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김학의 ‘성접대’ 사건과 장자연 사건:
권력층 성범죄 의혹 또다시 묻히나?

김학의(박근혜 정부의 법무부차관) 성접대 사건과 장자연 사건에 대한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와 진상조사단의 활동 시한이 2개월 연장됐다.

애초 이달 말 종료될 뻔한 조사단 활동 시한이 연장된 배경에는 권력자들의 역겨운 성접대 행태와 이를 비호한 검·경 유착에 대한 큰 공분이 있었다. 장자연 사건 재수사 요청 국민청원에만 65만 명이 참가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허리띠 졸라 가며 아등바등 살아갈 때, 이 사회 권력자들은 호화 별장에서 여성을 노리개 삼아 잔치를 벌였고, 부정부패와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수사기관들의 묵인 속에서 처벌을 면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김학의는 2013년 당시, 강원도 원주의 한 별장에서 건설업자 윤중천로부터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지만, 무혐의 처분됐다. 검찰은 누가 봐도 김학의임을 알 수 있는 영상(현 경찰청장 민갑룡도 인정했다)이 증거로 제출됐는데도 덮고 넘어간 것이다.

2014년에는 동영상 속 피해자가 자신이라고 주장한 여성이 김학의를 특수강간 혐의로 고소했다. 피해 여성의 진술에 따르면, 피해자는 술과 약물에 취한 항거불능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고, 김학의는 이를 촬영해 해당 동영상을 빌미로 협박하고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했다.

그런데 당시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왜 굳이 그 사람을 따라갔느냐”며 오히려 피해자를 타박하는가 하면 피해자에게 당시 포즈를 취해 보라는 주문까지 하며 피해자를 모욕했다고 한다. 결국 김학의는 또다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최근에는 김학의만이 아니라 권력자들이 더 연루됐다는 의혹도 나왔다. 이른바 ‘윤중천 성접대 리스트’에는 정부 고위간부와 유력 정치인, 기업 대표, 유명 병원장, 대학교수 등이 더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당시 수사 지휘라인에 있던 전 고검장 윤갑근이 윤중천의 별장에 드나들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김학의의 상관이자 경기고 후배인 법무부 장관 황교안과 박근혜 청와대의 수사 방해 개입 의혹도 불거졌다.

‘장자연 문건’이 폭로됐을 때도 검찰은 장 씨 소속사의 대표와 매니저만 기소하고 조선일보사 사장 방상훈과 그 아들 방정오 등 의혹을 받은 고위층 인사들을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모두 무혐의 처분해 버렸다.

공분

분노가 커지자 문재인도 나서서 “성역 없는 수사”를 지시하고 나섰다. 드러난 범죄 사실에 대해서는 검찰이 수사에 착수할 것이라고도 했다.

박근혜 집권 시기 벌어진 일이 다시 파헤쳐지자, 뻔뻔스럽게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나경원은 이런 조처를 “야당 당대표와 본인들 입맛에 맞지 않는 언론사를 표적으로 하는 정치 보복”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런 작태는 조선일보사 사주 일가가 연루됐다는 의심을 키우고, 한국당 정치인들도 얼마나 썩어빠진 자들인지를 스스로 드러낼 뿐이다.

아마도 다시 이 사건들이 부각되고 새로운 증거가 나온 한 배경에는 최근의 지배계급 내 갈등 고조가 작용했을 것이다. 힘이 빠지는 문재인 정부와 지지율이 오르는 한국당이 서로의 비리를 폭로하고 있다. 수사지휘권 갈등을 벌이는 검찰과 경찰 간의 암투도 벌어진다. 검찰이 덮은 검찰 출신 김학의 사건과 경찰 비호 의혹을 받는 버닝썬이 앞다퉈 터진 것도 그 방증이다.

이 상황에서 진정한 쟁점은 문재인 정부가 이 권력형 범죄 건들을 철저하게 파헤쳐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의지가 얼마나 있느냐다. 정부에게는 구 여권 압박용으로 이 사건들을 이용하려는 게 더 큰 관심사로 보인다.

그래서 “사건의 실체와 제기되는 여러 의혹들을 낱낱이 규명”하라면서도 정작 과거사위원회와 진상조사단 활동 시한은 고작 2개월 연장됐다. 김학의 사건 관련자만 20명이 넘는데도 말이다.

조사단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김학의 사건과 장자연 사건의 담당 조사 인력은 각각 검사 2명과 수사관 1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사위원회가 진상조사단에 전 삼성전기 고문 임우재 관련 내용을 조사 결과에서 빼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조사 범위와 수위를 제약하려 든 것이다.

강제 수사권이 없는 조사단이 아니라 검찰이 직접 수사하는 게 더 강력하겠지만, 지금 누가 검찰을 믿을 수 있겠는가.

공소시효 문제도 쟁점이다. 장자연 사건의 경우 공소시효가 지나 사실관계는 밝혀도 처벌은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참에 권력 범죄에는 공소시효를 없애는 논의가 필요하다.

김학의·장자연 사건은 권력층의 추악한 부정부패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고위 관료층과 기업인들의 거래에 여성들이 대상으로 동원됐다. 그러나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이 연루돼 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이 사건들은 수사기관들에서 조직적으로 은폐·축소됐다. 이는 경찰과 검찰의 본질적 임무가 지배자들의 권력과 자산을 지키는 것인 데서 비롯한다.

그런 점에서 일각에서 이 사건들을 ‘남성 카르텔’을 보여 준 사건으로 규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 사건들은 이 사회의 소수의 권력층 남성들이 벌인 부패와 성범죄 의혹 사건으로, 노동계급 남성들은 이런 권력을 공유하고 있지도 않고 보통의 여성들과 맺는 사회적 관계도 다르다.

이번 사건을 둘러싼 모든 의혹의 진상이 낱낱이 밝혀지고 관련자들은 엄벌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