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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
직무급제가 공정하고 더 나은 임금체계인가?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임금 체계 개편을 통해 ‘공정 임금’을 확립하겠다고 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공공부문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들에게 적용할 ‘공공부문 표준임금체계 모델(안)(이하 표준임금모델)을 내놨다. 공공부문 임금체계 개편안도 상반기 중에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제시하는 임금 체계는 직무급제(또는 직무성과급제)다. 정부는 ‘동일노동가치 동일임금’과 임금 격차 해소를 새 임금 체계 도입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제시하는 직무급제는 결코 공정하지 않고, 임금 불평등을 줄이지도 못한다.

직무급제는 임금 인상 억제와 하향 평준화를 노린다 ⓒ출처 민주일반연맹

첫째,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공정임금’은 임금 상향평준화가 아니라 임금 억제와 하향평준화를 노리고 있다.

호봉제를 최대한 약화시켜 근속에 따른 임금 상승을 최대한 억제하려는 것이다. 특히 정부는 공공부문(과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을 정조준하고 있다. 직무급제를 도입하면, 직무 등급 내 임금상한선을 둬서 임금 상승을 억제하기 쉽다.

심지어 무기계약직 임금도 억제된다. 예를 들어 정부가 내놓은 표준임금모델에 따르면, 무기계약직 1직무 등급(최하 등급)은 30년을 일해도 9급 공무원 1호봉의 급여 수준을 넘지 못한다.

직무급제가 임금을 삭감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직무(능)급 임금체계 전환을 위한 직무가치 평가에 관한 연구’(2009)가 잘 보여 준다. 직무급제를 도입하면 대부분의 산업에서 기본급 15퍼센트가량이 하락했다. 특히 남성, 중장년층, 대졸 노동자의 임금 삭감이 두드러졌다. 저임금 산업도 임금이 하락한다. 고임금 산업보다 하락률이 작을 뿐이다.

임금 억제

둘째, 문재인 정부는 임금에서 성과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최근 기재부는 공공기관 지침 개정안에 박근혜 정부가 만든 성과연봉제 권고안을 고스란히 포함하려 했다. 노조들의 반발로 일단 제외했지만, 기재부는 한사코 성과연봉제 권고안을 폐기하지는 않고 있다.

또 박근혜 정부가 5급 이상 공무원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고 하위직 공무원들에게 확대한 성과급 강화 조처(성과급 격차 확대 등)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주요 인사들이 ‘직무급제’와 ‘직무성과급제’를 구분 없이 사용하는 것도 성과급 요소를 포함시키려는 의도를 보여 준다. 실제 국내 기업들이 도입한 직무급제는 대부분 성과 평가가 반영된 직무성과급제이다. 성과급 요소가 커지면 상사의 인사 평가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셋째, 직무급제는 직무 가치 평가가 중요한데, 직무 평가는 ‘공정’할 수가 없다. 사용자가 직무 평가를 주도하기 때문이다.

사측은 수익 창출 기여도를 중심으로 직무의 중요도를 결정하기 마련이다. 그 외의 업무는 높은 임금률을 적용 받기 어렵다.

공정하지 않은 직무 평가

또 직무 평가는 대개 시장 임금 수준을 반영한다. 기존의 임금 차별을 그대로 반영하게 된다는 뜻이다. 직무급제가 여성 임금 차별을 해소하지 못하는 이유다.

미국, 영국 등의 직무급제도 임금 격차 축소나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달성하지 못했다.

이런 논란을 의식해, 직무 평가에 노조가 참여하는 대안이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노조가 참여하더라도 직무 평가에 따라 임금 차등을 수용해야 하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게다가 노조가 직무 평가에 합의하면 오히려 직무 간 임금 격차가 ‘공정’하다는 정당성을 부여해, 노동자들이 이의를 제기하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직무급제가 ‘협력적 노사관계를 유도하는 장치’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독일처럼 산별 협약으로 직무 평가를 하는 방법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근 독일 공공부문은 노사합의로 가장 낮은 임금 등급인 1등급보다 더 낮은 E1 등급을 만들었다. 이것을 주도한 것은 서비스부문 산별노조인 베르디였다. 1등급보다 더 낮은 직무 등급을 만들어야 공기업들의 외주화를 막을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바람직한 임금체계 모색’, 《노동사회》 198호)

이상을 종합하면 이렇다. 직무급제는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구실을 한다. 또, 직무 “세분화”로 직장은 더 위계적이 되고, 노동자 간 경쟁이 강화될 것이다. 직무에 따른 차별은 ‘공정한 차이’로 둔갑해 임금 차별을 정당화하는 구실을 할 것이다.

정부는 직무급제가 청년·여성 등에 유리한 임금체계라고 주장한다. 청장년, 남녀 노동자를 이간질해 새로운 임금체계 지지 분위기를 만들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성에 대한 임금 차별, 청년 노동자들의 낮은 초임 불만 등에 공감하는 듯이 말한다.

그러나 이는 위선이다. 비정규직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청년과 여성에게 적용될 표준임금모델은 그들을 저임금층에 고착시킬 우려가 크다.

또 공공과 민간 부문 모두에서 사용자들은 임금체계 개편을 시도하면서 동시에 초임 수준도 공격해 왔다. 신규 직원들에게만 수당을 폐지하거나 연봉제를 적용하는 방식 등으로 말이다.

임금피크제 도입 때도 정부는 연령이 높은 노동자들이 일자리와 임금을 독식한다고 비난하며 청장년 노동자 사이를 이간질했다.

이런 공격은 순차적으로 조건을 악화시켜 결국 모두의 조건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노동자 각개격파다.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을 줄여야 차별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정부의 주장은 하향평준화로 이어질 것이므로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 임금 공격에도 분명히 반대해야 한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무와 능력에 따른 공정한 보상은 환상이다.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이 만들어 낸 가치보다 더 적게 임금을 주고 이윤을 뽑아 내는 착취에 바탕한 체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본주의적 ‘공정성’ 논리는 실업에 고통 받고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하는 청년들에게 결국은 개인의 능력 문제라며 잔인하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이런 이간질에 제대로 맞서려면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 저지를 분명히 하고, 사용자들의 주머니에서 재원을 끌어와 임금을 상향평준화하라고 요구하며 싸워야 한다.

투쟁을 연결해 함께 싸워야

우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저임금 고착화를 강요하는 표준임금모델을 저지하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 정부가 노동계의 반발 때문에 표준임금모델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고 봐서는 안 된다.

정부는 표준임금모델을 발표하면서 장애인공단, 청사관리본부, 고용노동부 소속기관들의 적용 사례도 밝혔다. 노조로 잘 조직돼 있어 반발이 큰 곳은 미뤄 두고 취약한 곳부터 추진해 점차 확대해 가려는 구상인 것이다.

배동산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정책실장은 이런 식으로 “정부 표준안을 비정규직 임금체계의 대세로 만들려고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 당장 우리에게 닥친 문제는 아닐 수도 있지만, 현재 정부의 표준임금제가 힘을 받을수록 우리들의 차별 철폐와 처우 개선 투쟁도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노동운동 일각에서는 직무에 따른 표준 임금을 도입하는 것 자체는 긍정적이라며, 이를 통째로 걷어차 버려선 곤란하다고 말한다. 노정 교섭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봤듯이 직무급제가 더 나은 임금체계인 것은 아니다.

게다가 지금은 정부가 개별 기관에서 표준임금모델을 관철하려는 것을 저지하는 게 중요하다. 민주노총과 해당 산별·연맹들은 개별 사업장에서 해당 노동자들이 각각 대응하도록 하지 말고, 표준임금모델 해당 사업장 노동자들을 연결해 투쟁을 조직하고 이끌어야 한다.

비정규직 저임금 고착화 시도를 막아 내야 곧 본격화될 공공부문 정규직 임금 공격에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공공부문 무기계약직 표준임금모델

저임금 고착화로 격차 해소하겠다는 넌센스

정부는 ‘정규직 전환’ 정책을 추진하면서 무기계약직 전환자에게 적용할 새 임금체계 안(‘공공부문 표준임금체계 모델’)을 내놓았다.

이번 전환 대상 중 약 64퍼센트에 해당하는 청소, 경비, 시설관리, 사무 보조, 조리사 직종이 1차 적용 대상으로 꼽힌다. 정부는 표준임금모델을 공공부문 무기계약직 전반으로 확대해 나가려 한다. 그리 되면 40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이 모델을 적용받게 된다.

정부는 표준임금모델이 직무급제로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취지를 살리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임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모델의 도입 취지에서 “호봉제 중심의 기존 임금체계 편입 시 급격한 재정부담[을] 우려”했음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표준임금모델에 따르면, 가장 낮은 직무 등급의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또, 15년이 걸려 최고 단계(6단계)로 승급해도 1단계에서 받던 임금의 10~18퍼센트를 더 받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승급조차 “근속년수에 따라 매년 자동승급 되는 것은 아[니다.]” 근무성적평가 또는 시험을 거쳐야 한다. 심지어 숙련 기간이 짧은 단순 직종의 경우에는 단일임률(1단계) 또는 2~3단계로 승급을 제한할 수 있게 했다. 임금 인상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기존 임금수준이 표준임금모델보다 높은 경우에는 “차별적 임금인상률 적용 등을 통해 단계적으로 표준임금모델 수준과 일치”시킨다는 계획이다. 비정규직 임금조차 하향평준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새 임금체계인 직무급은 “저숙련 인력”에게 근속에 따른 임금 상승을 억제하는 방법이자, 직무별 임금 차별을 정당화하는 방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