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신문〉 강국진 기자는 탈북자 토론회가 “현학적”(〈시민의신문〉 제594호)이었다고 폄하한다. 김하영이 단지 “탈북자 전면 수용을 촉구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왜곡이다. 김하영은 “이주의 자유라는 원칙”을 강조했지만, 그와 동시에 현실에서 탈북자들이 겪는 구체적 억압 조치들에도 반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북 압박에 이용될 여지 같은 미묘한 문제 등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청중 토론에서 발언한 6명 가운데 3명이 다함께 회원이었다는 것을 문제삼는 것은 어이가 없다. 이 날 토론회의 연사 3명 가운데 2명이 다른 단체 활동가들이었다.

발언을 신청한 사람은 누구나 발언 기회를 얻었고, 민주노총 활동가는 두 차례 발언 기회를 얻었다.

강국진 기자도 발언 기회를 얻었다. 이런 토론회가 “일방적”이라면, 아무 주장도 하지 않은 채 이견을 남겨 두는 토론이 공정한 것인가.

강국진 기자가 이 날 토론이 “현학적”이었다고 생각하는 진정한 이유는 이주의 자유가 공상적이라는 그의 가정 때문이다.
그는 “이주권 전면 보장” 요구가 “급진적”이기는 하지만 “구체적”이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 실현 가능한 수준의 요구 ― 즉, 지배자들이 받아들일 법하다고 여겨지는 요구 ― 만이 운동의 목표가 돼야 한다는 생각은 편협한 개량주의다. 

이주 규제 ― 특히, 북한이나 중국 정부의 ― 가 탈북자들이 겪는 억압과 고통의 근원인 상황에서 탈북자들의 이주 자유권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현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