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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1년:
문재인 개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1년 전 문재인 취임 직후 난데없이 민주노총과 사드 반대 성주 주민들, 좌파 노동단체들에게 온라인 비난이 가해졌다. 문재인을 지지하지 않았으니 문재인 정부에게 뭘 해 달라고 떼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민주노총이 이명박을 지지했다는 '가짜뉴스'도 등장했다. 총리 이낙연이 기자 시절 전두환을 찬양한 기사를 찾아내 폭로한 〈노동자 연대〉 기사는 가짜뉴스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박근혜 퇴진 촛불에서 민주노총은 환영받았고, 사드 배치 철회 요구도 지지를 받았다. 촛불 광장에서 우파 정권 출신자들은 너나없이 “부역자”로 취급받았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이런 공격은 문재인 정부를 곤란하게 만들 쟁점들에서 문재인 세력이 선제 공격을 한 것이었다. 여론 공작과 달리 노동자들은 문재인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고 약속 위반을 비판할 자격이 있다.

가령, 최근 민주노총은 2017년부터 올해 4월까지 민주노총 조합원이 7만 6447명 늘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자료를 더 살펴보면 “[가입 증가 추세는] 2016년부터 목도되고 있는 경향”(민주노총)이다. 촛불 전인 2016년에 이미 3만 6343명이 가입해 가입 규모가 대폭 증가했다.

이를 봐도 부분적으로 활성화되던 노동자 투쟁이 촛불보다 선행 요인이었다. 신규 가입이 가장 많은 공공운수노조, 보건의료노조 등은 박근혜 첫해부터 투쟁의 포문을 연 노조들이다.

2015년 4.24 총파업은 이후 투쟁의 예고편이기도 했지만, 세월호 1주기 투쟁을 힘있게 만든 요인이기도 했다. ⓒ조승진

민주노총도 “2015년 노동개악 저지 총파업과 민중총궐기 등으로 박근혜 정권 퇴진 투쟁을 선도적으로 이끌었으며, 2016~2017 박근혜 퇴진 촛불항쟁에서 주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데 대한 대중적 주목이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노동자 투쟁이 매개가 돼 촉발된 촛불 운동이 박근혜를 쫓아냈고 우파를 약화시켰고, 덕분에 문재인이 집권했다. 따라서 문재인이 노동자 투쟁에 빚을 진 것이지, 그 반대가 전혀 아니다.

개혁의 성격

문재인 정부의 성격 문제를 보자. 이 정부는 민주당 정부이자 노무현 계승 정부다. 민주당도 지배계급에기반한 친자본주의 정당이다. 김동연 같은 경제관료들이 실권을 쥐고 있고, 노조 파괴 공작 연루자가 청와대에 들어갔다. 문재인 정부의 실세들은 주로 노무현의 청와대에서 문재인과 손발을 맞췄던 사람들이 많다. 김경수도 그중 하나다.

전임 민주당 정부들은 “제3의 길” 노선을 추구해 왔다. 이를 생산적 복지, 사회투자국가 등으로 불렀다. 문재인 정부는 “혁신적 포용국가”라고 부르는 것 같다.

이 어젠다를 풀어 말하면, 시장경제에 강조점이 있는 사회적 시장경제, 성장에 강조점이 있는 소득주도성장론이다. 문재인의 개혁은 한국 자본주의의 생산성과 성장 동력을 제고하려는 합리화라고 볼 수 있다.

가령 “재벌 개혁”은 포퓰리즘적인 구호지만, 노동자들의 편에 서는 반反기업주의가 전혀 아니다. 바이오(의료 민영화) 등 신 산업을 육성해야 하고, 이를 위해 재벌들이 문어발 구조에 안주하지 말고 투자를 늘리라는 것이다. 또한 중소기업도 경쟁에 끼게 해 경쟁력을 키우자는 것이다.

기업이 해고를 더 쉽게 하되, 대신 조금 더 관대한 실업보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등을 통해서 국가가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강화해 주자는 게 문재인 정부의 복지다.

그래서 재벌 개혁이나 소득주도성장론의 논리는 이렇다.

“재벌 독과점이 문제다. 이들의 갑질로부터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을 살려야 한다. 그런데 재벌의 갑질에는 고임금을 압박하는 강성노조가 중요한 요인이다. 비정규직 임금을 늘려 정규직과의 차이를 좁히면 비정규직을 고용할 필요가 없게 된다. 정규직이 임금을 내리면 이런 상생이 가능하다(문재인식 동일노동 동일임금).”

결국, 경제주체 간 상생과 소득주도 성장에서는 대기업 조직 노동자들의 경제적 양보가 핵심 내용이다. 이런 양보를 받아 내려니 ‘사회적 대화’가 중요한 것이다.

‘변화’의 성격 문재인 정부는 노동자 투쟁에 빚지며 탄생하고도 노동계급 염원과는 함께 가려 하지 않는다 ⓒ출처 청와대

문재인의 정치 개혁도 자신들이 한국 자본주의를 더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음을 보여 주려는 것에 초점이 있다. 정치 구조를 시스템화(견제와 균형)해서 누가 집권해도 안정적인 통치를 하자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민주적 권리 신장은 진정한 목표가 아니다. 그래서 김정은과는 “10초 월북”으로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 같은 건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

문재인보다 먼저 노무현 청와대의 비서실장을 지낸 이병완은 현행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에 당선하자마자 레임덕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법 하나를 만들어도 제대로 추진도 해 보기 전에 임기가 끝나 책임 정치가 어렵다고 한다. 이런 문제의식들이 문재인의 개헌안에 반영돼 있다.

또한 적폐 청산 염원을 포퓰리즘적으로 활용해 경쟁세력인 우파에게 유리한 인적·제도적 요소들을 제거하고, 중도·진보 포퓰리즘 세력을 포섭하는 효과도 노린다.

안보에서의 목표도 ‘부국강병’이다. 한반도 평화를 추구하지만, 평화를 통한 성장을 강조한다. 진보를 자처하지만 한미동맹 유지·강화에 이견이 없다. 자주 국방도 강조한다. 미국의 패권 질서 유지에 한국이 더 기여해 한국 자본주의의 위상을 더 높이려는 것이다.

딜레마

문재인 정부의 기조는, 친미적 자주, 좌파 신자유주의, 사회적 대화 중시 같은 노무현 정부의 특징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은 국가 발전을 위한 국민 통합(계급 화해)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집권 후 얼마 안 가서 진보 개혁을 바란 대중의 실망과 반발, 환멸과 분노에 부딪힌 전임 민주당 정부들과 문재인 정부는 달라 보인다. 왜 그럴까?

앞서 지적했듯이 정권 출범 전후의 사회적(계급) 세력균형이 다르기 때문이다. 훨씬 더 반(反)우파 흐름이 강력한 상황에서 문재인은 임기를 시작했다.

1주년을 맞아 〈한겨레〉는 문재인 지지율을 높이는 요인들로 남북 정상회담, 촛불 뒤 역전된 보수·진보 지형, 보수 야당의 지리멸렬 등을 꼽았다.

남북정상회담 당일 한 독일 기자는 지난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과 이번이 다른 것은 대통령이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고 회담을 여는 거라고 지적했다. 정상회담은 높은 지지율의 계기이지 원인은 아니다. 강력한 반(反) 우파층의 형성이라는 세력균형 문제를 더 주된 요인으로 다뤄야 한다.

문재인은 촛불 때부터 지배계급 다수에게 자신이 이 성난 대중을 잘 관리할 수 있음을 보여 주려 했다. 그런데 그러려면 어느 정도는 그 염원을 받아안는 시늉도 해야 한다. 사실 이것이 핵심 딜레마다. 적폐 청산을 공언했지만 가다서다 하며 지배계급과 노동계급 양쪽 눈치를 보며 신중하게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삼성 무노조 경영 수사처럼 재벌을 압박하기도 하지만, 막상 이재용 등은 모두 석방됐다. 근로기준법 개악 같은 선물도 줬다. 노동자들에게는 무엇을 줬나? ‘희망에 찬 약속’을 줬다. 문제는 약속 ‘이행’은 선물 목록에 없다는 것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노동 개악 완전 철회, 노조 인정, 민주노총 지도부 석방 등등.

그런데도 운동 진영이 문재인 비판을 회피한다. 높은 지지율 때문에 문재인 정부를 허투루 비판하다가 고립되고 비난 받을 걸 염려하거나, 문재인 비판이 행여라도 우파 부활에 도움 될까 봐 걱정한다. 〈한겨레〉는 주류 보수 야당이 지리멸렬한 걸 대안 부재라고 지적했지만, 진보·좌파도 대안 세력으로 존재감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개혁의 본질이 드러나고 실망할수록 왼쪽 대안이 분명하지 않으면 우파(의 부활)에 유리해진다. 문재인 정부는 그 본성상 우파와는 타협해도 좌파와는 타협할 수가 없다. 이를 잘 아는 강성 문재인 지지 세력은 좌파를 침묵시키는 데에 사활을 거는 것이다.

문재인 국정수행 지지율이 높지만, 개별 건들로 보면, 드루킹 특검이나 김기식 사퇴는 찬성이 절반을 넘었다. 묻지마 지지는 아닌 것이다. 현상만으로 상황을 판단해선 안 된다. 좌파에게도 기회는 있다.

그럼에도 더 나은 대안이 제공되지 않으면 문재인 지지율은 유지될 것이다. 적어도 보수 야당에 의해서 문재인 정부가 약화되는 건 보고 싶지 않아서이다. 믿고 싶어서 믿는 것이다. 지금도 정상회담이 잘되기를 바라서 지지가 높은 것이다.

개혁을 쟁취하려면 대규모 투쟁이 필요하다. 그것은 노동자 투쟁일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한다. 계급투쟁의 정치가 대안이 되도록 해야 한다. 경험의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그래도 지금 대중 투쟁을 위해 준비하고 개입하는 일들은 할 수 있다. 여기에 좌파의 존재 이유가 있다.

5월 10일 노동자연대 서울지역 공개토론회에서 발표한 것을 축약·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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