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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20BPM:
제약회사와 정부에 맞서 떨쳐 일어났던 에이즈 감염인들

1990년대 파리를 배경으로 HIV/에이즈 감염인과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공식 개봉했다. 영화 〈120BPM〉은 해외에서 2017년 8월 개봉했고, 한국에서도 올해 3월 개봉했다. 이 영화는 제70회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비롯해 3관왕을 석권했다.

로빈 캄필로 감독은 ‘액트업 파리’ 활동가 출신으로 “이 영화는 에이즈로 먼저 눈을 감은 사람들, 가혹한 대우를 받으면서 싸웠고 또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헌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고 밝혔다.

영화는 ‘액트업 파리’의 활동과 활동가들의 치열한 삶을 다루고 있다. ‘액트업 파리’는 “HIV 감염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액트업 뉴욕’에 이어 1989년부터 시작한 에이즈 감염인과 지지자들의 운동 단체다. ‘액트업 파리’는 에이즈 감염인의 인생을 볼모로 장사를 하는 제약회사, 입에 발린 소리만 늘어놓는 파리에이즈퇴치기구를 비롯한 정부 기관에 맞서 전투적 행동을 벌였다.

1980년대는 에이즈로 수만 명이 죽어가는 시대였다. 특히 많은 동성애자들이 예방법을 몰라 감염되고, 고통받다 죽어 갔다. 그런데도 각국 정부는 나 몰라라 했다. 미국에서 최초로 에이즈 환자가 발견된 것이 1979년이었지만 대통령 레이건은 1987년이 돼서야 처음으로 에이즈를 언급했다. ‘악수를 통해 전염된다’를 비롯해 에이즈에 대한 온갖 거짓 정보와 오해가 난무했고 주류 언론은 이런 오해를 부추겼다.

특히 에이즈에는 “게이 돌림병”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영화에서도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인 나톤은 처음으로 잡지에서 게이를 보게 됐는데, 그가 바로 “에이즈에 걸려 괴물 같이 변해 버린 게이”였다고 말한다.

당시 에이즈 감염인들은 심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질병과 공포 속에서도 정부의 무대책과 언론의 거짓 정보에 맞서 전투적 행동을 이끌었다. 에이즈로 많은 동성애자들이 죽어 나가면서도 숨죽여야 했던 그때, 이런 저항을 통해 한 세대가 새롭게 급진화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이런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액트업은 에이즈 약값 인하를 요구하며 제약 회사 버로스웰컴 본사에서 연좌 농성을 벌였다. 전쟁이 아니라 연구에 돈을 쓰라고 요구하며 백악관으로 행진하고, 식품의약국을 점거하고, 반동성애 언론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 투쟁들을 통해 식품의약국의 연구가 당겨지고 가짜 약이 가려지는 등 귀중한 성과를 얻었다. (《무지개 속 적색》 170~171쪽 참조)

영화 전반부는 이런 액트업의 전투적이고 용기 있는 저항을 잘 묘사한다. 영화 속 ‘멜톤 제약회사’는 에이즈 관련 신약 개발에 거의 성공했다. 그런데 그 결과를 1년 뒤에나 베를린 에이즈 학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힌다. AZT(에이즈 치료제의 일종)도 DDI(에이즈 치료제의 일종)도 듣지 않는 에이즈 감염인들, 1분 1초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절박한 사람들에게 1년이나 더 기다리라고 얘기한 것이다.

‘액트업 파리’ 활동가들은 통쾌하게도 제약회사로 쳐들어간다! 수십 명의 활동가들이 가짜 피를 던지며 “살인자 멜톤제약”, “너희가 죽였다” 하고 외친다. “당신들의 상황이 절박함을 이해한다”는 제약회사 측에게 주인공 션은 “AZT를 네 시간마다 먹고, 밤새 (부작용으로) 설사하고 있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하고 쏘아붙인다. 이런 저항으로 제약회사는 예정보다 빨리 신약을 일부라도 내놓게 된다.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해마다 파리에서 감염인이 6000명씩 늘지만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 감염인 활동가들은 에이즈 감염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정부 기구에 맞서 연단을 점거하고,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으라고 구호를 외친다.

이들은 거리에서도 시위를 조직한다. 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제약회사에 몸을 묶어 항의하고, 파리 도심을 휘저으며 행진한다. “살인자 미테랑(대통령), 죽음에 책임 있다” 하고 외치며 말이다.

이들은 전투적 행동을 벌이는 동시에, 매주 회의에서 어떻게 싸워나갈지 토론하고 논쟁한다. 그 열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심장이 뛰는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서는 ‘액트업 파리’ 활동가들의 사랑과 삶을 다룬다. ‘액트업 파리’는 에이즈 감염 예방을 위해 고등학교를 돌며 홍보물과 콘돔을 나눠 주는 캠페인을 진행한다. 유인물을 나눠주는 나톤에게 한 학생이 “전 호모 아닌데요”, “에이즈 ‘찌라시’ 받기 싫어요” 하며 모욕을 준다. 그러자 그 학생에게 션과 나톤은 키스로 응수한다. 이후 에이즈 감염으로 그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어 왔고, 바뀌어 가는지 영화는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에이즈 감염인의 삶과 그들의 투쟁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한국에서도 우익들이 조장하고 있는 “동성애=에이즈”라는 케케묵은 편견에 맞서 어떻게 싸울지 고민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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