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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앤장 압색 사건을 계기로 살펴본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대중의 반감을 무마하려는 것

최근 들어 대기업들은 너도나도 ‘사회적 책임(CSR)’을 강조하고 있다. 엔지오와의 업무 제휴와 재정 지원(‘파트너십’), 임직원 봉사 활동, ‘사회 공헌’ 위원회·재단 설립 등이 그런 활동들이다. 이를 통해 착취와 차별로 막대한 부를 벌어들이는 자기 본모습을 가리고 싶어 한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일으킨 옥시는 2014년 아시안 리더십 어워드한테서 ‘베스트 CSR 프로그램’ 상을 받았고, 〈뉴스위크〉가 선정한 ‘환경친화기업’ 전 세계 4위에 오르기도 했다.

다국적 제약회사인 노바티스는 인도에 ‘건강한 가족’ 프로그램을 지원했다고 홍보한다. 그러나 정작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을 값싸게 판매하지 못하게 하려고 인도에서 소송까지 벌였다. 한국에서는 백혈병 환자들이 글리벡 약값 인하를 요구하는 거리 시위를 벌였다.

대형 로펌 김앤장은 민주노총이 “노동적폐 5적”의 하나로 꼽은 로펌이다. 김앤장은 사회공헌위원회를 만들어 ‘사회공익단체’들을 후원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다고 홍보한다. 다른 대형 로펌들도 공익재단을 운영한다.

기업은 “사회 공헌”이 (기업 홍보PR의 일환으로서) 이윤 추구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엔지오인 아름다운재단은 “기업 사회 공헌이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실제로 기업 이미지가 나빠지면 매출이 감소하기도 한다.

“사회 공헌”은 기업들의 부패를 가리는 수단이기도 하다. 2013년 현대산업개발은 44억 원이 넘는 공사대금을 부당하게 챙긴 것이 드러나 ‘입찰 참여 5개월 제한’ 처분을 받았다. 그러자 70억 원 규모의 사회 공헌을 약속해 입찰 제한 기간을 1개월로 줄였다.

공익재단은 사주의 기업 지배 유지에도 유용하다. 올해 7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 소속 공익법인들이 “총수일가의 지배력 확대, 경영권 승계 등의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발표했다. 공익법인들은 상당한 세금 면제 혜택까지 받고 있다. 이재용이 이사장인 삼성생명공익재단은 2016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등 계열사 간 합병에서 발생한 순환출자를 매입해 줬다. 이재용 경영 승계에 이용된 셈이다.

사회단체는 사기극에 동참해선 안 된다

일부는 ‘기업들이 이런 식으로라도 사회를 위해 돈을 쓰면 좋은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중 일부 사람들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환경재단 이미경 상임이사는 〈경향신문〉 기고 글에서 “솥단지 하나도 세 다리가 맞아야 바로 선다”며 정부, 기업, 시민사회의 ‘거버넌스’(협치)를 강조했다. 사회단체가 기업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아 공공 서비스를 실현하므로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라는 가정에 근거하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값싸게 대신하는 것이다. 국가는 그만큼의 책임을 덜 수 있다. 그래서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세계 각국 정부는 엔지오들을 이용해 국가가 제공해야 할 서비스를 대체하는 정책들을 의식적으로 추진해 왔다.

기업들은 진정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특히 경제 침체 상황에서는 기업들은 노동자 임금을 어떻게든 깎고 싶어 한다. 법인세 인상과 부유세 신설에 결사 반대한다. 그들은 안전과 환경 보호 관련 규제를 완화시키기 위해 애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윤과 권력에 도전하는 노동자 투쟁과 급진좌파 단체들을 결코 후원하지 않는다.

사실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말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솟아오른 국제 반신자유주의 운동에 대한 대응이기도 했다. 저항의 일부를 흡수해 순치시키려는 것이다.

캐나다의 정신과 의사이자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인 한 여성은 이렇게 지적했다. “이미 오래 전 《부의 복음》(1889)에서 미국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부자들이 적절한 곳에 기부를 하면 사회적 저항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 카네기는 정부에 돈을 대기보다는 자선 재단을 설립하라고 부자들에게 조언했다. 사회를 친기업적 방향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수전 로젠털, ‘기업의 자선— 노동자들을 기만하고 혼동케 하려는 위장술’, 〈노동자 연대〉 151호)

화려한 포장지 기업들에게 '사회적 책임'은 자신들의 본모습을 가리는 유용한 수단이다 ⓒ출처 김앤장 웹페이지

기업들은 자신의 추악한 본질을 그럴싸한 포장지로 감추려 한다. 온건 진보 성향의 사람들에게 기업이 마냥 나쁜 것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 주거나 적어도 헷갈리게 만들 수는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이것은 우리가 누구와 맞서야 하는지를 흐리고, 지배자들에 맞서 일관되게 싸우는 것을 어렵게 한다.

기업 후원을 받으면 그들의 비위와 부패, 악행에 대한 비판도 무뎌지게 된다. 재정을 그들에게 의존하게 되면 ‘관계’를 의식해 분명하게 비판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질 것이다.

무엇보다, 기업 후원은 아래로부터의 단결된 운동 건설에 해롭다. 예컨대, 김앤장의 악행에 분노하는 노동자들, 강제 징용 피해자들,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이 김앤장의 돈을 받는 단체나 운동이 말하는 인권, 차별 반대, 민주주의 같은 구호의 진정성을 어찌 의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

대기업들의 이익단체 전경련은 지난해 대기업의 ‘사회 공헌’ 활동 지출액이 30퍼센트 늘었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가져가는 몫인 노동소득분배율은 줄어들고 있다. 사회적 불평등도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금의 부조리와 고통을 뿌리뽑고 싶다면 이것을 만들어 내는 근원인 이윤 체제에 도전해야 한다. 이 체제를 수호하는 최대 수혜세력 자본가들에게도 맞서야 한다. 차별받고 착취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려는 운동과 활동가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신화를 공개적으로 걷어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