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이다. 1990년 5월 17일 세계보건기구(WHO)가 동성애를 정신 질환 목록에서 삭제한 것을 기념해, 세계 여러 곳에서 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하는 행사들을 연다. 한국에서도 올해 5월 12일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이 날을 기념해 “성소수자 레인보우 행진 대회”를 연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우호적 인식이 크게 늘었지만, 여전히 성소수자들은 혐오와 차별에 크게 시달린다. 

1990년에 이미 WHO가 동성애를 정신 질환 목록에서 삭제했음에도, 여전히 동성애를 ‘치료’하겠다는 ‘전환치료’가 보수 기독교를 중심으로 횡행하고 있다. 얼마 전 〈닷페이스〉는 ‘전환치료’ 피해자들을 취재했다. 주로 청소년인 피해자들은 부모님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나서 억지로 기도원에 끌려가 상담을 받아야 했다. 기도원의 목사들은 돈을 받고 “눈이 맛이 갔다”, “동성애 악령을 쫓아야 한다”면서 기도하고, 때로 피해자들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했다.

그러나 어떤 형태든 동성애를 ‘전환’시키겠다는 ‘치료’는 모두 사기다. 오히려 ‘전환치료’는 성소수자가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어 우울증, 불안감, 자살시도를 높인다. 미국의 10개 주에서 ‘전환치료’는 법으로 금지돼 있다.

동성애자를 처벌하는 군형법 92조의6(추행)은 여전히 폐지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5월 A대위는 사적인 공간에서 합의 하에 성관계를 했음에도 유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많은 성소수자들이 “[한국에서 동성애자는 군대에] 가도 범죄자, 안 가도 범죄자”라며 울분을 터트렸고, 이 판결을 규탄하는 집회가 국방부 앞에서 매주 상당 규모로 열렸다.

학교는 군대처럼 성소수자들에게 특히 암울한 장소다. 2014년 국가인권위의 연구 용역 보고서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를 보면, 청소년 성소수자 200명 중 98퍼센트가 학교에서 교사나 학생들로부터 ‘혐오 표현’을 접했다. 지나가는 말로 “더럽다”, “비정상”, “너 게이냐?”, “레즈 같아” 하는 모욕적 말을 들어도, 자신이 성소수자임이 드러날까 봐 못 들은 척 하거나(58퍼센트), 동의하는 척 했다(33퍼센트). 그런데도 정규 학교 교육에서 성소수자는 언급마저 금기시된다.

이런 현실 때문에 지난 달에 한 여고생이 약물을 과다복용해 끝내 숨진 일이 일어났다. 동성과 연애한다는 사실이 학교 친구들 사이에 알려져 주변 시선에 괴로워했다고 한다. 이 학생은 일기에 “난 사람이 좋아서 마음 가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었을 뿐인데. 힘들다. ... 내가 죽어버려야 끝날 것 같다... 끝내고 싶다” 하고 썼다. ‘학교에서 이 학생을 강력히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지난해 2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가 더불어민주당 앞에서 ‘차별금지법 반대하는 문재인과 민주당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조승진

우익의 동성애 혐오 선동

2000년대 들어 시작된 우익의 조직적 반反동성애 운동은 성소수자 권리 진전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 중 하나다. 이들은 사회 곳곳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더욱 부추기며 ‘성적 지향’이 포함된 차별금지법 제정 등 성소수자 권리 진전이 “역차별”이라고 게거품을 문다.

처음에는 주로 개신교 우익들이 벌이던 동성애 혐오는 이제 주류 정치권에도 반영돼 우익 정치인들의 한 표지가 됐다. 지난해 대선에서 홍준표가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부추긴 게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우익들은 ‘동성애 동성혼 개헌 반대’ 운동, 성소수자들을 출연시켜 우호적으로 다룬 EBS 프로그램 〈까칠남녀〉 방영 중단 요구, 양성평등기본법에서 “성평등” 용어 삭제 요구, 문재인 정부 인사들의 ‘동성애’ 입장 검증, 충남·증평·계룡 등 지역 인권조례 폐지, 국가인권위법에서 ‘성적 지향’ 삭제하는 개정안 발의, 지방선거 후보들에게 성소수자 차별 정책 요구 등 계속해서 반反동성애 운동을 벌이고 있다.

우익들의 동성애 혐오 선동이 대중의 인식을 좌우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성소수자에 대한 우호적 인식이 크게 늘고 있고, 특히 젊은 층에서 그렇다. 물론 개신교의 신자들 사이에서는 비개신교인에 비해 ‘동성애가 죄’라는 인식이 크다(개신교인 53.5퍼센트, 비개신교인 18.5퍼센트). 하지만 이것은 개신교 평신도의 절반 정도는 동성애를 죄악시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 주기도 한다.(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2018 주요 사회 현안에 대한 개신교인 인식조사’ 참고)

문재인 정부와 독립적으로 투쟁해야

단지 개신교 우익과 보수 야당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도 성소수자 차별을 부추기고 있다. 

얼마 전 문재인 정부는 유엔인권이사회의 ‘국가별 정례 인권 검토(UPR)’가 발표한 성소수자 권리 관련 권고 22가지(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 군형법92조의6 폐지 권고, ‘전환치료’ 금지 권고)를 모두 무시했다. 최근 발표한 3차 국가인권기본계획(NAP)(2018~2002) 초안에는 이전 정부가 만든 NAP에도 있었던 ‘성적 소수자 인권’ 항목이 아예 빠졌다.

여성가족부는 양성평등기본법의 ‘성평등’이 동성애 허용이라는 우익들의 억지에 타협해 ‘성평등’을 모두 빼기로 했다. 〈까칠남녀〉 조기 종영과 이에 대한 정당화에 책임이 있는 EBS 장해랑 사장은 대표적 친親문 인사다. 또, 올해 미투 운동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뭉그적대던 학교성교육표준안 개편안을 내겠다고 했지만, 역시 ‘논란이 많은’ 동성애 등 성소수자 관련 내용은 제외한다는 말이 들린다.

문재인 정부가 성소수자 차별 폐지 염원을 외면하는 것은 그들 역시 자본가 계급에 기반을 둔 지배계급의 일부로서 자본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때문이다. 이성애적 가족 제도를 보호해 노동력 재생산을 안정화하고 보수적 성 관념을 유포해 노동계급을 분열·통제할 필요성을 그들 역시 공유한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우익의 혐오 선동을 막고 성소수자 차별을 없앨 거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민주당은 지난 10여 년 동안 ‘동성애’ 쟁점에서 우익들의 눈치를 보며 후퇴하거나 우익과 별 차이가 없는 보수적 행태를 보여 왔다. 특히 선거철에는 개신교 우익 세력들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표를 얻으려고 성소수자 권리를 제물로 삼아 왔다. 

문재인 정부에 기대서는 우익들의 혐오 선동에 제대로 맞서기 어렵고 성소수자 권리도 보장받기 어렵다. 성소수자 차별을 없애고 권리를 보장받으려면 문재인 정부와 독립적으로 투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