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 〈노동자 연대〉 신문은 문재인 정부가 노동자 투쟁의 이완과 분열을 노리는 세 가지 책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중 하나는 탄력근로제 확대의 추진 시기를 조금 미뤄 대화 모양새를 취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 책략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탄력근로제 확대에 관한 정부의 입장이 결코 바뀐 것이 아닌 데다, 일부 쟁점에서 템포를 늦추는 척하면서도 지난 여름 이후 본격화한 우경화와 배신은 거침없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주목할 만한 사례만 꼽아도 한둘이 아니다. 첫째, 광주형 일자리 잠정 합의이다. 일부 공개된 잠정 합의 내용을 보면, 사실상 임금 인상과 단체협상을 5년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민주노총은 광주형 일자리가 “반값 임금 고정”으로 격차를 더 확대하는 일자리이자 “초법적 노동3권 무력화 모델”이라고 규탄했다.

노동자들이 단호하게 효과적으로 싸우면, 중도파의 배신으로 우파가 반사이익을 얻는 게 아닌 진정한 대안을 발견할 수 있다 ⓒ출처 민주노총 부산본부

우경화의 지속 또는 가속

광주시와 현대차의 이 같은 잠정 합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노·사·민·정 대타협’ 논의에 참여해 온 한국노총마저 반발했다. 그래서 막판에 단협 유예 기간을 (5년이 아니라) ‘경영이 안정될 때까지’로 바꾸었다고 한다. 하지만 거기서 거기이고, “초법적 노동3권 무력화 모델”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둘째, 공공기관 직무급제 추진이다. 정부는 “직무가치·성과·능력”에 따른 직무성과급제를 주장해 왔고, 12월 10일에는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 토론회(기획재정부 후원)를 개최해 직무급제 추진에 본격 시동을 걸려 한다.

문재인 정부가 직무급제를 추진하는 이유는 임금 억제, 차별의 합리화, 노동자 이간질이다. 공공부문의 정규직 전환 노동자들에게 적용되는 표준임금체계(정부 안)는 이미 이런 문제점을 잘 보여 준다.(☞ 자세한 내용은 〈노동자 연대〉 260호에 실린 ‘직무급제는 (임금 격차를 해소하는) 공정한 임금체계인가?’를 참고하시오.)

지금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임금 억제의 한 방편이 된 임금피크제의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외면한 채 또 다른 임금 개악을 강행하려는 것이다.

셋째, 제주 영리병원 허가 문제다. 보건의료단체들과 노동단체들은 문재인 정부가 제주 영리병원 허가를 묵인·방조하고 있다고 규탄한다. 정부는 의료 규제 완화에서도 박근혜 정부와 다를 바 없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넷째, 무엇보다 경제부총리 홍남기 지명이 보여 주는 우경화 지속의 의지다. 홍남기 후보자는 최저임금 인상이나 노동시간 단축 정책 속도가 빨라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 인상을 늦추고 탄력근로 기간 확대를 빨리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노동존중’과 관련된 나머지 정책들도 진척이 없거나 후퇴하는 마당이다. 가령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 법제화도 올해 상반기까지 하겠다고 했지만 깜깜 무소식이다. ILO  기본협약 비준은커녕 노동권 제한 일자리 협약을 추진하는 판국이다. 홍남기의 주장인즉, 이 추세를 가속시키겠다는 것이다.

둑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구멍

현 상황을 보면, 문재인 정부가 탄력근로제 확대의 추진 시기를 조금 미룬 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민주노총은 12월 1일 민중대회 이후 이렇다 할 투쟁 계획을 내놓고 있지 않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앞서 구체적 사례가 열거된 문재인 정부의 우경화와 노동 개악 추진이 굽힘 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는 경사노위 산하 위원회라도 들어오라는 문재인과 경사노위의 권고에 응하지 않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두 가지 점에서 불충분하다.

첫째, 경사노위 산하위원회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명확한 방침을 밝히지 않아 산하 노조가 각개 대응할 우려가 있다. 공공운수노조 중앙집행위원회는 민주노총이 경사노위 참여를 결정하기 전까지는 각종 위원회 참여를 중단하기로 했다. 금속노조도 마찬가지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반면, 보건의료노조는 경사노위 산하위원회 준비회의에 계속 참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일부 노조가 경사노위 산하 위원회(준비회의)에 참여하면서, 정부와 경사노위 측의 참여 권고에 응하지 않는다는 민주노총의 대응에 균열을 낼 수 있다. 처음에는 한 개 노조만 참여하지만, 노조 간 경쟁에 밀리지 않기 위해 이내 다른 노조도 위원회 참여를 결정할 수 있다. 또, 다른 노조들은 하는데 우리 노조만 관련 쟁점(가령 연금이나 사회안전망)에서 ‘뒤처지는’ 노조가 될 수 없다며 더 많은 노조들이 참여를 결정할 수 있다.

결국 작은 구멍이 둑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지난 호 이 신문 사설이 언급한 정부의 민주노총 ‘분열시켜 약화시키기’ 책략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민주노총 내 좌파의 입지를 좁히고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 길을 넓히려 한다.

따라서 민주노총 지도부는 산하 노조들이 각개 대응하다 둑이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을 방치하지 말고 경사노위 산하위원회 불참 입장을 명확하게 천명해야 한다.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패턴 경계해야

둘째, 단지 경사노위 산하 위원회 참가 권고 불응에 그치지 말고 실제로 투쟁을 해야 한다. 개악을 전제로 타협과 고통 분담을 강요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옳지만, 그 대안은 바깥에서 뒷짐지고 대화 구경하기가 아니다. 경사노위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는 투쟁을 해서 개악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경사노위 바깥에서 투쟁을 하지 않으면 사회적 대화를 동원한 개악을 막을 수 없다. 그러면 개혁주의자들은 ‘거 봐라, 대화 테이블에 앉지 않으니 개악을 완화하지도 못하지 않느냐’고 말할 것이다.

일부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고무하지 않고 회피한 다음, 투쟁 역량이 없다거나 투쟁해 봤자 소용없다 하면서 대화와 협상으로 기우는 식의 패턴은 이제 익숙하다.

유류세 인상에 맞서 단호하게 싸운 프랑스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 마크롱을 후퇴시켰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독 동질감을 나타냈던 중도파 마크롱의 후퇴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재인의 후퇴와 배신으로 우파가 기세등등해지고 있지만 중도파의 위기가 낳을 수 있는 길이 그뿐인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이 단호하게, 효과적으로 싸우면 문재인을 한 발 물러서게 만들고 진정한 대안이 전진할 수 있다.

2018년 12월 5일
김하영 노동자연대 조직노동자운동 팀장 대표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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