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정문에 들어서면 ECC(이화캠퍼스복합단지)라는 거대한 유리 건물이 있다. ECC는 고급 음식점, 영화관, 대형 공연장, 약국, 은행 등 온갖 상업 시설들이 들어차 관광객이 수없이 드나드는 건물이기도 하다. 학교 당국이 ECC를 이화여대의 ‘얼굴’처럼 여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그 ‘얼굴’ 같은 건물을 항상 깨끗하게 유지하는 청소 노동자들은 매연이 가득한 지하 주차장 쪽방을 휴게실로 사용하고 있다.

ECC 지하 주차장은 이화여대를 오가는 차량 대부분이 이용한다. 외부 행사라도 있으면 하루에도 수백 대가 오간다. 차가 많이 드나들수록 학교 당국은 비싼 주차료로 돈을 벌겠지만, 청소 노동자들은 더 많은 매연을 들이마신다.

축적되는 병

노동자들은 여러 해 전부터 휴게실을 바꿔 달라고 요구해 왔다. 그러나 학교 당국은 미온적인 태도만 보인다. 그러는 동안 노동자들의 건강은 심각하게 위협받았다. 이곳에서 10년 정도 일한 노동자 두 명이 암 수술을 받았고, 한 명은 사망했다.

“여기서 일하는 아줌마들이 비염이 많이 걸리고, 코가 헐고, 입이 헐고, 감기에 잘 걸리는 거야. 기관지가 안 좋으니까. 병이라는 게 조금씩 조금씩 축적돼서 걸리는 거지, 하루아침에 ‘당신 암에 걸리시오’ 해서 걸리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나중에 확 번져서 저쪽[ECC 서쪽 건물]에서도 암 수술받은 사람이 하나 있고, 여기 여사님도 암 수술을 받았어.”

“61살 된 사람도 여기서 오래 일했는데, 지금 60세면 (다른 고령의 노동자들에 비해) 어린애나 마찬가지잖아. 한창때인데, 이게 누적이 된 거야. 그래서 집에 갔다가 쓰러져서 다음 날 세상을 떴어.”

노동자 휴게실 : 바깥에서 본 광경

청소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휴게실은 주차권을 발급하는 주차관리실 옆에 있다. 그러다 보니 차들이 청소 노동자 휴게실 앞에 멈춰서서 매연을 뿜는다. 지하의 공기를 순환시키는 기계가 있지만 별 소용이 없는 데다가, 소음 때문에 휴게실에는 ‘우웅’하는 기계음이 쉴 새 없이 귓전을 때린다. 대부분 고령 여성인 청소 노동자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리는 여기[휴게실]에 집보다도 오래 있어요. 일하고 나면 눈이 침침해요. 조금씩 조금씩 이러다가 누구 하나 쓰러지면 어떡해. 더 큰 사고 나기 전에 학교에서도 생각을 해야 해.”

발암 물질 가득한 지하 주차장

2011년, 한 주상복합아파트에서 지하 주차장 매연을 마시며 일하다 폐암으로 숨진 청소 노동자가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은 바 있다.(서울행정법원 행정5부) 이 노동자의 휴게실도 역시 지하 주차장에 있었다. 당시 이 노동자의 휴게실 내 디젤 배출물질과 발암물질인 라돈의 수치가 외부 대기보다 3배 정도 높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디젤 배출가스를 1등급 발암물질로 규정했고, 가솔린 배출가스도 발암 가능 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ECC 청소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도 지하 주차장에서 뿜어대는 배기가스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학교 총무처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노동자들에게 공간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총무처가 건물 내 마땅한 자리가 있으면 찾아보라 했지만, 노동자들이 장소를 제안할 때마다 “이 곳은 강의실이어서 안 된다, [비어 있어도] 강의실 용도로 만들어진 곳이어서 안 된다” 하며 차일피일 미뤄 왔다. 심지어 노동자들이 사용하면 냄새가 난다는 모욕적인 핑계까지 댔다고 한다.

“우리가 강의실 옆에서 떠드는 것도 아니고, 점심 먹고 또 나가서 일하는데 뭐가 문제냐고 하니까, 냄새 얘기를 하더라고. 냄새 나는 걸 가져와서 먹으면 냄새가 잘 빠지질 않는다는 거야. 우리 생각엔 핑계야.” 

노동자 휴게실 : 안에서 내다 본 광경

임대료보다 값싼 노동자 건강?

정말 공간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학교 당국은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상업 시설을 노동자들의 휴게실보다 우선시한다. 한 번은 노동자들이 괜찮아 보이는 공간을 제시했지만, 학교 당국은 묵묵부답이었다. 이후 현장 소장을 통해 간접적으로 들려온 학교 당국의 의중은 ‘쓰려면 임대료를 내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달라고 한 공간은 안경점, 편의점 등 세 군데가 임대료를 내고 창고처럼 쓰고 있는 곳이야. 말하자면, 우리를 주면 임대료가 안 나오니까 안 주겠다는 식으로 나오는 거지. 그런데 사람이 먼저잖아. 돈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야.”

심지어 현장 소장마저 매연에 못 이겨 사무실을 옮겼는데, 어처구니없게도 학교 당국에 임대료를 내고 살고 있다고 한다.

“이전에 소장님이 지하 주차장 6층에 방이 있었어. 근데 냄새가 안 좋고 자꾸 병이 나니까 방을 바꿔 달라고 해서 대학원관으로 갔는데, 한 달에 20만 원씩 임대료를 내고 있다더라고.”

이화여대 당국은 적립금 수천억 원을 쌓아 두고, 관광객을 위한 돈벌이용 건물들(고급 카페, 기념품 가게)은 순식간에 뚝딱 지으면서 그 모든 건물을 관리하고 깨끗하게 만드는 노동자들을 완전히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돈보다 사람이 먼저다

특히 이화여대가 여자 대학이고, 여성 인권을 운운하는 상황에서 고령 여성 노동자들의 건강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은 완전한 위선이다. 3월 8일 여성의 날을 앞둔 오늘날, 소수의 이대 고위층들은 쾌적한 업무실에서 일하지만,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은 시꺼먼 매연 속에서 일하고 있다.

“[학교 고위층들은] 여기가 하나님의 학교라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있어서 잘하고 있다고 하지만, 하나님도 여기 매연 있는 데에 아줌마들 앉혀 두라고 안 했을 거야. 저 사람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것은 하나님 찾고 유리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 안 찾아.”

“[그 사람들이] 단 5일 만이라도 일해 보라고 해봐. 며칠은커녕 [휴게실] 문 앞에 들어오자마자 못하겠다고 할걸.”

수천억 적립금을 쌓아 놓고 노동자들의 건강은 아랑곳하지 않는 이화여대 당국은 당장 노동자들에게 쾌적한 휴게실을 제공해야 한다.

노동자 휴게실 : 환기구가 주차장과 바로 연결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