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10월 13일 ‘2018 한국사회포럼’의 한 워크숍인 ‘한국 난민의 현실, 그리고 난민 혐오에 맞서기’(노동자연대 주관)에서 노동자연대 이정원 운영위원이 발제한 내용이다.


난민 현황

유엔난민기구(UNHCR) 발표에 따르면 “전쟁, 폭력 그리고 박해로 인한 전 세계 강제 이주민의 수가 5년 연속 증가해 2017년에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3년부터 매년 급격히 늘어 2017년 전 세계 강제 이주민 수는 6850만 명이다. 2017년 한 해 동안만 1620만 명이 늘었다.

이 중 국경을 넘어 자국을 떠난 난민은 2540만 명이었다. 이는 “2016년보다 290만 명 증가한 수치이며 유엔난민기구가 집계를 시작한 이래 가장 큰 폭의 연간 증가”다.

강제 이주민 중 3분의 2는 국내 실향민이다.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목숨을 지키기 위해 집을 떠난 사람들의 상당수는 자국 국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 난민 중 가장 많은 난민이 발생한 나라는 시리아다. 그 뒤를 콜롬비아, 아프가니스탄, 남수단, 이라크, 소말리아, 예멘이 잇고 있다.

전쟁, 탄압, 가난 등이 이렇게 많은 난민을 만들어 내고 있다. 대부분이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이 침략하거나 군사적·경제적으로 개입한 나라들이라는 점도 특징적이다.

그러나 서방 국가들은 모두 난민을 향해 굳게 문을 닫아 걸고 있다. 유럽은 일찌감치 ‘요새화된 유럽’이라 불릴 정도로 이주민·난민 유입을 통제해 왔는데, 특히 2015년 시리아 전쟁이 격화돼 난민이 대거 발생하자 이런 통제를 더 강화했다. 가령, 유럽연합은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터키와 시리아 사이에 국경 장벽을 세웠다. 또, 지중해 등지에서 해군력을 동원해 난민 단속을 강화하고, 북아프리카에 난민 수용소 설립을 추진했다.

그 결과, 전 세계 난민의 85퍼센트는 개발도상국에 체류하고 있다.(난민 다섯 명 중 네 명은 자국과 근접한 국가에 체류한다.) 터키에만 350만 명, 파키스탄·우간다·레바논·이란에 100만~140만 명씩 난민이 있다. 방글라데시·수단·이디오피아·요르단에도 70만~93만 명씩 난민이 있다. 난민 최다 수용국 10개국 중 선진국은 독일이 유일하다. 그러나 터키 내에 시리아 난민들을 묶어두는 조처를 이끈 것은 독일 총리 메르켈이었다.

한국은?

전 세계 난민의 극히 일부가 한국으로 온다. 정부나 언론은 난민 신청 증가율을 부각해 ‘한국으로 난민들이 몰려 오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 하지만, 이것은 터무니없는 과장이자 거짓말이다.

전 세계 (본국을 떠난) 난민의 0.17퍼센트가 한국에 왔을 뿐이다. 한국에서 난민 신청을 받기 시작한 1994년부터 올해 6월말 현재까지 고작 4만 2009명이 난민 지위를 신청했다.

그리고 849명이 난민 지위를 얻었다. (그런데 정부는 여기에 ‘인도적 체류’ 지위를 받은 1550명을 더해 “난민 인정(보호)”을 받은 수가 2399명이라고 부풀린다. 그러나 인도적 체류 허가는 난민 인정을 거부한 사람들 중 명백히 강제송환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임시적으로 체류만 허용할 뿐이다. 대표적으로 시리아 난민 대다수가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았다. 이조차 3개월마다 체류를 연장해야 해 결코 ‘인도적’이지 않다.)

난민 신청자 수가 가장 많은 국적 순으로 난민 인정률을 살펴보면 파키스탄 1.91퍼센트, 중국 0.41퍼센트, 이집트 0.63퍼센트, 나이지리아 0.3퍼센트다. 7위인 시리아 난민의 경우, 2017년 기준 1153명의 심사가 종료됐는데 단 4명만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인정률은 0.34퍼센트다(2018 난민인권센터 통계자료집).

난민 인정률이 이렇게 낮은 이유는 이들 대다수가 ‘가짜’ 난민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의 난민 제도가 체계적으로 난민 인정률을 낮추는 효과를 내도록 작동하기 때문이다.

난민의 입국 억제(출입항만 사전 심사, 난민 다수 발생 국가 무사증 제도 폐지), 난민에 불리한 난민 심사 과정(부정확한 통역, 난민에게 박해의 입증 책임 지우기, ‘가짜’ 난민 솎아내기식 불공정한 심사, 없는 것과 다름 없는 생계 지원 등), 까다로운 체류 심사 등 전 과정이 이런 효과를 낸다.

누가 난민 혐오를 부추기는가?

상황이 이러한데도, “난민 반대”를 외치는 우익들은 마치 한국이 난민들의 천국이라도 되는 양, 상당수 이주민들이 한국에 거주하기 위해 난민으로 위장해 몰려 들어 한국 사회를 위기에 빠트리고 있는 양 주장한다.

그러나 국내 이주민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봐도 난민은 극히 소수다. 전체 난민 신청자는 한국 이주민의 1.8퍼센트에 불과하고, 난민으로 인정받은 경우는 전체 이주민의 0.037퍼센트다(2018년 6월 현재, 전체 이주민 229만여 명).

난민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세력은 근거 없는 거짓말을 퍼뜨리며 혐오를 조장하고 나섰는데, 이들이 퍼뜨린 뉴스들은 미국의 극우 웹사이트나 유럽에서 떠도는 가짜 뉴스들이 출처였다. 최근 〈한겨레〉 신문은 유튜브 채널 100여 개, 카카오톡 채팅방 50여 개 전수조사 등을 통해 극우 기독교 세력이 혐오 확산의 핵심임을 폭로했다. ‘에스더기도운동’이라는 종교 단체가 진원지임을 밝혀 냈는데, 이들은 박근혜 탄핵 반대에도 적극 나선 세력이었다.

이것은 한국의 극우파 세력이 가장 취약한 소수자인 난민 문제를 이용해 우파 세력의 복원을 추진하려 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징조다. 단지 온라인 상에서 활동하는 것을 넘어 시위와 행진을 벌이고 있고, 극우 기독교 기반뿐 아니라 우파 정치인들이 결합해 이 운동을 고무하고 지원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특히 이 정치인들은 집회에서 연설하고 난민법 개악 또는 폐지 법안을 발의하는 등 난민 문제를 주류 정치권으로 가져와 논란을 더 키우고 쟁점화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우파들을 결집시키고 인종차별을 부추기는 위험한 일이다.

난민 혐오를 퍼뜨리는 자들은 ‘무슬림 난민’을 문제 삼는다. 무슬림들이 여성 차별적이고 성폭력이나 테러를 저지를 거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는 이슬람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한 편견이다. 다른 많은 종교와 마찬가지로 무슬림도 단일하지 않고 이질적이다. 이슬람과 아이시스가 동일한 것도 아니고, 무슬림들이 대부분 이들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편견은 서방 국가들이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퍼뜨린 거짓말에 불과하다.

사실 서구에서 이슬람 혐오는 이슬람이 위협적이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인종차별의 핵심 코드로 강화돼 온 것이다. 길게는 1979년 이란 혁명이 일어나 미국이 후원하던 타락한 이란 왕정을 타도했을 때 미국은 이슬람을 악마화하기 시작했다. 이후 냉전 해체로 사라진 “외부의 적”을 이슬람으로 대체했고, 2000년대 미국 등 서방의 제국주의 전쟁 속에서 더 강화돼 왔다.

독일로 향하는 기차 탑승을 거부당한 시리아 난민들. 2015년 9월 헝가리 ⓒ출처 Mstyslav Chernov
미국 등 서방 국가는 제국주의 전쟁을 정당화하려 이슬람 혐오를 체계적으로 부추겼다

또 서방 정부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긴축을 추진해 복지를 삭감하고 노동계급과 빈곤층의 삶을 공격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소수자들에게 돌리기 위한 시도로서 ‘내부의 적’ 무슬림을 속죄양 삼아 온 것이다.

서구만큼 뿌리가 깊지는 않지만, 한국 정부도 이라크·아프가니스탄 파병 등 제국주의 전쟁을 지원하거나 이주노동자를 공격할 때 주로 이슬람에 대한 비난과 공포를 부추겼다. 이는 우파 정부 하에서만 벌어진 일은 아니다. 이런 공격은 바로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됐다. 박근혜는 테러방지법까지 제정했다.

난민 혐오자들은 “난민이 아니라 자국민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마치 내국인이 이익을 침해당하거나 역차별이라도 당한다는 규정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난민에게 지원하는 비용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정부의 난민 생계비 예산(난민 신청 후 취업이 금지된 6개월 동안 지급하는 최소한의 생계 지원비)은 난민 증가를 반영해 증액되지 않아 생계 지원 예산은 전체 신청자의 3.2퍼센트밖에 커버하지 못할 수준이다. 게다가 2017년 생계 지원비로 쓰인 비용(8억 2000여만 원)은 한국 거주 이주민들이 출입국에 낸 수수료 140억 원의 6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다. 정부는 ‘수익자 부담 원칙’을 도입해 이주민 복지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이주민이 낸 수수료로 충당하기로 했고 이를 근거로 출입국 사무소 수수료를 인상했다.

또, 난민 신청자들은 의료보험과 같은 최소한의 사회복지도 제공받지 못한다. 불안정한 체류 조건 때문에 상당수가 매우 열악하거나 단기 일자리를 전전하는 처지다.

사실 이런 주장들은 난민 등 이주민이 문제를 낳는다는 생각을 강화하는 논리다. 흔히 정부와 언론은 이주민이 늘어서 문제가 생긴다고 주장한다. 범죄가 늘고 일자리가 줄고, 내국인의 복지를 빼앗아 간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진실이 아니다.

이주민이나 난민이 너무 많은 게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서 난민이 지금보다 대거 늘어난다고 해도 이들을 받아들이고 지원할 자원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한국은 경제 규모가 세계 11위인 나라다.

결국 국내의 빈곤층을 비롯한 사회적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 문제와 마찬가지로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가 진정한 문제다.

또 난민 대부분은 머물거나 정착한 국가에서 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 간다. 독일 정부가 난민을 100만 명가량 받아들인 데는, 부분적으로 이들을 일손이 부족한 부문의 노동력으로 사용하려는 계산이 작용했다. 난민들은 정착한 국가에 기생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대부분 노동자로 일하면서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이처럼 난민을 비난하는 주장은 인종차별을 부추기고, 평범한 사람들을 잘못된 대안으로 이끌려는 것이므로 이에 반대해야 한다.

2018년 9월 16일 ‘난민과 함께하는 행동의 날’ 집회 참가자들이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조승진

난민 혐오에 편승하는 문재인 정부

난민 혐오와 인종차별을 부추기는 이들만 문제가 아니다. 한국 정부의 대응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법무부는 올해 예멘 난민들의 입국을 계기로 논란이 크게 벌어지기 전부터 ‘난민 신청자가 급격히 증가해 과다한 행정 비용이 들어간다’거나, ‘‘가짜’ 난민들이 제도를 악용한다’며 난민 심사 절차를 바꿀 방안을 검토해 왔다. 이미 정부는 2016년 난민 재신청자에게는 체류와 취업 제한도 강화했다.

그리고 올해 난민 반대 주장이 거세지자, 정부는 ‘국민의 우려’를 이해한다며 ‘공정하고 엄격한 심사를 통해 악용자를 걸러 내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것의 진정한 목적은 난민 증가(인정)를 억제하려는 것이다. 이는 여당 의원들이 제출한 난민법 개악안을 비롯한 8건의 개악안과 법무부의 조처를 보면 알 수 있다. 그 내용 중에는 난민 심사 거부 사유를 확대하고, 난민 심사 기간과 행정소송 기간을 단축하며, ‘거짓’ 서류 제출 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이런 내용들은 난민 신청자들의 처지(신원 증명이나 제대로 된 서류를 제출하기 어려움, 언어 문제와 열악한 경제적 처지와 거주 불안정 등의 조건)를 고려하면 난민들에게 매우 가혹하거나 불리한 조처다.

특히 ‘경제적 이유’를 난민 불인정 사유에 포함하는 것은 난민 불인정을 정당화하는 매우 위험한 규정이다. 난민이 대규모로 발생하는 원인 중 경제적 빈곤 문제를 떼어서 볼 수도 없는데 말이다.

심지어 난민 신청자·인도적 체류자들에 대한 강제 송환 금지 규정을 없애라는 끔찍한 내용도 있다. 난민협약은 강제 송환을 금지하고 있다.

이런 개악 내용들 중에는 이미 유럽 등에서 난민 억제를 위해 도입된 조처들이 적지 않다. ‘박해 가능성이 없는 국가에서 왔거나 경제적 이유로 신청한 경우 난민 불인정한다’는 규정은 서방 정부들이 난민 신청을 거부하기 위해 이용하는 자의적 수단인 경우가 흔했다. 유럽 나라들은 대부분 1980년대 이후 노동 이주를 정주로 이어지게 하는 정책을 대폭 축소했고 체류 자격을 극도로 까다롭게 만들었다. 이미 정주한 이민자들에 대한 심사도 강화됐다. 특히 난민 심사를 대폭 강화해 인정률을 크게 떨어뜨리고 많은 난민을 구금 시설에 가뒀다. 이런 방식으로도 난민 유입을 막지 못하자 비자를 신설해 아예 입국을 차단하고, 국경 통제를 강화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정부와 사용자에 대한 분노를 이주민에게 돌리지 말라 ⓒ조승진

정부가 난민 반대 세력의 주장과 일부 사람들의 정서를 이유로 난민 심사를 대폭 강화하는 것은 난민들을 한층 큰 고통으로 내몰 것이 뻔하다. 또 이는 인종차별을 정당화하고 보수우익 세력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들에서 이런 과정이 거듭 반복되며 상황이 더 악화돼 왔다. 지금 한국 정부의 대응도 이런 위험한 길을 고스란히 반복하는 것이다.

정부가 이렇게 대응하는 것은 우파들에 굴복하는 어리석은 짓일 뿐 아니라, 정부 자신의 필요 때문이기도 하다는 점도 중요하다. 지금 정부는 한국 경제 위기가 장기화하고 심화하기 시작하자 미등록 이주민이 일자리 도둑이라고 비난하며 단속과 추방을 강화하고 나섰다.

이는 한국의 고용률 악화가 이주민 탓이라는 주장을 퍼뜨려 진정한 책임이 있는 정부와 사용자들에 대한 분노를 이주민에게 떠넘기는 전형적인 속죄양 삼기 정책이다. 경제 위기 시기에 특히 인종차별적 공격이 강화되는 것은 각국 정부들이 이런 위선적인 정책들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과 평범한 사람들이 이런 잘못된 표적으로 눈을 돌리면, 대중의 삶은 개선은커녕 더 악화되기 십상이다. 노동계급이 분열돼 정부나 사용자에 맞설 힘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결론

따라서 우리는 우파들의 난민 혐오와 인종차별 부추기기에 맞서 난민을 환영하는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동시에 정부가 이에 편승해 난민들의 처지를 악화시키는 것에도 맞서야 한다. 정부가 이주노동자에 대한 공격도 강화하는 상황(단속 강화, 최저임금 삭감 등)이므로 이주노동자 방어 운동과도 결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운동은 최대한 광범한 대중 운동이 되도록 해야 한다.

오늘날 난민과 이주민 공격, 이슬람 혐오 등과 같은 인종차별은 경제 위기 때 반짝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인종차별은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사라지기는커녕 유지·갱신돼 왔고, 최근에는 더 강화되는 추세다. 이는 인종차별이 자본주의 체제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은 단지 과거의 쓰레기 같은 편견이 남아 있거나, 갑자기 대중들이 후진적·반동적 사상에 빠져들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련의 인종차별적 정책과 제도들이 강화돼 온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자본주의에서 이주민들은 경제에 필요한 값싼 노동력으로 이용되고, 동시에 정부나 체제에 대한 불만의 엉뚱한 표적이 되곤 하는 것이다.

또 오늘날 난민이 발생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미국, 러시아, EU 등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제적·군사적 개입으로 파괴되고 그 결과로 내전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 곳들이다. 이 역시 자본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들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피해자들이 더 나은 삶과 안전을 위해 이주하는 것을 문제 삼아선 안 되고, 이 체제와 지배자들의 정신 나간 우선순위를 비난해야 한다.

각국 정부들은 이주 규제를 필요로 하고 제국주의적 이해관계에 얽혀 있다. 이것은 아무리 개혁적인 정부가 들어서도 인종차별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난민과 이주민을 방어하는 대중 운동이 중요한 이유다. 인종차별 강화가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므로 이 운동에 노동계급이 동참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아가 이런 끔찍한 차별을 유지·강화하는 자본주의에도 함께 반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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