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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는 사법 적폐:
양승태 대법원이 반(反) 노동 판결을 조율하다

우파 정부 시절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 하에서 재판 거래가 있었다는 의혹이 사법부 자체 조사에서 불거졌다. 사법 적폐의 실상이 일부 드러난 것이다.

5월 25일에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은 박근혜 정부 당시 대법원장 양승태가 법원 내 블랙리스트를 관리하고, 주요 판결을 박근혜 청와대와 거래한 의혹과 관련 자료들을 공개했다.

발표를 보면, 양승태는 법원행정처 판사인 임종헌 등을 통해 진보 성향이나 정부 비판적 판사들을 블랙리스트화해서 관리했다.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판사들의 모임도 사찰 대상이었다.

무엇보다 (反) 노동계급 판결을 위해 지배계급이 모의를 하고 거래해 온 관행이 일부 드러났다. 박근혜 하 대법원은 통상임금, 전교조, KTX 승무원, 철도노조 파업, 세월호, 통합진보당 등의 재판에서 재계와 박근혜 측과 판결을 놓고 상의와 보고를 해 왔다. 법원 내 공무원노조 대응 검토 문서도 있다.

대법원의 반 노동 판결은 많은 노동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KTX 열차승무원지부 김승하 지부장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 들어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 수사와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제공 최윤석

전교조가 낸 정부의 법외노조화 정당 판결에 대한 재항고가 기각되면 “[청와대와 법원] 양측에 윈윈의 결과가 될 것”라고도 했다. 이 검토 문서는 판결 시점의 유불리까지 계산하고 있다.

“신의칙”이라는 황당한 개념을 도입해 사측의 통상임금 미지급분을 눈감아 준 대법원 판결의 의의는 이렇게 정리했다.

“재판 과정에서 대법원이 정부와 재계의 입장을 최대한 파악하고 이해하려고 노력”, “판결·선고 결과에서도 대법원이 정부와 재계의 고민을 잘 헤아리고 이를 십분 고려하여 준 것.”

독재 정권의 판결 등 과거사 재심에 관해서는 섣불리 국가 배상을 결정하지 말라는 지시도 나온다. 실제로 1974년 인혁당 판결 피해 가족들이 대법원 판결로 오히려 보상금을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 초래됐다.

이 밖에도 성완종리스트 대응 방안, 전 국가정보원장 원세훈 판결 관련 동향과 대응, 통상임금의 경제적 영향 분석 등이 포함된 검토 문서 목록도 공개됐다. 상황이 이러하니 가령 “잘못된 재판에 대한 직무 감독 검토 파일” 같은 제목의 문서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2016년 11월에는 박근혜의 하야 가능성 검토 문건도 나온다.

이런 판결과 협상으로 사법부가 정부와 정치권에게서 얻어내려 한 것은 상고법원 설립이었던 것 같다. 대법원은 중요한 판결만 하고 별도로 상고 재판 건들을 처리하는 법원을 만들려 한 것이다. 판사들이 자신들의 권력과 편리를 위해 재판을 거래 대상으로 삼은 셈이다.

전교조, KTX, 쌍용차 등 재판 거래가 폭로됐거나 그 시기의 부당한 판결로 피해를 당한 노동자들 모두 분노해 반발하고 있다. 5월 29일에 KTX 승무원 노동자들은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을 요구하며 대법원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이 어둠의 판결들로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 자살 등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KTX 승무원 노동자들은 근로자지위확인소송 1·2심에서 모두 이겼는데, 대법원이 납득 못할 이유로 판결을 뒤집어, 기존 판결로 지급받던 생계비를 토해내야 하는 처지로까지 몰렸다. 바로 이 판결 때문에 애통하게도 조합원 1명이 절망과 비관을 못 이기고 목숨을 버렸다. 정리해고가 무효라는 고법 판결을 파기 환송시켜 회계 조작과 해고에 면죄부를 준 대법 판결 이후에 쌍용차에서는 노동자와 가족 등 4명이 세상을 등졌다.

계급 전선

일부에서는 3권 분립을 박근혜 정부와 양승태가 어겼다고 비판한다. 반대로 우파와 사법부 일각에서는 판결 내용까지 문제 삼는 것은 법관과 재판의 독립성을 해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판결 내용과 과정에서 드러나듯이 진짜 문제는 3권 분립을 어긴 게 아니라, 권력을 쥔 자들이 노동계급을 적대하는 전선에서는 뜻과 행동을 조율해 왔다는 점이다.

법원 스스로 법리보다도 자신들 파벌과 계급적 이해관계에 따른 정치적 고려를 우선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양승태는 박근혜의 강압에 떠밀려 이런 짓을 한 게 아니다.

자본주의 법 자체가 일반으로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것이 아닌데도, 그 운영마저 이따위라면 노동자들이 사법부의 계급 편향적 판결을 불신하는 것은 정당하다.

현 대법원은 양승태 추가 조사 등에 미온적이다. 물론 한편에서는 검찰 수사에 맡기겠다는 말도 나온다. 당장은 눈치를 보는 모양새다. 그러나 눈치를 본다는 것 자체가 진정한 반성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적폐의 계급적 성격만 더 드러낼 뿐이다.

문재인 정부는 사법부 내 일이라며 책임지고 해결하기를 기피할 것이다. 최저임금법 개악안 국회 통과에 입 다물고 있듯이 말이다. 3권 분립 등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확립을 추구하는 개혁주의 정치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