인줄 아냐? 이런 걸로 신고해서 세금 낭비하면 되겠냐?’며 나를 나무랐다.”

한국여성의전화는 11월 10일부터 SNS를 통해 가정폭력·성폭력 사건에서 이처럼 경찰이 가해자 입장을 대변한 사례를 수집해 왔다. 이번 사건은 경찰들이 여성 폭력 피해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하고 얼마나 여성차별적 편견을 드러내는지를 보여 주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경찰이 “(가정폭력 신고자에게) 그러게 왜 맞을 짓을 했냐”, “(성희롱 신고자에게) 남자애가 좋아서 그런 거 같은데 그냥 만나줘”, “(가정 폭력으로 인한 멍을 보여줬더니) 이런 상처는 작아서 고소할 수 없는데 아파 죽을 것 같을 때 오지 그랬어” 등의 말을 했다는 피해자들의 제보가 끊임없이 이어졌다고 한다.

공동행동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11월 2일 사건 전후로 경찰에 의한 여성 폭력 피해 112개 증언사례집을 경찰청에 전달했다.

올해로 가정폭력특별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됐지만, 여러 사례에서도 드러나듯 가정폭력에 대한 경찰의 무신경과 무능, 여성차별적 편견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2016년 전국가정폭력실태조사를 보면, 가정폭력 발생시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비율은 1.7퍼센트, 성폭력은 1.9퍼센트밖에 안 된다. 피해자들이 경찰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경찰은 정당한 집회를 막고 지배자들의 재산과 자본주의 국가를 보호하는 데는 열심이지만,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비롯한 평범한 사람들의 안전을 보살피는 데는 열의가 없다.

가정폭력 가해자 편을 들며 피해자들을 위험에 처하게 한 사건의 경찰 관련자들을 즉각 징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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