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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차 육성 정책은:
경제 위기의 대안이 못 된다

문재인 정부는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경제 선도 국가로 도약”하겠다며 수소차 생산을 강조하고 있다. 1월 17일에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여기서 정부는 현재 누적 생산량이 고작 2000대인 수소차를 2040년에는 620만 대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이 중 내수용은 290만 대인데, 현재 국내 자동차 수가 2300만 대임을 고려하면 수소차를 자동차 시장의 10퍼센트 이상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최근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 1호 정책으로 국회에 수소차 충전소를 설치하는 등 지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수소차가 친환경이라는 점을 부각한다. 수소차는 차체 내에서 수소로 전기를 만들고 이 전기를 이용해 작동한다. 그래서 다른 전기차처럼 배기가스가 없을 뿐 아니라 수소와 결합시키기 위해 대기 중의 산소를 흡입하는 과정에서 공기를 정화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도심 미세먼지를 완화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러 환경단체들이 지적하듯, 수소가 친환경 에너지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수소를 추출하는 데에 막대한 화석 연료가 쓰이기 때문이다. 물을 전기 분해해서 수소를 얻을 수도 있지만 이를 위해서도 전기가 필요하고, 지금은 전기 생산도 화석 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또 지구상에서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를 고압으로 압축하고, 새어 나가지 않게 저장하는 데도 화석 연료가 쓰인다. 게다가 핵 발전 시 발생하는 열을 이용해 수소 생산을 하자는 말까지 나온다. 이는 친환경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방안이다.

요컨대, 화석 연료와 핵발전에 의존하는 현재의 전기 생산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수소차도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이다.

도박

정부는 자동차 산업이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수소차가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며 환상을 부추긴다. 울산에서 열린 수소경제 활성화 전략보고회에서 문재인은 수소차를 육성해 “경제의 성장판”을 열어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 힘을 모으자고 했다.

문재인이 울산을 다녀가고서 며칠 뒤 민주당 소속 울산시 의원인 이상헌은 현대차 사측과 노동조합을 잇달아 만나며 수소차 산업 발전을 위한 노사 협력을 강조했다. 결국 수소차 육성 정책은 신산업 육성을 위해 노동자가 협조해야 한다는 분위기 조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요즘 내가 현대 수소차 홍보모델”이라는 문재인 정부는 수소차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부추기지만 ‘신 산업’이라는 환상이 무너진 사례는 역사적으로 반복돼 왔다 ⓒ출처 청와대

그러나 수소차는 전망이 불투명해서, 정부와 현대자동차가 여기에 집중 투자하는 것은 도박이나 다름없다. 정부는 일본, 중국, 독일도 수소 경제를 위한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며 여기서 뒤처져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경쟁이 과잉 생산으로 이어지고, 성장을 이끄는 ‘신 산업’이라던 환상이 모래성처럼 무너진 사례는 역사적으로 반복돼 왔다.

예컨대, 1990년대 말 ‘신경제 호황’ 때 IT와 통신업계에 막대한 투자 붐이 일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광케이블이 약 6200만 킬로미터나 깔렸는데, 이는 지구를 1566번 감을 수 있는 길이였다. 그러나 IT 투자 붐이 계속될 수 없다는 것은 2000년대 초 거품 붕괴로 드러났다.

게다가 수소차보다 먼저 대중화가 시작된 전기차도 심각한 수익성 문제를 겪고 있다는 점을 봐야 한다. 전기차 시장에서 가장 앞서 나간다고 알려진 테슬라는 매해 손실을 기록하고 있고, 최근 정규직 7퍼센트를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냈다. 전기차도 현재의 경기 불황에서 자유롭지 않다.

게다가 컨설팅 기업인 알릭스파트너스가 지난해 말 발표한 자동차 산업 전망 보고서를 보면, 2023년까지 전기차와 관련된 기업의 연구·개발비를 포함한 자본 지출은 2550억 달러(약 286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지난 8년간 전기차 시장에 투자된 총비용 250억 달러(약 28조 원)의 약 10배나 되는 돈이다. 이처럼 기술 개발을 위해 투자해야 하는 비용은 늘어나지만 이들의 수익성은 사실상 제로이거나 마이너스 수준이다. 현재 전기차는 정부의 지원 없이는 유지되기 힘든 상태다.

마르크스는 기계 등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고 실제 가치를 만들어 내는 노동에 대한 상대적 투자가 줄어들수록 이윤율은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전기차처럼 기술 투자 비율이 높은 산업에서 자본가들이 수익성 때문에 고전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지적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각국 정부들의 지원 속에 전기차 시장은 성장하고 있다. 자본가들은 성장하는 전기차 산업에서 뒤처지지 않고, 시장을 선점해 기회를 잡으려고 손해를 감수하며 투자하고 있다. 이런 투자가 향후 성공으로 이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이는 당장은 ‘신성장’이라는 장밋빛 꿈을 실현시키기보다는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 상황에서 부담을 증가시키는 요소가 되고 있다.

이런 투자 부담은 노동자들에 대한 고통 전가로도 이어지고 있다. 단적인 예로 미국 기업 제너럴모터스(GM)는 북미에서만 노동자 1만 4000명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도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투자는 강화했다.

투자 비용 회수

정부가 특별히 수소차를 강조하는 배경에는 세계 1위 기업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존재한다. 다른 자동차 기업들이 수소차 투자에 소극적인 동안, 현대자동차는 수소차에 투자해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췄다고 평가된다. 현대자동차가 전기차 경쟁에서 뒤처졌지만 수소차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인 만큼 정부 지원을 통해 세계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수소차는 전기차보다 내부 구조가 복잡해 투자 비용이 더 많이 든다.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을 감당하려면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정부와 서울시 등 지방정부들은 한 대에 약 7000만 원인 수소차 판매를 위해 대당 3500만 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주기로 했다. 한 곳을 짓는데 30억 원이나 드는 수소차 충전소 건립 등도 지원할 계획이다. 한국에서 현대자동차만이 수소차를 생산하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맞춤형 지원 사업이다. 이런 국가의 지원은 자유시장 이데올로기가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생생한 사례이기도 하다.

정부와 현대자동차는 수소차에 들인 막대한 비용을 노동자 쥐어짜기로 벌충하려 할 것이다. 정부와 현대자동차가 광주형 일자리라는 임금 삭감 정책을 밀어붙이고 이를 확대하겠다고 했듯이 말이다. 만약 그들이 도박에서 실패한다면 그 고통은 노동자들에게 더욱 심각하게 전가될 것이다.

물론 이런 점들이 우려되므로 우리가 전기차나 수소차를 반대하고 기존 화석연료 체제를 지지하자는 것이 아니다. 화석연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기술 개발도 자본주의 경쟁 논리에 따라 벌어진다면 그 비용과 실패의 책임이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운동 일각이 자동차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동운동도 전기차나 수소차 등 미래차 육성을 지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자본주의에서 산업 경쟁력 논리는 결국 수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져, 노동자 착취를 강화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마르크스가 지적했듯 자본주의는 이윤을 위한 경쟁적 축적이라는 핵심 동학 때문에 이윤율이 저하하는 위기를 겪고 있다. 산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은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체제의 경쟁 논리에 노동자들이 기대게 만든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노동계급은 산업 발전이 아니라 임금·노동조건·일자리·정치사회적 권리 등 삶의 필요라는 가치를 일관되게 추구해야 한다. 신산업 육성이 아니라 노동자 투쟁을 통해 자본주의를 근본에서 변혁하는 것이 노동계급의 삶 개선을 위해 훨씬 더 현실적인 대안이다. 노동자 투쟁이 확대될 때 진정으로 친환경적인 기술 개발과 그 기술을 대중의 삶을 위해 활용할 방법이 발전할 여지도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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