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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 구조조정: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했지만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4월 27일 산업은행과 GM 본사가 한국GM에 자금을 투입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이에 따라 올해 한국GM, 금호타이어, STX조선·성동조선 등에서 벌어진 구조조정 국면이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GM에 대한 최종 실사 보고서가 나오는 5월까지 산은과 GM이 자금 투입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합의해야 하지만, 큰 변화는 없을 듯하다.

산은과 GM은 한국GM에 총 70억 5000만 달러를 투입하는데, 이 중 63억 달러(6조 8000억 원)는 GM이, 나머지 7억 5000만 달러(8100억 원)는 산은이 분담하기로 합의했다.

그 대신 GM은 부평 공장과 창원 공장에 신차 두 종을 배정하는 등 한국GM의 생산시설을 10년 이상 유지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산은은 GM의 한국 철수를 막을 ‘비토권’을 다시 얻기로 했다.

GM과 정부의 책임은 없고, 노동자에게만 고통이 전가됐다 ⓒ조승진

이번 구조조정으로 한국GM 노동자들은 또다시 고통을 전담하게 됐다.

이미 한국GM 노동자들은 수년간 조업 단축 등으로 임금이 대폭 삭감된 상태였다. 그래서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이 국내의 다른 완성차들보다 낮았다.

여기에 군산 공장 폐쇄와 2500여 명 ‘희망퇴직’, 임금 동결과 성과급 삭감, 복리후생 축소가 더해졌다. 한평생을 바쳐 온 직장에서 ‘희망퇴직’으로 밀려난 절망감 때문에 한국GM 노동자 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GM 사측은 이번 구조조정으로 매년 4000억~5000억 원의 비용을 절감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반면, 자신의 책임은 최대한 회피했다.

한국GM 경영 실패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인 ‘대주주 차등 감자’를 GM은 한사코 거부했다. GM은 한국GM에서 받아야 할 차입금 27억 달러를 출자전환 한다고 밝혔지만, 이는 GM이 그동안 한국GM에서 빼간 돈을 되돌려놓는 것일 뿐이다.

앞으로 10년간 36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것도 ‘약속’일 뿐이다. GM은 2013년에도 신규 투자 8조 원을 약속했지만 그동안 투자는커녕 빚만 늘었다.

불확실한 미래와 계속될 구조조정

산업은행은 경영 실사를 통해 한국GM의 원가구조 등을 살펴보려고 했지만, GM은 관련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결국 앞으로도 한국GM에서 돈을 빼가는 구조는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GM은 2019년 말부터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부평 공장에서, 2022년부터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을 창원 공장에서 생산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불확실한 계획일 뿐이다. 특히, 창원 공장에서 생산하겠다는 CUV는 4년 뒤에 생산할 예정이라 아직 차체 디자인조차 완성되지 않은 ‘상상 속의 차’다.

과거에도 GM은 신차 투입을 약속했다가 말을 뒤집은 적이 있다. 2014년 8월 임단협을 통해 군산 공장에서 크루즈를 생산하겠다고 합의했으나, 불과 몇 달 뒤인 2014년 말 ‘교대제를 개편해야 신차 투입이 가능하다’고 말을 바꾸었다. 결국 비정규직 700여 명이 해고됐다.

부평 2공장에는 현재 생산 중인 말리부 후속 모델 물량을 확보하기 위한 ‘미래발전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추가적인 구조조정이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

불안정한 세계경제 변화에 따라 GM을 비롯한 세계 자동차 기업들의 경영 전략도 몇 년 만에 바뀌곤 한다. 경영 전략 변화에 따라 GM의 약속은 얼마든지 공수표가 될 수 있다.

노동자 양보만 강요한 문재인 정부

‘일자리 대통령’을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는 이번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희생만 강요했다.

성동조선·STX조선 구조조정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해고와 임금 삭감을 추진했다.

성동조선의 법정관리를 신청해, 성동조선 노동자 12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을 위험에 처하게 됐다.

STX조선에 대해서도 생산직 75퍼센트를 해고하지 않으면 법정관리가 불가피하다고 협박해, 결국 노동자 임금이 최저임금 수준으로 삭감됐다. 게다가 해고는 하지 않겠다는 합의서에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았는데도 STX조선 사측은 최근 외주화 계획을 다시 실시하겠고 밝혔다.

금호타이어 매각 때도 마찬가지였다. 노조가 계속 버티자 산은은 “청와대가 와도 (파산은) 못 막는다”며 양보를 종용했다. “금호타이어가 쌍용자동차의 고통과 슬픔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던 대선 때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 버리고, 노동자 일자리가 아니라 기업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국GM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는 임단협에 개입할 수 없다고 말해 왔다. 산은 회장 이동걸은 노조가 만나자고 요청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내가 노조를 만날 자격이 없다”고 거듭 얘기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부·여당이 GM 사측과 구조조정에 대해 긴밀하게 협의해 왔음이 드러났다.

임단협 막바지에 산은 회장 이동걸은 아예 교섭 자리에 노사와 함께 참석하겠다고 나섰다. 노조는 이동걸이 교섭장에 참석하려 하는지도 몰랐는데, GM 사측은 이미 정부와 얘기를 마치고 교섭장에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명패까지 준비해 올려 놓았다고 한다.

반면, 정부는 GM 사측의 책임을 묻는 데는 열의가 없었다.

애초에 정부는 ‘대주주 책임론’을 내세우며 GM 소유의 한국GM 주식에 대해 차등 감자를 요구했지만, GM이 완강하게 거부하자 슬그머니 거둬들였다.

더 나아가 산업은행은 한국GM의 실사보고서가 완료된 5월에 지원 여부를 확정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중간 실사 결과가 긍정적이라며 지원 약속을 4월 말로 앞당겼다. GM이 실사 자료 제출을 계속 거부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러니 산업은행이 ‘비토권’을 다시 얻는다 한들, GM을 제대로 감시하고 일자리를 지키는 데 나설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힘들다.

양보 교섭으로는 일자리를 지킬 수 없다

그동안 한국GM 노조 지도부가 임금 동결 등을 약속하고, ‘희망퇴직’ 실시에 강하게 맞서 싸우지 않으면서 거듭 후퇴해 온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GM 노조 지도부는 교섭에 들어가면서 이미 임금 동결과 성과급 반납을 양보했고, ‘희망퇴직’에도 강하게 맞서지 않았다. 그러나 사측은 복리후생비 1000억 원 삭감이라는 더한층의 양보를 요구했다. 결국 한국GM 노조 지도부는 군산 공장 노동자의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며 군산 공장 폐쇄와 복리후생비 추가 삭감까지 동의해 줬다.

금호타이어 노조 지도부도 일자리와 임금을 지키는 투쟁을 일으키려 애쓰기보다 국내에서 인수할 기업을 찾는 데 힘을 쏟았다. 노동자들의 조건이 어느 정도 희생되더라도 국내 매각이 대안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다가 물밑에서 인수 의향을 밝힌 국내 기업이 인수를 포기하자 곧바로 속절없이 무너져 버렸다.

그러나 본지가 주장해 왔듯이, 노조가 거듭 양보해도 고용 불안이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불안을 가중시킨다.(관련 기사: 232호 ‘어떻게 GM은 세계 곳곳에서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해 왔는가?’를 보시오.)

예를 들어, 지난 수십 년간 GM은 세계 곳곳에서 노동조건 악화를 강요하며 노동자들을 서로 경쟁시켜 왔다. 미국이나 유럽, 호주 등지에서 노조 지도자들은 일자리를 지키려면 임금 삭감과 노동강도 강화 등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호주 노조 지도자들도 GM의 “생산성 향상” 요구를 충족시켜야 공장 폐쇄를 막을 수 있다는 논리로 양보를 거듭했다.

그러나 거듭된 양보는 노동자들을 더 열악한 조건으로 내몰았고, 조건 하락과 인원 감축으로 노동자들은 싸울 자신이 점점 없어진 경우가 많았다.

절정기에 2만 4000여 명이었던 호주 GM 노동자 수는 계속 감소했고, 결국 GM이 2013년 공장 철수를 결정했을 때는 이미 거듭된 양보로 조직력과 저항력이 약화돼 제대로 맞서 싸울 수 없었다.

진정한 대안

사용자의 비용 절감 추진에 협조해 회사부터 살리는 게 결코 일자리를 지키는 길이 아니라는 것이 지난 수십년 동안 구조조정을 겪은 전 세계 노동자들이 경험한 진실이다. 일자리를 지키려면 사용자의 공격에 맞서 싸워야 한다.

열심히 일했을 뿐인 노동자들이 공장 폐쇄·철수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 일자리를 지킬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일자리 대통령’을 자처한 문재인 정부가 부도·파산 위기에 처한 기업을 국유기업화 해서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지역 주민들의 삶을 지키는 책임을 다하라고 요구하며 싸우는 것이다.

국유기업화는 결코 비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다. 정부는 현재 실업 수준이 “국가 재난 수준”이라며 수조 원의 추경예산을 추진하고 있다. 또, GM에 8100억 원을 지원하고, 외국인투자지역 지정 등 여러 특혜를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돈은 기업주들을 지원하는 데가 아니라 ‘있는 일자리’를 지키는 데부터 쓰여야 한다.

국유기업화를 쟁취하려면 점거파업 같은 단호한 투쟁과 연대가 뒷받침돼야 한다. 점거파업은 부도 위기에 처해서 파업이 생산에 가하는 타격이 덜한 조건에서도 노동자들의 결속력을 높이고 정치적 연대의 초점을 형성하는 데서 탁월한 효과를 낼 수 있다.(본지 242호 ‘국유기업화를 쟁취할 유일한 수단 - 점거와 연대의 결합’을 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