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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
전쟁에 반대한다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베트남인들의 죽음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현에서 79명(또는 69명)의 베트남 여성과 어린이들이 총칼에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다. 집이 불타고 잔혹하게 훼손된 시체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한국군이 자행한 퐁니·퐁넛 학살 사건이다.

이외에도 한국군이 저지른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80여 건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총 5개 성에서 9000여 명이 사망했고, 꽝남성에서만 4000여 명이 죽었다.

베트남 빈딘성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베트남 정부의 공식 문서에는 당시 학살당한 이들의 이름과 나이, 성별이 적혀 있다. “2세, 3세, 4세, 5세. 아기와 꼬마들이었다. 그리고 71세, 68세, 62세, 55세. 노인들이었다. 베트콩으로 판단 내릴 수도 있겠다 싶을 사람을 굳이 찾자면 18세 남자 딱 한 명이었다.”(〈오마이뉴스〉, 2014년 2월 26일자)

미군조차 한국군을 “잘 싸우지만 지나치게 잔인하다”고 평가했다. 한국군의 전술 지침은 “물(인민)을 퍼내서 물고기(베트콩)를 잡는다”였다. 민간인 학살 사건 조사에 참여한 한 군인은 이렇게 말했다. “베트콩이 나타나면 마을을 몰살시켰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손자, 며느리 다 죽여 버렸어. 싹 쓸어 버렸어.”(《베트남 전쟁》, 박태균)

한국군과 국방부는 민간인 학살을 부인해 왔다. 북한군의 소행일 뿐이라거나 당시 민간인과 베트콩의 구분은 무의미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 교과서도 한국군 민간인 학살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베트남전이 가져온 전쟁 특수가 한국 경제를 부흥시켰다는 내용이 더 강조돼 있다. “한국의 어느 대학 교수는 베트남 전쟁을 ‘신이 한국에 내린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현재 한국 사회가 기억하는 베트남 전쟁을 가장 직설적으로 보여 주는 표현이었다.”(《베트남 전쟁》, 박태균)

끔찍했던 학살의 기억은 결국 베트남인들의 몫으로 남았다. 베트남인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한국군 증오비를 세우고, 매년 같은 날 ‘따이한(한국) 제사’를 지낸다.

꽝응아이성에 있는 빈호아 학살 증오비 ⓒ출처 한베평화재단

박정희 독재 정권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계기로, 5·16 쿠데타 이후 미국의 신임을 얻고 국내에서는 반공주의와 사회적 통제를 강화하고자 했다. 박정희는 1964년부터 9년 동안 32만 5000여 명을 베트남에 파병했다. 한국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장기간의 해외 파병이었다. 1972년에는 파병 한국군의 수가 미군의 수를 넘어서기도 했다.

파병된 한국군도 전쟁 피해자로 남았다. 한국군 5000여 명이 사망했고 살아 돌아온 병사들도 대부분 부상과 고엽제 후유증, 전쟁 트라우마로 삶이 망가졌다.

지난해 현충일에 문재인은 “베트남 참전 용사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조국 경제가 살아났다”며 찬양했다. 문재인은 노무현 정부가 국익 논리를 내세워 이라크에 파병했을 때도 그 일부였다.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인들은 믿을 수 없이 끈질기게 미국에 맞섰다. 그 저항은 끝내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반전 운동을 촉발시켰다.

우리가 기억하고 이어 받을 것은 끔찍한 전쟁과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던 한미동맹이 아니라, 베트남인들의 영웅적인 전쟁 반대 정신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