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 추천하고 싶은 신간이 나왔다. 탈북민 주승현 씨의 《조난자들》이다.

저자는 2002년에 탈북해 10년 동안 대학과 직장을 어렵사리 오간 끝에 통일학 교수가 된 30대 후반의 청년이다. 1부는 저자가 경험한 생생하고도 처절한 남한 생존기다. 하나원(탈북민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정부의 수용 기관)에서는 알려 준 적 없는 차별의 현실과 ‘탈남’ 현상의 사회적 배경 등을 다루고 있다.

2부는 남한 현대사에서 가장 굵직했던 탈북·남북 이슈들을 시대별로 짚고, 각 시대의 필요에 따라 탈북민을 달리 대했던 남한 정부의 태도도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조난자들 -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들에 관하여》 주승현지음 | 생각의힘 | 2018년| 200쪽| 12100원

저자는 갈 곳 없는 탈북민을 불순한 의도로 이용하지 말라고 강조하면서, 모든 탈북민을 우익과 동일시하지 말라고도 당부한다.

“[탈북민 중에서는] ‘벙어리새’처럼 입닫기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강력한 프로파간다의 이미지와 존재감을 과시하며 모든 의심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도 있다. … 그동안 ‘탈북자’와 ‘강경 보수’는 이음동의어이자 ‘전가의 보도’나 다름없었다. … 그러나 한쪽에 편중된 확신이나 단편적이고 편향적인 시각으로 탈북민을 이용하거나 매도하려는 시도는 이제 멈춰야 한다.”

저자는 씁쓸하게 말한다. “2014년 오준 한국 유엔대사가 임기 마지막 연설에서 ‘북한 주민은 우리에게 남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이를 지켜보던 한 탈북민 후배의 중얼거림이 지금껏 가슴에 남아 있다. ‘그럼, 우린 남일까요?’”

저자는 남한에서의 여러 경험으로 북한 체제에 비판적인 동시에 남한 사회 주류에도 비판적 의식을 갖게 됐다.

탈북민에게도 광장을

저자는 남한 사회에서 “[근래의 촛불 운동 등] 민중이 다 함께 누릴 수 있는 광장을 확보하기 위해 꾸준히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탈북민은 아직 광장을 마음껏 누리지 못한다.”

저자는 지난해 판문점 탈북 병사 사건을 다루면서, 진보 진영을 향한 쓴소리도 덧붙인다.

저자는 당시 쇄도하던 언론 인터뷰 요청을 모두 거절했다. “언론이 진실을 원한다기보다는, 그저 그를 이용하고 있다는 불온한 생각이 들었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 오면서 체득한 의심이었고 불안이었다.”

이어서 탈북 병사의 내장 상태까지 낱낱이 까발린 군 당국을 비판하고 당시 우파와 보수 언론들로부터 공격받았던 정의당 김종대 의원도 분명하게 방어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그럼에도 김종대 의원과 정의당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사과해야 했다. 어쩌면 평소 북한 인권이나 탈북민 문제에 관심이 없었던 진보 진영 스스로 초래한 업보일지도 모른다.”

우익이 ‘북한 인권’이나 ‘탈북자 인권’ 운운하며 위선을 떨 수 있는 데에는 진보 진영이 탈북민 권리 방어에 소극적인 약점이 작용했다. 친북적 일부는 자발적 탈북민의 존재를 부정했다. 개혁주의적 일부는 침묵하거나 소극적인데, 이는 탈북민 문제를 쟁점화하면 남북화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거나 탈북민 대다수가 우익이라는 오해의 반영인 듯하다. 

저자의 말처럼 “3만 5000개의 편의점은 매일 마주하지만, 우리 사회에 살고 있는 3만 1000명의 탈북민은 쉬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 책은 “유령”처럼 살기를 강요당하는 탈북민들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고, 그들에게 연대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왜 북한과 남한 모두 인민의 쉴 곳이 못 되는가

목숨 건 탈북 후에도 끝나지 않는 탈북민의 고통은 남과 북 어느 곳도 대안 사회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심각한 빈곤과 탈북이 계속되는 북한 체제는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 사상인 사회주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한편 북한의 빈곤 실태를 비웃고 비난하는 남한 우익들은 남한에서도 굶어 죽는 청년과 독거 노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마르크스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말했다. 자본주의는 세계 체제이고, 이 사회에서는 국경보다 계급이 더 근본적인 분단선이기 때문이다.

이주의 자유와 자유 왕래가 더 나은 삶을 선택하려는 노동계급의 권리(자유)가 돼야 하는 이유다. 국제주의자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남·북한 노동자들도 휴전선을 넘어 자유롭게 만나고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탈북민을 대하는 올바르고 일관된 태도는 이런 원칙을 굳건히 할 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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