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진적 개혁만이 가능하고 바람직하다는 지도적 운동가(이하 개혁주의자)들은 노동자 대중의 의식이 급진적이 될 수 있음을 대체로 믿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종종 노동자 대중을 깔보는 듯한 태도로 대하거나 가르치려 드는 경향이 있다.

물론 얼핏 보면 노동자들의 의식은 동질적인 것처럼 보이고 별로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리고 보수적 관념을 가진 노동자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훨씬 더 많은 노동자들은 탄력근로 확대나 최저임금 개악 등 문재인이 추진하는 친기업적 정책들에 반대하고, 그들의 일부는 더 나아가 좌파적 대안을 지지한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의 의식이 동질적이고 정태적인 게 아니라, 개혁주의자들이 여론조사나 미디어 등을 통해 아는 노동자 상(像, 이미지)이 동질적이고 정태적인 것이다. 노동자들의 의식은 계속 변한다. 좌회전하기도 하고 우회전하기도 한다.

부분적으로 일부 문제를 놓고 변하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노동자들의 의식은 변한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 어느 노동조합 활동가의 사례를 들고자 한다. 그는 맑시즘 2018 첫날 개막 강연에서 우리 단체 연사들의 발제가 문재인 정부를 너무 세게 비판한다 싶어 마음이 불편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연말에 그의 노조 송년회에서 만난 그는 “솔직히 이제 문재인 정부에 크게 실망했다”고 토로했다.

때때로 이런 의식 변화는 전면적으로 일어난다. 가령 1987~1989년 노동자 투쟁의 급격한 고양기를 거치면서 수많은 노동자들의 의식 전반이 바뀌었다. 이제 수많은 노동자들이 더는 몇 년 전의 그가 아니었다.

그래도 1990년대 초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성애를 추잡하고 숨겨야 하는 ‘변태’로 여겼다. 그러나 요새는 노동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의식이 변해,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힌 사람들도 적지 않고, 동성 결혼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많다.

지난해 실시한 한국갤럽의 설문조사를 보면, “동성애자 커플에게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에 찬성하느냐”는 질문에 34퍼센트가 찬성, 58퍼센트가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2001년 조사에서는 같은 질문에 17퍼센트가 찬성했었고, 67퍼센트가 반대했었다. 찬성 의견은 갑절로 늘어났고, 반대는 67퍼센트에서 58퍼센트로 9퍼센트포인트 줄었다.

특히 20대 청년들의 의식 진보가 두드러진다. 20대의 3분의 2인 66퍼센트가 동성 결혼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세계 역사를 보면, 노동자들의 의식이 한국의 경우보다 훨씬 급격하게 변한 사례가 많다. 1914년 제1차세계대전 개전 당시에는 애국주의 열풍이 유럽을 휩쓸었다. 그러나 2년 남짓 지나자 애국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매우 적어졌고, 전쟁은 1917년 러시아 혁명 같은 거대한 저항을 불렀다.

이런 의식 변화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라는 점을 특별히 강조하고자 한다. 노동자들이 성차별적이고, 성소수자 차별적이고, 자본주의를 거부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인상이 여전히 상식이 돼 있기 때문에 강조하는 것이다. 특히, 식자층 속에서 이런 엘리트주의적 편견이 강하다.

이런 엘리트주의적 편견은 관념론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관념론이란 관념이 변하는 이유를 사람들의 물질적 생활조건에서 찾지 않고, 지식인들과 사상가들의 관심·생각·사고방식·마음의 변화에서 찾는 관점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의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람들의 물질적 생활조건이다

이런 견해를 두고 유물론이라고 하는데, 상식과 반대되므로 깊이 유념해야 한다. 특히, 지배계급은 자기네의 ‘탁월한 사상’과 ‘탁월한 리더십’이 역사의 방향을 결정했다고 믿고 있고, 우리도 그렇게 믿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장례식에서 낭독한 조사(弔辭)에서 엥겔스는 물질적 조건을 지식의 출발점으로 보는 유물론이 마르크스의 두드러진 업적이라고 지적했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우선 의식주를 마련한 후에야 비로소 정치·과학·예술·종교 등에 대해 고민할 수 있다는 단순 명쾌한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6월항쟁과 7~8월 대파업이 일어났던 1987년 이전에 한국 노동자들은 거의 전태일 평전에 묘사된 청계피복 노동자들만큼 열악한 조건 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들은 거의 20년 동안 치열하게 싸워 “의식주를 마련”했다. 그래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말한 “정치·과학·예술·종교 등에 대해 비로소 고민할 수 있는” 조건이 됐다.

그러나 곧 2008년 경제 공황과 뒤이은 장기 불황에 직면했다. 경제 상황이 이런 지 어느덧 10년 남짓 됐다. 그동안 노동자들은 “이명박근혜”로 불리는 9년에 걸친 강성 우파 정부의 공격을 받았었다. 그러나 마침내 2016년 말에는 민주노총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반격에 나서 박근혜를 쫓아내고 심지어 그와 이명박을 감옥에 가뒀다.

그 뒤 문재인에게 크고 작은 기대를 걸었다. 김대중과 노무현을 경험했고 이후 이명박근혜 하에서도 사기가 저하되지 않은 노동자들은 문재인에 대해 아마 “혹시나 했는데 역시로군” 했을 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을 겪어 보지 못한 비교적 젊은 노동자들은 문재인에게 큰 기대를 걸었지만 지금은 환상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이렇듯 의식은 물질적 조건들(경제 상황, 정부 경제정책 등)의 영향을 받는다.

1987~1989년 노동자 투쟁을 겪으며 수많은 노동자 의식이 급격히 변했다 ⓒ출처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그렇다면, 노동자 의식은 어떻게 진보할 수 있을까?

지배계급은 생산수단을 지배하고, 그래서 경제를 지배한다. 덕분에 지배계급은 사회적 의식에 비대칭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친다. 게다가 지배계급은 경제뿐 아니라 초·중·고 학교, 대학, 언론, 출판사, 교회 등도 지배한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언제나 지배계급의 사상이 지배적 사상이다. 물질적 생산수단을 지배하는 계급이 동시에 정신적·지적 생산수단도 지배한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말해, 정신적 생산수단이 없는 계급의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에 종속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의 대다수는 사회가 다르게 조직될 수도 있음을 알지 못한다. 우리의 대다수는 기존 시스템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특히, 경쟁도 당연시하는 나머지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고립돼 원자화된 느낌을 갖고 산다.(학생과 미조직 노동자는 특히 그럴 것이다.)

이 때문에 대중은 쉽사리 보수적 관념의 영향을 받는다. 지배계급은 자기네의 언론과 학교와 정당, 교회 등을 통해 보수적 관념을 더욱 부추긴다.

그래서 우리 일자리가 기업의 이윤과 수익성에 온전히 달려 있다고 우리가 믿는다면, 지배자들은 임금 삭감과 법인세 감면을 쉽사리 정당화할 수 있다.

난민과 이주노동자의 존재가 우리 일자리와 임금을 위협한다고 우리가 믿는다면, 지배자들은 이주노동자와 난민 천대를 더욱 쉽게 정당화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관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보수적 관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실제로는 보수적 관념을 통째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문재인 정부를 사실상 변호해 왔고, 조·중·동과 경제지들은 문재인을 오른쪽에서 비판해 왔다. 하지만 많은 노동자들은 이들 주류 언론들이 요구하는 편가르기에 고스란히 넘어가지는 않았다.

이처럼, 사람들의 관념은 단순히 사회 체제의 영향만을 받는 게 아니라 사회 내에서 그들이 처한 위치의 영향도 받는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세계관은 사용자들과 정부 관료들의 세계관과는 좀 다르다. 노동계급도 자신의 경험과 이해관계를 근거로 자신만의 사상과 세계관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 발전이 계급 내부적으로 불균등하지만 말이다.

노동자들의 의식이 사회 체제의 영향도 받지만 그들이 처한 조건의 영향도 받은 결과, 대다수 노동자들은 모순되고 혼재된 관념을 갖고 있다. 가령 경영자가 수십 배 연봉을 받는 것이 불법적 방법이나 비도덕적인 방법에 의하지만 않는다면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자들 머릿속에 서로 충돌하는 생각들이 공존하는 것이다. 이 상충하는 생각들 사이에 이뤄진 균형은 때때로 급격하게 변한다.

노동자들의 의식 변화는 노동자들이 경험을 통해 얻은 관념과, 지배계급이 언론과 교육 등을 통해 그들에게 주입한 관념이 서로 충돌할 때 일어날 수 있다.

다시금 제1차세계대전의 사례를 들면, 개전 초에 노동자들은 전쟁에 열광했다. 이는 주요국 지배계급이 전쟁 전 여러 해 동안 제국주의적·국수주의적 선전을 해댄 것의 영향이었다. 그러나 전쟁은 참혹했고, 그래서 전쟁을 영광스럽다고 찬양하는 지배계급의 선전은 금세 힘을 잃었다.

그러나 이렇게 노동자들이 고통을 겪을 때만 지배계급의 관념이 힘을 잃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이 능동적이고 집단적으로 저항할 때도 지배계급의 관념은 힘을 잃는다. 집회, 파업, 점거 농성 등으로 기업주와 정부에 맞서 싸우면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힘을 자각한다.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 가장 많이 변한다

자신의 힘을 깨달으면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고유한 견해를 확신하게 되고, 지배적 관념에 도전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에 마음을 연다.

가령 노동자의 연대라는 생각은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진부한 상식이었다. 그러나 2010년대에는 마치 공상처럼 치부됐다. 다행히 2016년 박근혜 퇴진 운동 전반부에 노동계급이 주도적 구실을 한 덕분에, 지금 문재인 정부의 배신에 직면해서도 노동자들은 사기 저하되지 않고 다시 저항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자 노동자의 연대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노동운동가들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의 의식 변화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사례는 바로 혁명기에 일어나는 급진화이다. 유대인들을 혐오하던 대다수 러시아 노동자들은 1905년 혁명이 무르익자 수도 페테르부르크 노동자 평의회 의장으로 유대인인 트로츠키를 선출했다. 1917년에는 아예 처음부터 유대인 혐오의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

여성을 구타하며 천대하던 자들도 여성들이 운동에 앞장서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1917년 2월 혁명은 아예 여성들이 이끌었다.

정교회 외에는 모조리 이단 취급하며 박해하던 종교 사상도 혁명기에는 그 힘을 잃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노동자 혁명이 없었지만 장차 일어나게 되면, 노동자들의 의식은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크게 바뀔 것이다.

맺음말

투쟁 속에서 정치적 견해를 내놓는 조직된 혁명가들도 노동자 의식 변화의 중요한 요인임을 강조해야 한다. 이는 혁명적 좌파가 극소수이고 그중 다수가 종파적인 우리 나라에서 특히 중요하므로 더욱 힘주어 말하고자 한다.

제1차세계대전 중에 일어난 의식 변화 과정에서도 전쟁을 처음부터 반대한 극소수 혁명적 좌파가 중요한 구실을 했다. 특히, 러시아에서 레닌과 볼셰비키가 그랬다.

그런 정치 세력이 매우 잘 조직돼 있어야 이런 효과가 크다.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는 전 세계에서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위기는 경제적 자유와 자유시장에 대한 지지를 약화시키고 있다.

이런 정서는 서민층에서 광범한데, 다른 선진국들에서는 조직 노동자 운동의 힘이 강력히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탓에 우익(심지어 파시즘) 정당들이 어부지리를 얻고 있다. 우리 나라는 조금 다르지만, 잘못하면 장차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의식이 변하기를 바란다면 혁명적 좌파는 노동자 투쟁의 규모를 키우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노동자 운동이 체제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정치적 운동으로 발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글은 존 몰리뉴의 Socialist Worker 2351호 기사 ‘How ideas change’에 크게 빚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