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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카코리아노조 이성미 사무국장을 만나다:
“우리가 파는 화장품만도 못한 취급을 받아요”
‘고객용’ 화장실 사용금지 지침 폐기하라

백화점·면세점 화장품 판매 노동자들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어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서비스연맹 엘카코리아 노동조합 이성미 사무국장을 만났다. 10년 동안 백화점에서 근무한 이성미 사무국장의 증언은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화장실도 못 가고 [매장에서] 물도 먹을 수가 없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옛날 이야기가 아니고 지금 백화점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에요. 백화점 측은 우리가 [‘고객용’] 화장실 쓰고 매장에서 물 마시는 게 고객을 불편하게 한다고 말해요. 이런 말까지 해야 하는 게 모욕적이고 참담한데, 화장실을 못 가니 생리대 교체도 잘 못해요. 그래서 질염이나 피부질환도 많이 걸려요. 소변이 자주 마려운 임산부들은 참고 일해야 하니 더 힘들죠.”

서비스연맹 엘카코리아 노동조합 이성미 사무국장 ⓒ서비스연맹

지난해 10월,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보건과학과 김승섭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백화점·면세점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들의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 조사 결과〉에서 화장품 판매 노동자들의 열악한 실상이 생생하게 드러났다.

화장품 판매 노동자 중 60퍼센트는 화장실을 제때 가지 못했다. 노동자 20퍼센트가량이 방광염 치료를 받았는데, 또래 여성의 3.2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실태조사에서는 “방광염 약 부작용으로 입이 마르고 몸이 가려워도 화장실에 가고 싶어질까 봐 물을 마실 수도 없었”다는 증언도 쏟아졌다.

하지만 백화점과 화장품 회사 측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백화점은 ‘고객 불편’ 운운하며 노동자들을 짐짝 취급하고, 화장품 회사 측은 입점 업체로서 백화점 눈치를 보고 있다.

이성미 사무국장은 이렇게 성토했다.

“화장품 회사에서 우리를 파견할 때는 ‘너희가 곧 명품이다’ 하면서 교육을 시켜요. 그러나 화장실 같은 문제는 신경도 쓰지 않아요. 최근에 온라인 매출이 늘자 매장 인원을 많이 줄이고 있어요. 그래서 화장실 가는 게 더 힘들어졌어요. 매출 압박도 크고 고객 응대하는 것도 바쁘니 화장실을 편히 갈 수가 없죠.

“백화점에서는 ‘직원용’ 화장실을 쓰라고 하지만 지하에 있거나 매장과 멀리 떨어진 경우가 많아요. 고객 시설이라며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도 이용하지 못하게 막아요. 그리고 ‘직원용’ 화장실 칸수는 정말 너무 부족해서 점심시간에 양치하면서 줄 서다 화장실로 들어가야 해요.”

서울시내 한 유명 면세점의 직원 화장실 겸 휴게실 2칸짜리 화장실과 휴게 공간이 미닫이 유리문으로 연결돼 있다. 이 면세점에서 다른 직원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지하 5층까지 내려가야 한다. ⓒ서비스연맹

지난해 말, 롯데면세점 본점은 직원 평균 128명이, 신세계면세점 본점은 평균 91명이 화장실 한 칸을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 신라면세점 본점은 건물 내에 직원 화장실이 없어 별도 건물의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화장실 청소 노동자들의 고충을 언급하며 화장품 판매 노동자의 ‘고객용’ 화장실 이용에 반대한다. 그러나 이성미 사무국장은 함께 열악한 조건을 개선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고객용’ 화장실 사용하면 청소 노동자들이 힘들어지지 않냐고 해요. 그러나 백화점이 청소 노동자들을 더 많이 고용하면 됩니다. 일자리를 늘리면 되는 거죠. 청소 노동자들도 그[‘고객용’]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해요. 휴게 공간도 없어 매우 열악합니다. 노동자들이 함께 이런 조건을 개선하면 되는 겁니다.”

이성미 사무국장은 실질적인 정부 대책도 촉구했다.

[공중화장실 관련] 법에 의하면 백화점과 면세점 건물의 화장실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중 화장실에 해당돼요. 고객 아니어도 급하면 다들 이용하잖아요. 직원들은 이용할 수 없다는 법적 근거는 전혀 없어요. [백화점·면세점의] 화장실 사용 제한은 명백히 인권 침해이고 차별이에요. 그래서 정부가 나서야 하는 책임도 있는 겁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공문만 보내고 제대로 대책을 내놓고 있지 않아요.”

거의 모든 백화점·면세점이 고용노동부의 ‘화장실 사용금지 조처 해제’ 권고를 무시하고 ‘고객용’ 화장실 사용금지 지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강제 조처를 마련하지 않고 수수방관하고 있다.

병들지 않고 일할 권리

화장실 문제뿐 아니라 화장품 판매 노동자들의 건강을 갉아먹는 누적된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롯데·현대·신세계 등 국내 백화점의 매출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30조 원을 돌파하며 엄청난 이익을 챙겼지만 노동자들은 혹독한 착취로 고통받고 있다.

“명품 화장품 판다고 [우리를] 달리 보는 분들도 있지만 우리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우리 덕에 화장품 잘 팔리고, 백화점이 어마어마한 수익을 얻고 있지만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조금 넘는 월급 받고 힘들게 일해요.

“구두를 신고 9시간씩 계속 서서 일하다 보니 발이 엉망이 돼요. 무지외반증이나 족저근막염을 달고 살아요. 임산부들은 진짜 위험하죠. 쉬지도 못하고 서서 일하니깐 자궁이 처지고 태아가 흘러내려 유산될까 봐 질을 꿰매는 수술을 받기도 해요.”

화장품 판매 여성 노동자들은 일반 여성 노동자들에 비해 하지정맥류 진단 비율이 25.5배, 족저근막염은 15.8배 더 높다.

발가락이 휘어지고 물집 투성이가 된 노동자들의 발 ⓒ서비스연맹

그래서 화장품 판매 노동자들에게는 앉아서 쉬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지난 10년 동안 노동자들이 ‘앉을 권리’를 외치며 ‘의자 놓기’ 캠페인을 벌인 덕분에 2008년 고용노동부가 대형 유통매장에 의자를 비치하도록 규정을 마련했다. 그럼에도 이성미 사무국장은 많은 노동자들이 제대로 앉을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매장에 의자가 1~2개 들어와서 이전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턱없이 부족해요. [화장품] 회사에서는 매장 인테리어와 어울려야 한다며 불편한 의자를 주기도 하죠. 그런데 그조차 백화점 눈치 때문에 손님이 없어도 잘 앉지 못해요. 우리는 화장품 회사 소속이지만 백화점에 들어갈 때 면접을 봐요. 탈락하면 일을 못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백화점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어요.”

그러면 점심 시간이나 쉬는 시간에라도 제대로 쉴 수 있을까? 이성미 사무국장은 허탈해하며 이렇게 말했다.

“직원용 휴게시설이요? 매우 작고 지저분해서 쉴 수가 없어요. 너무 좁아서 누워서 벽에 다리를 올리고 있어야 해요. 그조차 아주 소수만 가능하죠. 대부분 창고나 복도,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쉬거나 박스 깔고 자기도 해요.”

창고나 복도에서 휴식을 취하는 노동자들 ⓒ서비스연맹

이성미 사무국장은 화장품 판매 노동자들의 건강권 쟁취를 위해 지속적인 투쟁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러 문제들이 많지만 일단 화장실 문제가 가장 시급해요. 이건 생리 현상이고 인간의 기본권 문제입니다. 국가인권위 진정서 제출을 시작으로 화장실 사용 권리를 사회 문제로 제기하고 우리의 현실을 바꿔 나갈 겁니다.”

화장품 판매 노동자들의 화장실 사용 보장 요구는 너무나 정당하다. 건강을 해치는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투쟁에 나선 화장품 판매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