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보건기구(WHO)가 28년 만에 트랜스젠더를 정신장애 항목에서 삭제했다. “트랜스젠더는 정신장애가 아니라는 증거가 이제 명백하”다며 밝힌 이번 결정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과 낙인이 큰 상황에서 환영할 일이다.

그동안 트랜스젠더가 정신장애로 분류됨으로써 성별정정 과정에서 정신과 진단이 요구돼 왔는데, 이런 부당한 요구는 즉시 없어져야 할 것이다.

ⓒ이미진

최근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들이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 절차개선을 위한 성별정정 경험조사’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 트랜스젠더 70명에게 성별정정 절차에 대해 설문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보고서다. 

한국의 성별정정 기준은 매우 까다롭다. 대법원 예규에 따르면 생식 능력이 없어야 하며, 외부 성기 수술을 하고, 혼인 중이 아닐 것, 미성년자녀가 없을 것, 탈법적 의도가 아닐 것이라는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설문 참가자들은 성별정정 신청 단계에서 외부 성기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에 특히 어려움을 느꼈다. 수천만 원이 드는 수술비를 개인이 감당해야 하며, 수술 이후의 회복 기간에 구직할 수도 없어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된다.

또한 건강상 문제가 있거나 자신의 신체에 대해 만족해 수술을 원하지 않는 트랜스젠더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성별정정을 신청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수술하는 경우도 있다.

성별정정 준비 과정에서는 제대로 된 정보를 찾을 수 없고 10가지가 넘는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혔다.

그중 부모동의서를 내야 한다는 것이 특히 큰 장벽이다. 트랜스젠더 차별과 혐오가 심한 상황에서 트랜스젠더는 부모와 심한 갈등을 겪고, 관계가 단절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때로는 법원이 부와 모 양쪽의 동의서를 받아 오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부모동의서와 부모님의 인감증명서를 받지 못해 성별정정 신청이 약 1년간 지연됐고 받아 내는 과정이 정말 힘들었고 겨우 받아 내서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부모동의서

우여곡절 끝에 서류를 제출해도 심리 과정에서 트랜스젠더들은 온갖 모욕을 겪는다. 설문 참가자들은 법원에서 불필요한 추가적 소명 자료에 대한 보정권고·명령을 받은 적이 많았다. 현재와 과거의 사진, 다른 성별로 생활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사진 제출 등을 요구받았다. 심지어 초중고 생활기록부 제출을 요구받은 트랜스젠더도 있었다. 

판사들은 편견 어린 질문을 자주 던진다. “고작 그런 몇 가지 사례를 가지고 어떻게 ... 자기 정체성을 얘기할 수 있느냐”라며 정체성을 의심한다. 심지어 “여자친구 부모님은 아느냐”, “여자친구랑 결혼할 거냐”라며 성별정정과 무관한 사생활을 질문하기도 한다.

심리를 거쳐 허가 결정을 받기까지 평균 3개월이 넘게 걸리는데, 1개월부터 7개월까지 개인별 편차가 컸다. 언제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것 때문에 불안감과 초조함도 크다. 생계를 꾸리기 위한 계획을 짜기도 어렵다.

성별정정 신청이 기각됐을 때, 기각의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법원에서 “어차피 기각될 거니 취하하는 게 낫다”는 취지로 취하권고를 하는 사례도 있었다.

성별정정이 까다로운 한편, 성별정정이 된 뒤 공문서에 변경 이력을 표시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연구보고서는 이런 사례들을 종합한 후, 성별정정 절차 개선안을 제시하고 있다. 성전환수술 요건과 부모동의서 삭제, 신용정보조회서·출입국사실증명원 등 불필요한 첨부서류 삭제, 성별정정 절차 정보 제공, 심리 기간 단축 등. 이런 개선안은 시급히 도입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