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에서 낙태권 운동을 조직한 메리 스미스는 아일랜드가 어떻게 극단적 여성 천대 사회에서 낙태 합법화 압도적 지지로까지 변할 수 있었는지 설명한다. 메리 스미스는 ‘사회주의 노동자 네트워크’ 소속이자 좌파연합당 ‘이윤보다 인간을’ 소속의 활동가다.


아일랜드에서 낙태권 운동을 조직한 메리 스미스

아일랜드의 모든 진보 세력과 사회주의자들에게 5월 25일은 환희에 찬 날이었다. 그날 아일랜드인들은 국민투표에서 66.4퍼센트 대 33.6퍼센트로 낙태권을 지지했다. 이번 국민투표에서는 제8차 개헌 조항을 철폐할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해당 조항은 1983년에 가톨릭 우파가 주도해 헌법에 삽입된 것으로, 태아의 생명을 임산부의 생명과 대등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 결과, 여성의 목숨을 직접적으로 위협하지 않는 한 낙태를 일절 금지했다.

이번 국민투표에서 압도적 결과가 나온 것은 여러가지 요인이 맞물린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아일랜드 사회가 수십 년 동안 겪은 심대한 변화, 국회의원 브리드 스미스(‘이윤보다 인간을’ 소속) 등 수많은 활동가들이 35년 넘도록 열정적으로 캠페인을 벌여 온 것, 지난 몇 달간의 격동적 시기 동안 대중적 사회 운동이 부상한 것을 요인으로 들 수 있다.

20세기 대부분 아일랜드를 지배한 보수적 가톨릭 질서는, 1919~1920년 영국에 맞선 아일랜드의 혁명적 독립 전쟁 뒤에 찾아온 보수적이고 민족주의적 반동의 산물이었다. 그 질서 하에서 아일랜드는 수치스러운 암흑기로 접어들었고 여성을 극단적으로 천대하는 사회가 도래했다.

낙태뿐 아니라 피임과 이혼이 금지됐고, 이후 악명을 떨칠 수용시설들이 생겨났다. ‘어머니와 아이의 집’에서는 이른바 “출생이 떳떳지 못한” 아이들이 돌봄 부족으로 죽어 적어도 수백 명이 암매장됐고, ‘막달레나 세탁소’는 “타락한” 여성들에게 수년씩 노예 생활을 강요했고, ‘산업학교’에서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 신부와 수녀들의 구타와 학대에 시달렸다.

이런 질서는 약 30년 동안 느리지만 꾸준히 진행된 변화 속에서 약화되고 있었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시골에서 [교회가] 지배력을 행사하던 제도가 약화됐고, 더 많은 여성들이 노동인구로 진출했고, 교육이 보급되면서 젊은 세대 여성들은 옛 방식으로 취급받길 거부했다. 가톨릭 교회 내의 광범한 성적 학대뿐 아니라 교회 지도층이 그걸 덮으려 했다는 사실이 잇따라 폭로됐다.

이 과정에 중요한 전환점들이 있었다. 1983년 [8차 개헌 직후에] 교회 묘지에서 혼자 아이를 낳다 사망한 15세의 앤 러벳이 있었고, 1992년에는 강간을 당한 청소년 “X”가 낙태를 하러 영국으로 가려 했으나 당국이 출국 허가를 내주지 않아 젊은 여성 수만 명이 거리로 나서 “그녀를 보내 줘라!” 하고 요구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사비타 할라파나바르가 목숨을 잃었는데, 낙태 시술을 받으면 살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병원이 8차 개헌 조항을 이유로 시술을 거부해서 생긴 비극이었다. 수만 명이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런 변화가 얼마나 더뎠는지는 이혼이 1996년에서야 합법화됐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국민투표에서 근소한 차이로 이겼다). 동시에 그 변화는 최근 빨라졌는데 2015년 국민투표에서는 동성결혼이 큰 표차로 합법화됐고, [2018년에는] 강간범으로 지목된 럭비 스타 4명을 모두 무죄로 석방한 끔찍한 판결에 항의해 거리 시위가 벌어졌고 SNS에서는 ‘나는 그녀[피해호소 여성]를 믿는다’(#I believe her)는 글이 넘쳐 났다.

국민투표에서 낙태 합법화 측이 크게 이겼다는 소식에 기뻐하는 여성과 남성들 ⓒ출처 브리드 스미스

거리를 달군 아래로부터 운동

이런 변화는 이제 아일랜드 사회에 깊고 광범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번 국민투표에서 한 곳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찬성표가 우세했고, 북서부 끄트머리 도니골 선거구에서만 반대표가, 그것도 아주 근소한 차이로 더 많이 나왔을 뿐이다. 일각에서는 도농 간의 대립 양상을 우려하기도 했으나(예컨대 [수도] 더블린은 찬성이 다수고, 시골 지역은 반대가 다수인 구도)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찬성표가 우세한 정도는 물론 지역마다 달랐지만 전체 아일랜드가 낙태 합법화를 지지한 것은 분명하다. 연령별로는 65세 이상의 집단에서는 반대가 많았지만,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찬성이 높았고 18~24세 집단에서는 무려 85퍼센트가 찬성에 투표했다. 미래의 전망이 밝은 것이다.

계급 간 차이는 이보다 까다로운데, 집계 방식이 일관되지도 않고 사무직 노동자를 “중간계급”이라고 간주하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표소의 참관자들을 통해서, 노동계급 밀집 지역에서는 찬성표가 쏟아져 나왔다는 것은 확인했다(일부 지역에서는 80퍼센트 가까이 나왔다). 앞서 동성결혼 국민투표 때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성별에 따라 차이가 있긴 했지만(찬성 투표율이 여성은 70퍼센트, 남성은 65퍼센트) 압도 다수의 남성들, 특히 젊은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연대했다.

다음 한 가지는 분명했는데, 사람들이 더는 주교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투표 결과 발표 직후 한 주교가 라디오에서 ‘찬성에 투표한 신자는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고 발언하자 분노와 야유가 터져 나왔다.

결과가 압도적이라는 점은 몹시 중요하다. 주류 양당(공화당과 통일아일랜드당)에 숨어 있는 반동적 의원들이 입법 절차를 지연시키거나 무산시키는 게 매우 어려워진 것이다. 만약 투표 결과가 박빙이었다면 저들은 분명 그러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렇게 큰 표차로 이기는 데서 아래로부터 운동이 거리를 달군 것이 중대한 구실을 했다. 수년 동안, 특히 [2012년에] 사비타가 목숨을 잃은 이래로 아일랜드에서는 낙태 금지 조항 철폐를 요구하는 운동이 꾸준히 성장해 왔다. ‘낙태 권리 캠페인’은 해마다 ‘여성의 선택권을 위한 행진’을 조직했고 2017년 세계 여성의 날에는 더블린의 주요 다리를 수 시간 동안 점거하고서 국민투표 실시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런 거리의 압력과 브리드 스미스, 루스 코핑거, 클레어 데일리와 같은 좌파 의원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국민투표 자체가 실시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주류 정치인들은 낙태 문제를 부담스러워 하며 번번이 회피해 왔다.

그리고 아래로부터 운동을 조직하는 데서 바로 사회주의자들, 특히 ‘이윤보다 인간을’의 구실은 매우 중요했다. 주류 언론은 이번 승리를 죄다 부르주아 정치인들 덕택이라는 식으로 보도하지만 사회주의 좌파들이 이번 캠페인 내내 핵심 구실을 했다는 것이 진실이다. 사회주의 좌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낙태권 운동의 등뼈 구실을 해 왔을 뿐 아니라 이번 캠페인 기간에도 더블린과 전국 곳곳에 대규모 찬성 투표를 호소하는 유세단을 조직하는 데서 핵심 구실을 했다.

찬성 유세단과 좌파

찬성 투표 유세단은 캠페인 기간 동안 아일랜드 곳곳을 누볐다. 더블린에서는 매일 밤마다 40~60명 규모로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찬성표를 호소하는 것을 보는 게 흔한 일상이었다. 이런 활동은 대단히 중요했다. 반대 진영이 거리를 도배하다시피 뿌려댄 광고물을 반박하는 효과를 냈기 때문이다. 반대 진영은 언제나 우리보다 돈이 많았고(미국에서 막대한 후원을 받았다), 언론은 그들의 목소리를 불비례하게 크게 보도했다. 실제로 그들은 소수였는데도 말이다. 낙태 금지론자들은 과거에도 선정적이고 조작된 태아 사진으로 사람들에게 공포심과 죄책감을 유발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그런 점에서 유세단이 거리를 누비며 찬성 투표를 독려한 활동은 ‘우리는 더는 그런 공격에 주눅들지 않는다’는 것을 단호하게 천명한 것이자 사람들에게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한편, 찬성 진영에서도 커다란 논쟁이 있었다. ‘찬성표를 함께 찍자’ 기구의 공식 지도부는(여기에는 통일아일랜드당과 노동당도 포함되는데 아일랜드 노동당은 작고 보수적이고 블레어주의가 강하다) 몹시 소심했고 [낙태가] 여성의 선택권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길 꺼려했다. 그들은 여성의 선택권을 강조했다간 “중간층”을 잃을 것이라는 연구자들의 “증거”가 있다며, 급진적인 주장을 단속하고 우리의 입을 막는 데 막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좌파들, 특히 내가 속한 ‘이윤보다 인간을’은 여성의 선택권은 원칙적으로 옳을 뿐 아니라 우리가 노동계급 사람들을 찾아가서 펼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주장이라는 입장을 강하게 고수했다. 그리고 이번 결과는 우리가 완전히 옳았음을 보여 줬다.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사람들이 찬성표를 던진 가장 주된 이유는 낙태가 여성이 선택할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투표 기간 중 또 다른 중요한 활동은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절박한 상황 때문에 ‘영국으로 가는 배’를 타야만 했던 등의 경험 말이다. ‘이윤보다 인간을’의 국회의원 브리드 스미스는 자신의 낙태 경험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이런 활동에 가장 먼저 앞장섰고 낙태 경험을 공개한 유일한 국회의원으로 남아 있다.

이제 우리 앞에는 무상 피임, 객관적이고 세속적인 성교육, 교회의 학교 통제력 종식, 국가와 교회 분리, 반동적 종파주의가 가득한 북아일랜드로의 낙태권 확대라는 과제가 있다. 국민투표에서 승리한 기세를 동력 삼아 더 나아가야 한다. 또한 여성이 낙태뿐 아니라 출산·양육도 온전히 선택할 수 있도록 주택, 양질의 일자리, 제대로 된 건강 보험에 더 많이 투자하라고도 요구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여성이 일어서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현상이다. 극적인 이번 투표 결과는 아일랜드가 환골탈태했고 여성과 남성이 그 과정에서 핵심 구실을 했다는 것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