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세계대전 직후의 일본을 다룬 《패배를 껴안고》(민음사, 2009)의 저자이자 미국의 권위 있는 역사학자인 존 다우어의 신간이 나왔다. 제목이 말해 주듯, 미국 제국주의가 어떤 폭력 행위들에 기대어 “미국의 세기”(저자는 이 유행어는 물론 과장이라고 지적한다)를 추구해 왔는지 다룬다.

《폭력적인 미국의 세기》 존 다우어 지음 | 정소영 엮음 | 창비 | 2018년 | 15000원 | 288쪽

그 폭력 중 하나는 ‘대리전과 대리 테러’라는 제목의 장에서 다루는 음험하고 추악한 만행들이다.

미국은 냉전기에 라틴 아메리카에서 친미 정권을 세우려고 현지 군대나 우익 세력의 쿠데타를 조장하고 테러를 일으켰다. 과테말라(1954년), 브라질(1964년), 칠레(1973년) 등지에서 선출된 정부가 전복되고 노동자 운동이 파괴됐다. “하나같이 반공주의의 이름으로, 그리고 하나같이 미국의 도움을 받아 모든 종류의 비판 세력을 조직적으로 탄압한” 결과였다.

특히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또 다른 쿠바’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이런 일들을 자행했다.(이 책이 다루지는 않지만, 냉전 종식 이후에도 계속됐다.)

저자는 미국의 끔찍하고도 치밀한 테러·고문 매뉴얼을 폭로하는데, 역겨워서 상상조차 하기 싫을 정도다.

그중 최악이자 남미에서 미국이 벌인 초국가적 테러 작전인 ‘꼰도르’에 의해서는 5만~6만 명이 살해되거나 실종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만행들은 1991년 걸프전 이후 중동에서 반복됐고, 저자는 이것이 “잔악했던 9·11 테러의 뒤에 깔린” 맥락이라고 지적한다.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테러’가 ‘공산주의’를 대신해 무지막지한 악이 [됐다.]”

미국의 또 다른 폭력은 바로 핵무기다. 냉전기의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핵폭탄을 별 볼 일 없게 만들 정도로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소련도 만만찮았다. 1970년대 이후부터는 소련의 핵무기 비축량이 미국을 앞질렀다.

이런 경쟁 속에 핵공포는 인류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한국전쟁,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베트남 전쟁, 걸프전에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실제로 거론됐다.

쿠바 위기 이후 핵확산금지조약(NPT)이 맺어졌지만 “이후 몇십 년간의 상황은 그것이 한갓 몽상이었음을 보여 줬다.” 두 강대국의 핵무기 총량은 1980년대 중반에 정점을 찍었다.

미국 제국주의는 핵무기에 있어 자신에게만 “예외적인 미덕”을 들먹였다. 다른 국가의 핵을 억제하겠다는 명목으로 자국 핵무기를 늘려온 것이다.

그 명목에 충실했다는 이유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오바마는 2016년 1월 국정연설에서 뿌듯한 말투로 이렇게 말하는 자였다. “얘기 끝. 얘기 끝. 근처에도 못 옵니다. 근처에도 못 와요. 우리의 군사비는 다음 여덟 개국의 군사비를 합친 것보다 많습니다.”

오늘날 미국이 ‘전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라는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지출하는 군비를 환산하면 시간당 1억 1400만 달러라는 말도 안 되는 액수가 나온다.

저자는 2015년 3월 〈이코노미스트〉의 기사를 인용한다. “냉전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보다는 핵무기가 적지만 그것이 사용될 가능성은 더 높고,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저자는 풍부한 지식과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책 두께에 견줘 많은 것을 알려 준다. 미국 제국주의의 역사가 궁금한 독자에게 아주 유용한 참고서가 될 것이다.

다만 책을 읽고 나면 ‘왜’라는 의문, 즉 체제의 어떤 동역학이 미국으로 하여금 끔찍한 제국주의적 만행들과 광적인 무기 축적에 매달리게 하는지 의문이 남을 수 있다. 또, 최근 미·중 간 갈등 국면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시피 한 것도 작은 아쉬움이다.

그럼에도 앞서 말한 장점이 더 크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