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란 파페의 새 책 《팔레스타인 비극사》는 1947년 11월 29일 유엔이 팔레스타인 분할에 관한 결의안 제181호를 채택한 뒤부터 이른바 나크바, 즉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 150만 명 중 75만 명을 추방하는 사건이 일단락된 1949년까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벌어진 끔찍한 학살을 다루고 있다.

《팔레스타인 비극사 - 1948, 이스라엘의 탄생과 종족청소》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l 열린책들 l 2017년 l 568쪽l 25,000원

이 책의 저자 일란 파페는 역사학자답게 유대인 공동체의 준군사조직인 ‘하가나’가 추진한 팔레스타인인 추방 과정을 객관적 자료와 증언 그리고 이스라엘의 보고서 등에 기초해 꼼꼼히 분석하고는 이를 반인도적 범죄행위인 종족 청소라고 규정했다.

팔레스타인 분할안

1930년대 영국의 위임통치에 반대해 결성된 아랍고등위원회는 유엔의 분할 결의안에 항의하는 뜻으로 3일 파업을 선언하고 대중 시위를 조직했다. 하지만 이 저항은 강력하지 못했다.

다른 한편 시온주의 세력들은 유엔이 제시한 분할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들은 준군사조직을 동원해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는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1948년 1월 이르군(1931년 하가나에서 분리돼 나온 군사조직)은 예루살렘 서부의 사미라미스 호텔을 폭파했고, 이 공격으로 스페인 영사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사망했다. 시온주의 지도자 벤구리온은 영국 측의 항의도 무시했다.

시온주의자들은 1947년 12월 31일부터 그 다음해 1월 2일까지 긴 세미나를 개최했다. 여기서 내린 결론은 아랍인 비정규 병사들의 유대인 정착촌 공격에 더 과감히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유대 기금 정착부의 책임자인 요세프 바이츠가 이를 잘 표현했다. “유일한 해법은 아랍인들을 여기서 이웃 나라들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단 한 마을, 한 부족도 봐주어선 안 된다.” 이에 따라 수립된 마스터플랜이 종족 청소를 위한 청사진 ‘플랜 달렛’이었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플랜 달렛의 첫 번째 작전인 나흐손 작전부터 임무 완수 때까지의 수많은 작전을 설명한다. 그 일들이 마치 눈앞에 벌어지는 것처럼 생생하다.

서방에 많이 알려진 사건은 데이르야신 학살이다. 1948년 4월 9일 유대인 군대가 데이르야신 마을을 점령하고는 집집마다 기관총을 난사하고 주민들을 한 장소에 모아 놓고 살해했다. 한쪽에서는 시체를 훼손하고 다른 쪽에서는 여성들을 강간하고 살해했다.

유대인 군인들은 아이들을 한 줄로 벽에 세워 놓고 ‘단지 재미 삼아’ 총을 난사하고는 마을을 떠났는데,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소년 자이단이 이 학살을 만천하에 폭로했다. 당시에는 희생자가 254명이라고 했지만,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93명이었다.

이르군 지도자 메나헴 베긴은 희생자 수 부풀리기가 팔레스타인인들을 공포에 떨게 해서 추방하는 데 유리하다고 여겼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자발적으로 떠났다고 주장한다.

데이르야신 학살이 알려지자 미국 뉴욕에서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저명한 유대인 27명과 함께 이를 비판하는 글을 발표했다. 

종교 분쟁

보통 언론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을 종교 분쟁인 것처럼 보도하지만 이 책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역사적 의미가 깊은 지역인 야파의 파괴 과정이 이를 나타낸다. 영국의 위임통치가 끝난 뒤 야파에는 현지 기독교도인 미카엘 알이사가 이끄는 아랍 지원병이 도시를 지키고 있었다. 5월 13일 이르군과 하가나 군대 5000명이 공격을 개시했다. 아랍인 지원병 중에는 성전 협회(1861년 독일에서 설립된 루터 교회의 경건주의 운동에 뿌리를 둔 개신교파의 하나) 신도도 있었다.

반면 팔레스타인 진영을 떠나 유대인 세력에 합류한 아랍인도 있었다. 이슬람교 시아파에서 분리돼 나온 이스마일파의 한 분파인 드루즈인들이 그들이다. 1948년 4월 초 드루즈인 500명이 탈영해 유대인 군대에 합류했다. 비극이게도 드루즈인 부대는 갈릴리에서 종족 청소를 하는 시온주의 운동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티후르

티후르는 히브리어로 ‘청소’를 뜻한다. 이 단어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추방하는 유대인 민병대의 작전에 자주 등장했다. 수천 년 동안 대대로 살던 곳에서 졸지에 추방된 팔레스타인인들은 인근 임시 수용소(어떤 이들은 ‘우리’라고 했다)에 거주했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조상 대대로 살던 삶의 터전으로 되돌아갈 귀환권이 없다.

국제적 압력 때문에 미국이 건성으로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척했지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난민 20만 명을 받아들이겠다고 하자 더는 난민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마치 문제가 다 해결돼 이제는 난민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유엔은 시온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을 때 ‘평화적 해결책’이라는 말만 되뇌며 사실상 수수방관했다. 유엔은 사태가 일단락된 뒤에야 평화안을 내놓았지만 실효성이 없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시온주의 군사조직에 의해 겁에 질려 있었고, 그들의 삶의 터전은 이스라엘 공병대 다이너마이트에 파괴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추방된 지역을 장악한 것은 유대 민족 기금 정착부였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떠나간 지역은 유대인 정착촌이나 시온주의 숲 조성지로 탈바꿈했다. 새로운 유대인 정착촌을 ‘창조’하는 과정에 ‘사막에 꽃을 피우자’라는 구호가 붙었고, 녹색 국토나 생태 사업이 강조됐다. 1960년에 통과된 이스라엘 토지법과 이스라엘 토지 담당국법 등 법률들이 팔레스타인인들로부터 빼앗은 전리품을 지키는 작업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벌어진 나크바(재앙)을 다뤘다. 이 책의 저자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이스라엘로 건너 온 유대인이지만 용감하게 이스라엘의 비윤리적 건국 과정을 폭로하며 추방당한 팔레스타인인들의 무조건적 귀환을 주장해 왔다. 이 때문에 그는 1984년부터 2007년까지 재직한 하이파대학교에서 파면당했고 그 가족도 테러 위협을 받았다.

트럼프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선언한 요즘이 이 책을 읽기 좋은 때인 것 같다. 유대인인 저자가 양심적 지식인이자 사회주의자로서 이스라엘 국가가 팔레스타인인들의 비극 위에 세워졌음을 힘주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