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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협정 파기:
중동이 트럼프의 도박장이 돼선 안 된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이란을 상대로 한 전쟁 가능성에 성큼 다가섰다. 이미 이란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충돌이 수십 년 만의 최고조에 달한 중동에서 전쟁 위기를 더욱 키운 것이다.

5월 8일 트럼프는 이란과 맺었던 핵협정을 파기하고 적어도 180일 이내에 경제 제재를 부활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이란 핵협정은 이란이 핵 개발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대신 서방이 이란에 가했던 경제 제재를 완화하는 것이 골자였다.

트럼프의 이란 핵협정 탈퇴는 이란의 위상 강화를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강경 대응 선언이다

이제 이란 석유를 개발하거나 수입하는 기업은 180일 안에 사업을 정리하지 않으면 미국의 제재를 받는다. 2015년 핵협정 후 석유 수출과 외자 유치를 통해 경제 부흥을 기대했던 이란뿐 아니라 대규모 투자에 나섰던 서방 기업들도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외환 거래, 자동차 산업 등은 그보다 이른 90일 안에 중단하거나 사업을 정리해야 한다. 트럼프 집권 이후 이미 통화 가치가 폭락해 물가 폭등에 시달려 온 평범한 이란인들은 더 큰 고통을 겪을 것이다.

이란 지배자들은 핵 개발 프로그램을 진척시키겠다고 즉각 위협하고 나섰다. 대통령 하산 로하니는 이란 과학자들에게 “산업용” 핵개발에 언제든 착수할 태세를 갖추라고 명령했다.

트럼프의 이란 핵협정 파기는 이스라엘을 더욱 고무할 것이다. 미국의 핵심 우방 이스라엘은 시리아에서 이란을 상대로 한 군사적 도발의 수위를 최근 빠르게 높여 왔다.

올해 2월 국경 넘어 시리아에서 이란 병력을 추적하던 이스라엘 전투기가 격추되기도 했다. 4월에는 이란인들이 시리아에서 미사일 공격을 받아 사망하는 일이 잇따라 벌어졌는데 이스라엘의 소행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이란이 자신에 대한 보복 공격을 준비 중이라고 주장하며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오래전부터 트럼프에게 핵협정 파기를 종용해 왔다. 4월 30일에는 이란 핵무기의 증거가 있다며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이미 국제원자력기구가 확인한 문서들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지배자들도 트럼프의 조처를 반기고 있다. 실질적 지배자인 왕세자 무함마드 빈살만은 일찍이 “나쁜 협정으로는 전쟁을 막지 못한다”며 이란 지배자들을 히틀러에, 이란 핵협정을 (제2차세계대전을 막지 못한) 뮌헨 협정에 빗대며 비판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이 핵무기에 다가선다면 자신도 핵무기를 가질 것이라고 지난달 천명했다. 아랍에미리트도 기존 핵 개발 프로그램의 무기화를 고려할 뜻을 내비쳤다. (한국의 문재인 정부는 이런 국가들에 핵 기술을 전수하려고 열을 올리고 있다. 이명박이 아랍에미리트에 사실상 불법적으로 핵발전소를 수출한 문제까지 덮으면서 말이다.)

한편, 미국의 동맹인 유럽 지배자들은 트럼프가 핵협정을 파기하지 말라고 오랫동안 촉구해 왔다. 지난 3주 동안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 영국 외무장관 보리스 존슨이 잇따라 백악관을 찾아 트럼프를 만류했다.

유럽 지배자들이 미국보다 약속을 더 존중하거나 중동 사람들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서가 아니다. 지난달 미국의 시리아 공습에 영국과 프랑스가 함께 나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보다는 중동에서 미국의 패권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핵협정이 저비용으로 이란의 핵프로그램 개발을 늦추는 실질적 효과를 낸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이란 핵협정을 파기해 버렸다.

핵협정 파기에 따른 제재는 늦어도 미국 중간선거 예상일(11월 6일) 전날에는 발효될 듯하다. 그때까지 유럽 지배자들은 이란더러 추가적 양보를 해야만 핵협정이 유지될 수 있다고 설득할 듯하다.

그들은 이란 측이 “만약 나머지 협정 당사자들[영·프·독·중·러]이 협력을 유지한다면 핵협정도 유지될 것”이라고 밝힌 것에서도 개입의 여지가 있다고 볼 것이다. 이란이 유럽을 미국과 함께 도매금으로 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핵협정 파기로 시리아에서의 이란-이스라엘 전쟁 가능성은 더 커질 것 같다. 미국과 이란 모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이라크에서 갈등이 격화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