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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터키 …:
심화하는 신흥국 경제 위기와 세계경제

올해 5월부터 본격화한 신흥국 경제 위기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자본 유출을 막으려고 기준 금리를 60퍼센트(!)로 올렸지만,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는 연초의 45퍼센트가량으로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아르헨티나 위기가 국제 금융 시장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고 역대 최대 규모인 571억 달러(약 64조 원)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결정은 미국의 뒷마당인 라틴아메리카에서 우익인 아르헨티나의 마크리 정권을 뒷받침하기 위해 IMF가 적극 나서고 있다는 것도 보여 준다.

마크리는 정부 부처를 절반 이하로 줄이고, 공무원을 대량 해고하고, 내년 재정 지출을 27퍼센트 삭감하는 초긴축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어린이와 청소년 10명 중 4명이 빈곤 상태인데, 긴축 정책은 빈곤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IMF는 아르헨티나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긴축 정책을 강요하고, 정부의 금융 시장 개입도 제한했다. 페소가 1달러당 34~44페소 범위 내에서 거래될 경우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이 외환 시장에 개입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이는 자본의 이윤을 위해 민중의 삶뿐 아니라 정치적 권리마저 침해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렇게 사상 최대 규모로, 민주주의도 침해하며 IMF가 지원에 나섰지만 아르헨티나의 위기는 진정되지 않고 있다.

긴축에 맞선 아르헨티나 노동자 투쟁 9월 25일부터 총파업이 벌어져 공항, 철도, 은행, 학교, 상점 등이 마비됐다. ⓒ출처 아르헨티나노동조합(CTEP)

터키 리라화도 연초 대비 60퍼센트가량으로 떨어져 있다. 터키 대통령 에르도안은 IMF에 손을 벌리는 것은 “정치적 주권을 포기하는 행위”라며 IMF 구제금융을 거부하고, 중국·러시아 등에 도움을 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터키 상황은 아르헨티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터키 물가는 크게 상승했고,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자본 유출을 막으려고 기준 금리를 연초의 세 곱절인 24퍼센트로 인상했다. 이런 금리 인상은 경제를 경색시키고, 빚에 시달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더욱 옥죌 것이다. 게다가 터키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외화 부채 비율이 70퍼센트로 신흥국 중 가장 높아 향후 외환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아르헨티나와 터키뿐 아니라 브라질, 남아공,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인도 등도 위험 국가로 분류된다. 여러 신흥국 정부들은 통화 유출을 막으려고 줄줄이 기준 금리를 인상했다.

신흥국 위기는 앞으로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금리를 계속해서 인상할 전망이고, 미국발 무역 전쟁이 본격화하면서 실물 경제에 타격을 미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올해 초부터 세계 무역 증가율과 수출 주문이 감소하고 있다.

이는 신흥국 실물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흥국들은 원자재와 농산물 등을 수출하는 국가들이 많다. 특히 중국이 높은 성장세를 구가하며 세계의 공장 구실을 하던 시기에 여러 신흥국들은 중국에 원자재들을 수출하며 호황을 누렸었다.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중국이 제1의 교역국이다. 그런데 세계경제 침체와 무역 전쟁의 여파로 중국 성장률이 둔화하고 있기 때문에 신흥국의 실물 경제도 타격을 받고 있다.

유가 상승도 신흥국 경제에 타격을 입히고 있다. 미국이 이란을 제재하며 최근 유가가 상승하고 있다. 통화 가치가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석유 가격이 상승하면 석유 수입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근 IMF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세계경제 전망이 어두워졌다며 위기가 확대될 경우 중국을 제외한 신흥시장에서 최대 1000억 달러(약 111조 원)가 빠져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파이낸셜 타임스〉도 내년 아시아 신흥국들의 경제성장률이 ‘닷컴 버블’이 붕괴한 2001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5.8퍼센트로 떨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경제 회복?

일각에서는 미국 경제가 회복세라서 신흥국 위기가 주변부 위기에 그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미국 경제 회복은 여전히 취약하다.

미국 경제는 올해 2분기에 지난해 동기 대비 4.2퍼센트 성장해 2014년 이후 최고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는 이번 고성장이 단기적인 요인들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첫째, 올해 2분기에 미국의 대중국 수출이 늘었는데, 이는 중국 측이 미국에 관세를 부과하기 전에 미국산 대두를 미리 사들인 것이 중요하게 영향을 미쳤다. 둘째, 트럼프가 법인세를 35퍼센트에서 21퍼센트로 대폭 깎아 줘 기업 수익이 증가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생산적 투자는 충분하지 않다. 이윤율이 여전히 낮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세금 감면으로 얻은 수익을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에 이용했다.

올해 미국 임금 인상률이 지난 10년 사이 가장 높았다는 통계도 실제 현실과 차이가 있다. 미국 녹색당의 잭 라스무스가 조사한 것을 보면, 미국 총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0년 64퍼센트에서 오늘날 56퍼센트로 줄어든 상황이다. 최근의 임금 상승은 상위 10퍼센트에 집중됐다. 관리자 층을 제외한 노동자 실질임금은 오히려 하락했다.

게다가 다른 선진국들의 상황은 미국보다 더 나쁘다. 유로존은 브렉시트와 이탈리아 재정 위기 등의 문제로 새로운 위기의 진앙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일본도 기업 경기 전망이 3분기 연속으로 하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인한 자금 경색, 무역 전쟁으로 인한 교역 위축은 신흥국만이 아니라 선진국들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2008년 위기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해 풀린 자금은 세계적으로 경제를 지탱하는 구실을 해 왔다. 국제금융협회(IIF) 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3월 기준으로 전 세계 총부채는 247조 달러에 달했다. 이는 2008년보다 75조 달러 늘어난 것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GDP 대비 부채 비중이 291퍼센트에서 318퍼센트로 커졌다.

이윤율이 낮은 상황에서 값싼 신용은 생산적 투자보다는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투기로 이어졌다. 그래서 전 세계의 주택 실질 가격은 2008년 금융 위기 직전보다 높아져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IMF 통계를 보면, 지난해 4분기 ‘글로벌 실질 주택가격 지수’는 160.1로 집계돼 자료가 확보된 200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런데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서 자산 가격이 하락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부동산 가격도 하락 추세로 돌아서는 곳들이 생기고 있다. 홍콩은 주택 가격이 2012년 이후 매해 10퍼센트씩 증가하며 가장 많이 올랐는데, 최근 집값이 29개월 만에 하락했다. 런던 주택 시장도 2016년 초에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하락세다.

금리가 인상되고, 이제까지 부풀어 있던 자산 거품이 꺼질수록, 빚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세계 각국이 2008년보다 더 커진 기업 부채, 정부 부채, 가계 부채를 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경제에 드리운 먹구름은 짙어지고 있다.

지배자들의 경제 위기 고통 전가에 맞서 노동계급의 투쟁과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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