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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주·부자 재산은 털끝도 못 건드리면서:
‘5년 동안 정규직 임금 동결’하라는 홍영표
덴마크 모델은 친기업 쉬운 해고 모델일 뿐

3월 11일 민주당 원내대표 홍영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또 ‘정규직 책임론’을 꺼내들었다. 노동시장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 “고임금을 받는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 노조가 3년 내지 5년간 임금인상을 자제”하라는 것이다. 직무급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도 요구했다. 특히 이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강조했다.

홍영표는 ‘광주형 일자리’, ‘SK하이닉스의 상생협력 모델’, ‘카풀-택시 서비스 합의’, ‘덴마크식 유연안정성 모델’ 등을 거론하며 사회적 타협만이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출처 더불어민주당

정규직 책임론을 따지기에 앞서 홍영표가 연설 내내 양극화의 주범인 기업주·부자 들의 책임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할 듯하다. 그러기는커녕 규제 샌드박스 등 기업주들에게 특혜를 줘 경제 성장을 이끌겠다는 얘기만 줄줄이 늘어놓았다. 이쯤되면 홍영표의 노동운동 경력은 이명박의 ‘학생운동 경력’만큼이나 의미없는 것이라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게다가 불평등 완화는커녕 최저임금 등 쥐꼬리만 한 개혁도 회수해 간 집권여당의 원내대표가 이런 말을 하니 박근혜의 유체이탈 화법마저 떠오른다.

홍영표는 “대통령과 정부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노동시장 양극화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촉구했다. 하지만 지금 경사노위에서 ‘해결’하려는 게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게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탄력근로제, 노동조합 무력화 등에 더 취약한 것이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약속도 처우 개선 없는 무기계약직화, 자회사 등 누더기로 만들었다. 심지어 민간위탁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아예 손을 놓아 버렸다. 그래놓고 누구더러 양극화를 해소하라고 하는 걸까?

홍영표의 눈에는 ‘정규직 평균임금 400만 원’과 ‘비정규직 평균임금 151만 원’의 차이는 보여도 수십억 원에 이르는 대기업 임원들의 연봉은 안 보이는 듯하다. 기업주들은 이런 연봉의 열갑절이나 되는 배당소득도 얻는다. 배당소득의 원천은 기업주들이 보유한 수조 원대의 자산인데, 기업주들은 이를 이용해 그 수백배 규모인 기업 자산 전체를 지배한다. 이들이 독점하고 있는 부의 일부만 세금으로 거둬도 비정규직의 처우를 대폭 개선할 수 있다.

게다가 지난 20년 동안 국민총소득 중 기업소득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늘어난 반면, 가계소득 비율은 줄어든 것을 고려하면 양극화를 얘기하며 정규직 탓을 하는 게 얼마나 한심한 소리인지 알 수 있다. 기업주들에게 아첨하는 데에야 쓸모가 있겠지만 말이다.

기업주들의 자산과 소득이 급격히 늘어나는 동안 오히려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은 억제됐다. 200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2012년 한 해를 제외하면 “협약임금인상률은 명목경제성장률(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을 하회하는 수준이었다.”(민주노총) 정규직 노동자 임금이 억제되는 동안, 문재인 정부는 저임금 노동자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약속도 이행되지 않았다. 집권 이후 문재인 정부는 재정지출을 늘리기보다 균형재정 정책을 유지했다. 그 결과 매년 세수가 수조 원씩 남았다. 최저임금을 줬다 빼앗고, 노동시간을 늘려 일자리 늘리기에 역행하며,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외면한 장본인이 바로 문재인 정부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규직의 임금을 문제삼는 것은 결국 그 몫이 늘어나서가 아니라 덜 줄어들어서 문제라는 얘기일 뿐이다. 집권여당이 아니라 경총 대표의 연설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법하다.

누구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인가

저임금 저질 일자리를 확대하는 ‘광주형 일자리’는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아무 관계가 없다. ‘택시-카풀 합의’는 택시 노동자들이 아니라 사업주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합의로 이로부터 노동자들이 얻는 이익은 거의 없다. 완전월급제는커녕 불규칙한 노동과 소득의 불안정성이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SK하이닉스의 상생협력 모델은 노동자들이 임금인상분의 10퍼센트를 내고 사측도 그만큼의 재원을 들여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한 경우다. 이렇게 마련한 66억 원을 10개 하청기업 4700여 명에게 지급했는데 1인당 월 평균 10만 원 수준이다. 이 정도로는 “[정규직의] 50∼60퍼센트 수준”(SK하이닉스)인 협력업체 직원의 처우를 제대로 개선할 수 없다. SK하이닉스는 1차 하청기업만 50여 개에 이른다. 더군다나 이 하청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같은 공장, 같은 라인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였다.”(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달랑 10만 원 주고 끝낼 일이 아니라 당장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할 노동자들이라는 얘기다.

덴마크의 ‘유연안정성’ 모델을 얘기하는 것도 어이가 없다. 유연성을 확대하는 조처들(탄력근로제 확대 등)은 당장 국회에서 통과시키자면서, 그 반대급부로 제공하겠다는 사회안전망은 “2030년까지 완성할 수 있도록” 하잔다. 심지어 덴마크처럼 “인력 구조조정을 쉽게 허용” 하자고도 했다. 최근 경사노위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에서 합의한 ‘한국형 사회부조’도 구체적 계획이나 시행 시기, 예산이 정해지지 않은 선언 수준의 합의였을 뿐이다.

덴마크 모델은 노동자들의 삶의 안정성을 뒷받침해 주는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실업수당을 줄이고 그 수급을 까다롭게 만든 것이다. 이것이 해고를 쉽게 하면서도 고용률을 제고한 비법이다. 예컨대, 실업자들은 적어도 주당 4명의 사용자와 인터뷰(면접)해야 하고, 할당된 직업훈련을 받아야 하며, 취업설계사와 면담을 해야 하고, 거주지와 직종을 바꾸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제도대로 2년 동안 실업수당을 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 덴마크 모델은 “실업자들이 까다롭게 굴지 않으면서 가능한 한 빨리 [열악한 일자리라도] 재취업하도록 하려는 술수인 것으로 판명됐다.”(장피에르 세레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요컨대, 홍영표의 국회 연설은 정부여당이 경사노위를 통해 얻고자 한 것이 노동자들의 양보와 조건 후퇴일 뿐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그조차 여의치 않으니 국회 입법을 통해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실질적 파업을 조직하며 저항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