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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병원 비정규직 공동투쟁:
기층의 단결 염원이 상이한 노동조합들을 단결시키다

국립대병원 파견용역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율 0퍼센트’에 항의하는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4월 20일 보건의료노조·의료연대본부·민주일반연맹 소속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청와대 앞에서 공동 집회를 열 예정이다.

노동자들은 ‘상반기 내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다. 1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 수준의 노동조건에 불만도 크다. 휴게실·식당 이용, 병원 이용과 공상 처리 등에서 ‘외부인’ 취급하는 차별도 서럽다. 특히 문재인의 ‘희망고문’ 때문에 더 힘들었다.

문재인 정부는 정규직화 약속을 누더기로 만들어 왔다. 직접고용 비정규직(기간제)의 경우 일부가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으로 전환됐지만, 처우가 나아지지 않는 ‘이름만 정규직화’에 노동자들의 불만이 크다.

파견용역직의 경우 또 다른 용역업체에 불과한 ‘자회사’ 고용 방안을 내놓아 곳곳에서 이에 반대하는 투쟁이 벌어져 왔다. 지난해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은 병원장 서창석의 자회사 방안에 반대해 정규직·비정규직 공동 파업을 벌인 바 있다. 식당·장례식장 등 외주 위탁의 경우 아예 자체 경영진이 알아서 판단하도록 해 사실상 원청인 서울대병원이 손을 놓은 상태다.

서울대병원의 자회사 방침 공개 이후 다른 국립대병원장들도 이에 발 맞추고 있다. 이들이 자회사 방안을 강요하며 전환 시기를 차일피일 미루는 통에 노동자들은 6개월짜리 고용 계약을 거듭 갱신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정규직화는커녕 “언제 또 잘리지 않나 피가 마르는” 처지에 내몰린 것이다.

“자기가 정규직화 하겠다고 말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공약만 해 놓고 대통령 돼서 나 몰라라 하면 어떻게 해요. 정부가 공문 한 장만 내려보내면 되는 것을, 그걸 안 하고 있어요. 부산대병원은 적자 때문에 정규직화가 어렵다더니 8800만 원이나 들여 ‘자회사’로 할지 말지 컨설팅을 한대요. 그 돈 우리나 주지.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어요.”(보건의료노조 허경순 부산대병원 비정규직지부장)

현재 15개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은 여러 상급 노조들로 나뉘어 조직돼 있다. 부산대병원을 포함해 7개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은 보건의료노조로, 서울대병원을 포함해 6개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은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에 소속돼 있다. 전북대병원 비정규직 등 일부 노동자들은 공공연대노조와 민주일반연맹에 소속돼 있다. 강릉원주대학교 치과병원에는 아직 노동조합이 설립되지 않았고 분당서울대학교병원은 상급 노조가 없는 기업노조다.

정부와 병원장들은 이런 조건을 악용해 노동자들을 이간질해 왔다. 이를 통해 전체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려 한 것이다. 일부 국립대병원에서는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 이를 일부 막아내기도 했지만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인 노동자들도 있다.

그러다 보니 기층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상급 단체의 경계를 뛰어넘는 단결에 대한 바람이 적지 않다. 이번 파견용역직 정규직화 투쟁에서 노동조합들이 이례적으로 공동투쟁에 나서게 된 데에는 이런 기층의 바람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

교육부 앞 공동 기자회견 4월 2일 세종시 교육부 앞에서 공동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연 노동자들 ⓒ장호종

“지부장들끼리 모여 얘기하다보니 자연스레 그런 얘기가 나왔어요. 아무래도 같이 해야 하지 않겠냐고요. 어차피 한 식구잖아요. 서울대병원 투쟁이 우리한테도 중요하고 또 우리 투쟁이 서울[대병원 투쟁]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허경순 부산대병원 비정규직지부장)

“병원장들은 다 같이 모여서 대책을 논의하는데 우리 노동조합도 같이 해야 하지 않겠냐는 공감대가 형성됐어요. 그래서 우리가 의료연대본부 측에 공동투쟁을 제안한 거예요.”(보건의료노조 정재범 부산대병원지부장)

의료연대본부 측이 이런 제안을 흔쾌히 수용하고, 민주일반연맹도 동참하기로 하면서 ‘국립대병원 파견용역직 정규직 전환을 위한 공동 투쟁 연석회의’가 만들어졌다. 이 회의에서 노동조합 대표자들은 5월 병원 로비 농성, 파업 등 공동 투쟁 계획을 확정했다.

한 식구

이런 단결이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만은 아니다. 지난해 보건의료노조 집행부가 정부와 합의한 ‘공공병원 표준임금체계 가이드라인’을 두고 노동조합 안팎에서 크게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이 논쟁은 국립대병원 노동자들 사이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보건의료노조가 의료연대본부 등에 공동 투쟁을 제안한 것도 이런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매우 올바른 결정이다.

전체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싸우게 된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다만 정부를 상대로 한 투쟁이니만큼 더 큰 힘이 보태진다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국립대병원 정규직 노동자들이 탄력근로제 확대, 노동법 개악 등에 맞서 투쟁에 나서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도 지지한다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제주 영리병원 허가 취소 결정이 보여 주듯이 대중의 공공의료 지지가 높은 지금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의 투쟁은 대중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