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4일로 예정된 개원 시한이 다가오고 있지만 녹지국제병원이 진료를 시작할 조짐은 전혀 없다. 제주도지사 원희룡이 공론화 결과도 뒤집어 가며 개원을 허가했지만 정작 녹지국제병원 측은 문을 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녹지국제병원 측은 ‘내국인 제외’ 조처를 따를 경우 막대한 손해를 볼 것이라며 제주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제주도 측은 녹지그룹이 2015년에 제출한 사업계획서에서 ‘외국인 관광객만을’ 진료한다고 명시했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부 법률가들은 진료 거부를 금지한 의료법이 상위법이므로 녹지그룹 측이 승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럴 경우 내국인 진료를 하는 명실상부한 영리병원이 문을 열게 된다.

이런 상황을 만든 직접적인 책임은 원희룡에게 있다. 영리병원 반대 운동 진영은 12월 5일 제주도지사 원희룡이 조건부 허가를 발표했을 때부터 이런 소송전이 벌어질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러나 제주도 측은 이를 무시해 오다가 결국 소송을 당한 것이다.

그러면 녹지그룹 측은 왜 ‘외국인 전용’ 사업계획을 제출해 놓고 이제 와서 내국인도 진료하겠다고 하는 걸까?

녹지국제병원은 중국 부동산 기업인 녹지그룹이 제주도에 건설하고 있는 녹지국제헬스케어타운의 일부다. 녹지그룹은 2015년 중국에서 한창 제주도 관광 붐이 일었을 때 이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는 중국인 관광객의 성형 관광도 한창 늘고 있었다. 녹지그룹은 제주도에서 거의 공짜에 가까운 세금 혜택까지 받아가며 환자를 유치하면 큰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여긴 듯하다.

그러나 이 전망은 3년 사이에 뿌리채 흔들렸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를 강행하면서 중국 정부는 관광은 물론이고 한국으로의 자본 진출에 제동을 걸었다. 2018년 미중 무역갈등은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 결과 2018년 제주도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66만 6000여 명으로 2016년 306만여 명에 비춰 78퍼센트나 줄었다. 한국으로 의료관광을 오는 중국인 환자의 수도 2016년 대비 2017년에 22퍼센트나 줄었고 그나마 대부분 수도권으로 집중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 전용 병원을 열었다가는 정말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녹지그룹 입장에서 보면 녹지국제병원은 물론이고 녹지국제헬스케어타운 사업을 계속해야 할지도 고민할 만한 상황이다. 실제로 이 부지 전체의 공사가 50퍼센트 남짓한 수준에서 멈춰 있다. 건설을 맡았던 국내 건설사들은 공사대금을 받지 못해 법원에 가압류 신청을 했고 법원이 이를 인정해 1200억 원이 넘는 가압류가 걸려 있다. 미중 무역갈등이 계속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녹지그룹 측은 제주도와 한국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받아 내고 사업을 접으려 할 수도 있다.

녹지그룹 측으로 보자면 투자 실패이지만 사실 이 문제로 더 안절부절하고 있는 것은 원희룡이다. 애당초 녹지그룹은 ‘헬스케어’를 내세워 관광사업이나 할 요량이었지만(애당초 병원 운영 경험도 없는 부동산 기업이다), 원희룡이 병원 개원을 강력히 요구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박근혜 정부도 의료 영리화의 한 축인 영리병원을 제주도에서 시작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직까지도 중국 자본을 가장한 국내 자본의 우회투자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2월 11일 ‘제주영리병원 철회 및 공공병원 전환촉구 결의대회’ ⓒ이미진

문재인과 의료 영리화

한편, 문재인 정부는 집권 직후부터 제기된 제주 영리병원 설립 승인 취소 요구에 침묵해 왔다. 사실상 원희룡의 영리병원 강행을 묵인해 온 것이다. 이는 단지 법적 권한 문제 때문이 아니다. 

한편에서는 외국 자본의 투자에 대한 정부 신인도 문제가 걸려 있을 것이다. 가뜩이나 경제 위기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국내외 자본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정부로 찍히고 싶지 않을 것이다.

다른 한편 문재인 정부가 최근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의료 영리화 정책을 보면 의료 ‘산업’ 투자를 위기 돌파구의 하나로 여기며 중시하고 있는 듯하다. 이 점에서 보면 영리병원은 의료 산업 투자를 촉진하는 중요 경로이기도 하다. 규제 샌드박스 등으로 심전도 시계, 유전체 검사 등의 사업을 허용해 주려 하는데 이런 사업은 영리병원과 결합될 때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들은 박근혜 정부의 ‘투자 활성화 대책’에 담겨 있던 의료 민영화 정책과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영리병원을 시작도 못 하게 했다가는 기껏 풀어 준 규제 완화 조처가 그 빛을 보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할 법하다. 실제 효과가 무엇이든 국내외 자본과 주류 언론들은 ‘하다만 규제 완화’라고 난리를 칠 게 뻔하다. 

이런 이해관계 때문에 제주 영리병원 개원은 한동안 지루한 법정 공방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제주도 측에서 개원 허가 취소를 하더라도 녹지그룹 측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 제기하듯 정부와 제주도가 녹지국제병원을 인수해서 공공병원으로 전환할 가능성도 지금은 매우 낮아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2013년 홍준표가 폐원한 진주의료원 재개원 요구도, 부산침례병원의 공공병원으로의 전환 요구도 못 본 체 하고 있다. 

따라서 의료민영화저지범국본 등 의료 영리화 반대 운동 진영은 원희룡은 물론이고 문재인 정부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음을 지적해야 한다. 동시에 문재인의 의료 영리화 정책에 맞선 투쟁을 제주 영리병원 저지 투쟁과 결합시켜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에 분노하는 수많은 노동자 청년들이 이 운동에 지지를 보내도록 해야 한다.

박근혜의 의료 영리화에 제동을 건 의료민영화저지범국본이 문재인 정부 하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은 이런 운동이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 준다. 제주 영리병원과 문재인 정부의 의료 영리화를 저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