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대우조선 매각(민영화) 방침을 발표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노동자들은 몇 차례 4시간 파업을 하고, 수천 명이 항의 집회를 하고, 지역 도심을 행진하며 민주당 지자체를 압박하고, 상경 투쟁을 하는 등 분노와 투지를 키워 왔다. 노조는 곧 있을 본계약 체결과 기업 실사를 앞두고 하루 파업과 집회를 이어 갈 계획이다.

물론, 예고된 3월 8일에 산업은행이 현대중공업과 본계약을 체결하더라도 매각이 완료되는 것은 아니다. 독과점 여부를 따지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 해외 경쟁국들의 기업결합심사 등 절차가 남아 있다. 특히 세계 1·2위 기업의 합병을 견제하는 경쟁국들의 심사가 매각 추진에 난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를 손 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다고 노조는 보고 있다. 투쟁을 확대해, 적어도 그 전인 공정거래위원회 심사 단계에서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대우조선을 민영화하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본다. 수주가 약간 늘어난 상황을 이용해 대우조선을 민간 대자본(현대중공업)에 팔아 치우는 것이 기업을 정상화하고 시장 경쟁력을 키우는 길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수주 경쟁을 완화하고 비용을 절감하면, 기업주들에게는 이득이 되겠지만 노동자들은 해고와 임금·조건 하락 등 끔찍한 고통을 겪을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 논리는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고 설파하지만, 시대를 불문하고 이런 주장은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은 어떤 대안을 내놓아야 하는가? 일자리를 지킬 효과적인 대안은 정부가 대우조선을 영구적으로 소유·운영하는 공기업화를 하는 것이다. 이는 현재의 대우조선처럼 매각을 위한 임시관리 체제와는 다르다.

대우조선은 이미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최대주주인 정부 소유의 공기업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법률적으로 온전한 공기업이 아니라, 매각을 위한 ‘일시 공기업화’ 상태다. 채권단과 기업의 수익을 위해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게 그 목적이다. 

20년간 정부가 소유·운영한 기업을 민영화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 방기이다 ⓒ조승진

정부에게 책임 묻기

따라서 ‘일시 공기업화’ 상태를 영구 공기업으로 전환해, 정부가 일자리를 보호해야 한다.

첫째, 정부는 그렇게 할 능력이 있다. 1997년 IMF 경제 공황 때도,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에도 역대 정부들은 기업의 파산을 막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대 왔다. 심지어 박근혜 정부도 부실 기업의 파산을 손 놓고 볼 수만은 없었다. 지금까지 대우조선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13조 원이 넘는다.

정부는 수십만 개 일자리를 지키는 데 이런 돈을 사용할 수 있다. 정부가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어떻게 정부를 압박해 대중의 필요를 강제할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다.

둘째, 정부는 그렇게 해야 할 의무도 있다.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대통령’을 자처하고 나섰던 것에서 보듯, 정부는 경제 위기 하에서 자국민의 고용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무려 20년간 사실상 정부가 소유·운영해 온 공공 자산을 민영화하는 것은 이런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셋째, 정부는 조선산업의 위기를 부르고 분식회계 등 비리를 방치한 책임도 있다. 대우조선이 막대한 적자를 부른 해양플랜트 사업에 뛰어든 것도, 분식회계 관리를 하지 못한 것도 정부 책임이다.

진보진영 내 일부는 ‘부실·비리 기업의 매각을 반대만 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 책임은 노동자들이 아니라 정부와 사측이 져야 한다. 더구나 현대중공업에서도 뇌물수수·납품비리 등의 문제가 거듭 불거졌던 것을 보면, 민영화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노동자들이 공기업화를 요구하며 투쟁하는 것은 부실·비리를 낳은 장본인에게 책임을 묻는 방법이다.

넷째, 물론 공기업화로는 충분하지 않다. 현재의 공기업들도 노동자들의 조건을 끊임없이 압박한다. 공기업들은 사기업과 마찬가지로 관료적·위계적으로 조직된다. 따라서 단지 국가 소유를 넘어 노동자 통제가 결합돼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공기업화 요구가 쓸모 없거나 덜 중요한 것은 아니다.

대우조선 매각을 막고 영구 공기업화를 쟁취한다면, 당면 일자리 위기에서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다. 그리 되면 경제 위기 구조조정으로 고통받는 더 많은 노동자들에게 대안이 있음을 보여 주고 싸울 자신감을 줄 것이다. 또, 시장의 이윤 논리에 타격을 가하며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투쟁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대안을 쟁취하려면 단호한 투쟁과 연대가 뒷받침돼야 한다. 정부와 지배자들은 대우조선이 영구적으로 공기업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므로, 대중 운동의 압력이 조직돼야 한다.

노동운동의 역사를 보면, 공장 점거는 매각-구조조정에 직면한 노동자들이 조건을 지킬 수 있는 효과적 전술이었다. 그런 투쟁에 광범한 연대가 더해지면, 일자리를 지키는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노동운동 내에서 제기되는 부적절한 대안들

· 고용을 지키는 “바람직한” 매각?

“대우조선 인수합병이 1+1이 2가 되는 구조를 만들겠다. 현대차-기아차가 합칠 때처럼 고용을 지키고 노조를 지킬 수 있다.”

정부의 ‘일방적·졸속적 매각 추진’을 반대하며, 금속노조 위원장이 한 말이다. 노사정 대화를 통해 고용 친화적 매각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이나 여영국 창원 성산구 후보의 “산업과 노동자 살리는 구조조정”도 이와 유사하다. 특히, 매각 절차가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민중당 김종훈 의원도 “일방적·졸속적” 매각에 반대한다고 한다. 이와 달리, 손석형 민중당 창원 성산구 후보는 매각 자체에 반대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경제 위기 하에서 기업 매각은 어떤 방식으로든 노동자 희생을 동반한다. 더구나 기업이 위기에 빠져 공적자금을 투입하거나 법정관리를 했다가 매각하는 경우, 사실상 공기업을 이윤에 눈먼 민간자본에 팔아 넘기는 민영화다. 돈 되는 장사, 최대한의 비용 절감이 매각 협상을 좌우하는 최우선 논리가 될 게 뻔하다. 노조가 매각 협상에 참여하더라도 양보 압박만 받기 십상일 것이다.

‘1999년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를 인수할 때는 다르지 않았나? 현대중공업이 삼호중공업을 인수한 2002년도 다르지 않았나?’ 하는 물음이 있다.

그러나 당시와 지금은 경제 상황, 해당 부문의 업황이 다르다. 1999년은 세계적으로 자동차 기업들이 너도나도 몸집을 키우며 생산량을 늘리던 호황기였고, 2002년은 중국 경제의 성장으로 전 세계 물동량이 크게 늘면서 한국 조선업이 한창 성장세를 구가하던 시기였다.

반면, 지금은 조선업 수주가 늘었지만, 아직 크게 회복하지 못했고 세계 경기 악화 속에 불확실성이 매우 큰 상황이다. 이런 경제 위기 때는 인수합병이 노동자들에 대한 대규모 인력 감축과 임금·조건 후퇴 등의 고통을 낳을 게 뻔하다. 따라서 고용을 지키는 “바람직한 매각”을 기대할 수 없다.

· “경남공공조선”으로 지역 조선업을 재건하자?

최근 민중당 손석형 후보는 “경남공공조선” 구축 방안을 내놓았다. 그가 모델로 삼은 방안은 조선소들이 밀집해 있는 경남 지역에서 조선업을 재건하기 위해, 정부·지자체·민간기업·노조 등이 함께 민·관합동(제3섹터)의 지주회사를 설립하자는 것이다. 그 지주회사의 통합 관리하에 대우조선, STX조선, 성동조선 등을 두자는 제안이다. 

프랑스 등 유럽의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모델은 돈벌이에 혈안인 민간 자본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경기 상황에 따라 노동자들의 고용·조건도 크게 위협을 받았다.

더구나 이 모델은 노동자 희생을 전제하고 있다. 지역 조선업의 경쟁력 “재건”을 위해 금속노조, 정규직 노조가 임금·조건을 양보하는 대신 정부·지자체의 지원을 끌어 내는 ‘대타협’을 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기에 책임이 없는 노동자들이 희생을 감내할 이유가 없다. 정부가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며 경제 위기 구조조정의 고통에서 노동자들을 구하는 데 돈을 쓰라고 요구해야 한다.

한편, 금속노조 지도부는 “노동 친화적” 산업정책을 통해 조선업을 육성하자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도 조선업 살리기를 주장하지만, 그 기조는 재벌에게만 특혜를 주고 나머지는 죽이는 “산업 생태계 파괴”를 낳을 것이라고 금속노조는 비판한다. 금속노조가 제시하는 산업정책은 중소 조선소들과 숙련 노동력을 육성하는 데 강조점이 있다.

물론 이런 주장은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고통을 전가하는 현재의 구조조정 정책을 비판하는 좋은 의도가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어떤 산업이나 기업의 발전 전망을 찾는 데 주력하다 보면, 시장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에 발목이 잡히기 쉽다. 산업·기업이 생존해야 일자리도 지킬 수 있다는 자본주의 논리를 수용한다는 약점이 있다. 결국 비용 삭감 논리에 취약해져 노동자들도 일자리와 임금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기가 쉽다.

특히 지금 같은 불황기에는 어떤 발전 전략이 성공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희생해야 하는 일은 더욱 빈번히 벌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