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5일 영국의 유럽연합(브렉시트) 탈퇴 방안에 대한 합의안이 하원에서 압도적 표차로 부결됐다. 그리고 영국의 기성 정치는 혼란에 빠져 들었다.

2016년 국민투표로 결정된 브렉시트는 권력 엘리트층에 의해 삶이 파탄났다고 느낀 서민 대중의 항의 투표 결과였다.

독자들이 브렉시트의 의미와 현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본지의 지난 기사들을 재게재한다. 아래의 기사는 본지 183호에 처음 실렸다.


6월 23일 국민투표 결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됐다. 그러자 인종차별이 득세한 결과라며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권력층에 대한 반감이 표출된 것으로 봐야 한다.

세계경제 위기 발발 이후 영국 노동계급은 끊임없이 공격에 시달려 왔다. 영국노총(TUC) 자료를 보면, 2007~15년 OECD 나라들 중 실질임금이 영국만큼 많이 떨어진(10.4퍼센트) 곳은 그리스뿐이다. 반면, 영국 최상위 부자 1천 명의 재산은 갑절 이상으로 늘어 5천7백60억 파운드(1인당 평균 8천억 원)가 됐다.

이에 대한 반감에는 당연히 모순된 요소가 섞여 있고, 그것이 장차 어디로 향하게 될지는 예정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유럽연합에 대한 반감이 표출된 상황을 반긴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은 세 가지 이유로 탈퇴에 투표하자고 주장했다. 첫째, 유럽연합은 친자본주의 기구이고, 특히 지난 몇 년 동안 유럽 전역에 긴축을 강요했다. 둘째, 유럽연합은 이주민·난민에게 인종차별적이다. 유럽을 찾는 많은 난민들이 지중해에 수장되고 있다. 셋째, 유럽연합은 제국주의 악당의 일원이자 미국이 세계 각지에서 저지르는 만행을 나토와 함께 돕는 핵심 기구다. 이 때문에 미국은 1940년대 이래로 유럽을 하나로 묶어 자신의 하위 파트너로 만들려고 해 왔다. (자세한 내용은 ‘유럽연합의 역사: 유로존과 유럽연합은 노동자들에게 불리하다’ 〈노동자 연대〉 154호를 보시오.)

그래서 SWP는 몇몇 좌파단체, 일부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함께 ‘좌파적 탈퇴’(‘렉시트’) 운동을 벌였고, 인종차별에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반자본주의적이고 국제주의적인 원칙에 근거해 유럽연합에 반대하는 주장을 폈다.

탈퇴 투표의 실제 성향

여론조사 업체 애쉬크로프트는 투표 당일 전국 1만 2천3백69명에게 질문을 던졌다. 애쉬크로프트는 설문 응답자를 다음과 같이 직업별로 분류했다.(하단 표 참조)

△사회 계층에 따른 투표 비율 (출처: 애쉬크로프트)

A를 제외한 나머지 계층에는 노동자가 많이 포함된다. 대학 강사, 교사, 보건 노동자 일부는 B에도 포함된다.

잔류에 더 많이 투표한 집단은 A와 B뿐이다. 소득이 적을수록 탈퇴에 투표할 확률이 높았던 것이다. 공공임대주택 거주자의 3분의 2가량이 탈퇴에 표를 던졌다. 노동계급은 누적돼 온 쓰라림과 분노를 탈퇴 찬성 투표를 통해 표현한 것이다.

지리적으로 보면, 잉글랜드에서는 런던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탈퇴가 더 많았다. 웨일스에서도 탈퇴가 더 많았다. 런던에서도 탈퇴에 투표한 사람은 1백50만 명을 넘었다. 지역을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과거 대처 정부의 공격을 많이 당한 곳일수록 탈퇴 투표 비율이 높아 60~70퍼센트에 달했다.

한편, 대학생 유권자의 87퍼센트가 투표했는데 그중 85퍼센트는 잔류에 투표했다. 그들 중 상당수는 난민·이주민의 처지에 연민을 느끼고, 모종의 국제주의를 지향하고, 영국독립당 같은 반동적 세력을 견제하려 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많은 청년들이 진보적 가치를 지향해 투표한 것이고, 이것은 사회주의자들이 관여하기에 우호적인 여건이다.

탈퇴 투표자의 절반은 “영국에 관한 결정은 영국에서 내려져야 한다”는 것을 단연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국경 통제”를 이유로 꼽은 사람은 3분의 1에 그쳤다. 인종차별적 동기보다 유럽연합의 엘리트주의적 비민주성에 대한 반감이 더 컸던 것이다.

이주민에 관한 의견 분포는 다루기가 까다롭다. 탈퇴 투표자의 14퍼센트만이 이주민을 긍정적으로 여겼고 62퍼센트는 부정적으로 여겼다. 잔류 투표자는 긍정 57퍼센트, 부정 17퍼센트였다. 이는 앞에서 본 사회계층 중 가장 하위인 C2, D, E에 속하는 응답자들이 상위 계층보다 이주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더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것과 관계 있다.

이런 결과는 사회주의자들 앞에 엄중한 과제가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 원인을 보통 사람들 탓으로 돌려선 안 된다. “이주민 유입에 반대하는 여론은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에 크게 늘었고 2003년 이후로는 대체로 일정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2016 영국인들의 사회 인식 조사〉)

수십 년 동안 주요 정당과 언론은 이주민이 너무 많이 들어오는 바람에 일자리가 부족해지고, 주택난이 심각해지고, 임금이 떨어지고, 공공서비스가 망가진다고 선동했다. 지배자들은 개인주의를 부추긴다. 그래서 삶을 개선하려면 (집단적 해결책을 모색하지 말고) 바로 옆 사람을 밟고 일어서라고 가르친다. 인종차별도 그런 식으로 부추긴 것이다. 더욱이 이번 국민투표에서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잔류 진영과 탈퇴 진영 모두에서 설쳤다.

“불법 이주민?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체포될 줄 아시오” 영국 총리 메이가 2013년 내무장관이던 시절 운행한 ‘공익’광고 차량의 문구.

그런데도 무수한 대중이 여전히 인종차별을 거부한다는 점이 진정 놀랍다. 2015년 9월의 여론조사는 영국인 셋 중 한 명이 난민 구호 기금 모금과 연대 활동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여론조사 업체 입소스모리가 올해 7월 발표한 이주민에 관한 국제적 인식 결과를 봐도 영국인은 35퍼센트가 이주민에게 우호적이었다. 조사 대상 22개국 중 네 번째로 높았고 유럽에서는 가장 높은 것이었다. 영국 노동자는 대부분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고, 탈퇴 투표자들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일각에서는 브렉시트 결정으로 영국독립당이 부상하리라고 봤지만 현실은 달랐다. 영국독립당은 국민투표 이후 보궐선거가 치러진 20곳 중 11곳에서 득표율이 떨어졌고 오직 한 곳에서만 득표율이 올랐다.(나머지 8곳은 새로 출마한 곳이었다.) 벡슬리세인트미카엘 선거구에서는 국민투표 1주일 뒤에 보궐선거를 치렀는데, 유럽연합 탈퇴 표가 63퍼센트가 나온 이곳에서 영국독립당의 득표율은 지난번보다 15퍼센트가 줄었다.

영국 파시스트들의 처지도 다르지 않다. 국민투표 결과가 나온 주말에 뉴캐슬에서 있었던 나치 집회에는 전국에서 나치 동조자 겨우 스무 명이 모였다. 3백 명에 달하는 반파시스트 시위대가 “난민 환영한다”, “나치 꺼져라”라는 구호로 그들을 압도했다. 결국 파시스트들은 세 시간 만에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7월 사우스햄튼에서도 ‘16명 vs. 1천 명’으로 반파시스트 시위대가 승리했다.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되겠지만, 파시스트들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인상에 불과한 견해일 뿐 아니라 그들을 막는 데도 도움이 안 되는 주장이다.

노동자들의 모순된 의식에 개입하기

국민투표에서 드러난 노동자들의 반(反)권력층 정서를 긍정적 방향으로 이끌려면 노동자들의 모순된 의식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각각의 노동자가 “두 가지 이론적 의식 (또는 한 가지 모순된 의식)”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 의식(또는 모순된 의식의 한 측면)은 노동자의 실천 속에 잠재해 있고 그가 다른 노동자와 협력하게 해 준다. 둘째 의식(또는 모순된 의식의 반대 측면)은 노동자가 지배계급의 생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서 생긴 것이다.

개인적 경험

투표 직전에 실시된 입소스모리의 여론조사를 보면, 이런 모순된 의식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 수 있다. 당시 유권자의 42퍼센트, 탈퇴 투표 의향자의 65퍼센트가 이주민은 영국 사회 전체로 보면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답했다.

그런데 자신이 사는 지역에 국한된 영향을 물었을 때는 부정적 응답이 24퍼센트로 뚝 떨어졌다. 탈퇴 투표 의향자의 절반가량은 이주민이 자기 동네에서는 긍정적 영향을 끼치거나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답했다. 나아가, 개인적 경험을 물었을 때는 유권자의 78퍼센트, 탈퇴 투표 의향자의 62퍼센트가 이주민이 자기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거나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답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이주민을 부정적으로 말할 때는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대체로 언론과 정치인들이 떠드는 것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는 단연 가장 좋은 방법은 투쟁에 참가하는 것이다. 커다란 파업이 벌어지면 노동자들은 서로를 경쟁자가 아니라 동지로 보게 된다. 반면, 파업이 적을수록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생각들이 퍼지기가 더 쉽다.

인종차별은 앞으로도 계속 뜨거운 쟁점이 될 것이다. 브렉시트 협상 과정에서 영국 정부는 영국 내 유럽인들의 권리나 유럽인들이 영국으로 자유롭게 이주할 자유를 빼앗거나 억누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공동전선 ‘인종차별에 맞서자’(Stand Up to Racism)를 통해 이주민의 권리를 옹호하고, 난민을 환영하고,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지난 몇 년간 영국 정치는 이변의 연속이었다. 영국독립당이 수백만 표를 얻으며 떠올랐고, 스코틀랜드에서는 독립 투표가 치러지면서 스코틀랜드국민당이 떠오른 반면 노동당은 스코틀랜드에서 거의 붕괴했다. 이후 제러미 코빈이 긴축 반대 정서에 힘입어 모든 이의 예상을 뛰어넘어 노동당 대표가 됐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이변이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그런 이변을 그저 구경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적극 개입해야 한다.

추천 책

브렉시트, 무엇이고 왜 세계적 쟁점인가?

알렉스 캘리니코스 외 지음, 김영익·김준효 엮음, 책갈피, 156쪽, 6,500원


이 글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2016년 가을 호에 실린 찰리 킴버의 ‘Why did Britain vote Leave?’를 기초로 김종환 기자가 작성한 것이다. 찰리 킴버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기관지 〈소셜리스트 워커〉 편집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