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심사할 자격 없다 ⓒ출처 국제앰네스티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제 규정이 없는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 도입 없이 그들을 처벌해 온 현실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이 결정에 따라 2019년 말까지 대체복무제가 도입돼야 한다.

한국에서는 일제 강제동원기부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중형에 처해져 왔다. 해방 이후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아, 최근까지 매년 500여 명이 수감돼 왔다. 전 세계 양심적 병역거부 수감자 중 90퍼센트 이상이 한국 감옥에 있을 정도였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높아져 왔다. 특히, 평화주의자들이 적극 애써 왔고, 2000년대 초 반전·평화 운동이 성장한 것과 맞물려 병역거부 운동 측의 주장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은 유엔 자유권규약 등에 저촉돼 계속 논란이 됐다.

최근에는 하급심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는 사례가 많아졌다. 즉, 헌재는 이런 상황을 반영해 뒤늦게나마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정당하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총을 들지 않겠다는 의사는 존중돼야 마땅하다. 

한국 지배자들은 병역이 국민 전체를 위한 신성한 의무라고 떠든다. 하지만 자본주의 군대는 지배계급과 그 이익을 수호하는 특수한 폭력 기구일 뿐이다. 밖으로는 다른 국가와의 군사적 경쟁을 위해, 안으로는 노동자 등 착취·천대받는 집단들의 저항을 막고 계급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군대가 존재한다. 박근혜 퇴진 촛불 당시 군부가 무력 진압 계획, 즉 쿠데타 계획을 짠 일을 보라.

군대는 병사들이 다른 나라와 자국의 노동계급에게 총부리를 겨누도록 강요한다. 군대 내 지독한 억압과 폭력은 궁극으로 자본주의 군대의 이런 본질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어떤 신념 때문이든지 간에, 이런 군대에 복무하지 않겠다는 선택은 정당하다.

징벌적 대체복무제?

헌재 결정에 따라, 국방부는 8월 말까지 대체복무제 정부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그런데 문제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는 수준”이란 말이 나온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 기간을 현역의 2배로 하고 고역을 맡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보수 기독교 측도 이와 비슷한 대체복무제 도입을 주장한다. 현역 복무 기간의 2배 이상, 군부대 내 합숙, 지뢰 제거 등 위험한 작업 투입을 핵심 골자로 한 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유엔조차 현역 복무기간의 1.5배가 넘는 대체복무는 징벌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헌재도 이번 결정문에서 “대체복무의 기간이나 고역의 정도가 과도하[면] 대체복무제를 유명무실하게 하거나 징벌로 기능하게 할 수 있[다]”고 적시했다. 우리 나라에 앞서 대체복무제를 도입한 대만·덴마크·독일 등은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과 동일하다.

한국에는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현역 복무를 하지 않는 사회복무요원이 있다. 그들은 30일 이내의 군사교육 외에는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하게 될 대체복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을 한다. 그럼에도 사회복무요원의 복무기간은 현역과 거의 비슷하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도 최소한 사회복무요원들과 같은 수준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

국방부가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심사?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을 ‘심사’할 심사기관의 구성과 성격도 논란이 될 수 있다. 국방부는 그 기관을 국방부 산하에 두려 할 공산이 크다. 보수 기독교계는 이에 더해 “종교계 인사”가 반드시 심사기관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대체복무제를 반대해 온 국방부가 심사기관을 맡으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한테 불리할 게 뻔하다. 국방부는 길고 까다로운 심사로 대체복무 인정을 매우 어렵게 만들 것이다. 2011년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대체복무는 군 관할 지역 밖의 것이고 군 지휘 하에 있지 않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심사기관에 “종교계 인사”가 포함돼야 한다는 보수 기독교계의 주장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다수인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을 겨냥한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의 대체복무 인정을 어렵게 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주요 엔지오들은 심사기관을 국방부가 아니라 국무총리실이나 보건복지부 산하에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조차 국가기관이 개인의 양심을 ‘심사’하고 개인에게 양심을 ‘증명’하라고 요구한다는 점에서 근본적 문제는 남아 있다.

가장 좋기로는, 심사 없이 대체복무 신청만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해야 한다. 대체복무제를 도입한 “7개국에서는 개인 면담이 없다. 또한 ‘동기’에 대한 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런 나라에서는 신청만 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인정된다. 유엔인권위원회에서는 이 방식을 권장하고 있다.”[1]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대안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자본주의 군대가 낳는 여러 문제의 하나다. 특히 한국처럼 징병제를 유지하는 국가에서는 꼭 불거지는 쟁점이다.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고 더 나아가 징병제까지 폐지해야 하나, 이것도 궁극적인 해법은 아니다. 징병제든 모병제든 군대라는 사악한 제도가 남아 있는 한, 문제는 계속 불거질 것이다.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는 《배반당한 혁명》에 이렇게 썼다. “군대는 사회의 복사판이고 사회가 앓는 질병을 모두 앓는데, 대체로 더 심하게 앓는다.” 그래서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근본적 사회 변혁 과정에서 자본주의 국가를 폐지하고, 자본주의 군대를 노동계급이 스스로 무장한 시민군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봤다.

실제로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으로 탄생한 노동자 정부가 이런 변화를 시도해 봤다. 노동자 정부의 첫 포고령은 군대 지휘관을 병사들의 투표로 선출케 하고, 장교의 특권을 모두 폐지했다. 비록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도 개입한 내전 등으로 러시아 혁명이 처한 객관적 어려움 때문에 이런 변화가 지속되기는 어려웠지만 말이다.

노동자 정부는 1918년에는 트로츠키의 주도로 종교적 사유의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를 도입했다. 내전으로 혁명 정부가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이 제도는 훗날 스탈린주의 반혁명 과정에서 폐지됐다.)



[1] ‘종교적 사유 등에 의한 입영거부자 사회복무체계 편입 방안 연구’(병무청 연구용역보고서), 병무청, 2008년.


필자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2008년에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2009년 2월~2010년 5월에 수감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