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올해 들어 집배원 7명 사망:
정부의 약속 파기, 책임 전가가 낳은 예고된 참사

죽음의 현장인 우체국에서 집배원들이 연이어 사망하는 비극이 또 발생했다. 5월 12일과 13일 이틀 새에 3명의 집배원이 사망했는데, 이 중 2명은 자택에서 수면 중 심정지를 일으켰다(다른 1명은 백혈병 투병 끝에 숨을 거두었다). 심정지는 전형적인 집배원 과로사 유형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34세 공주우체국 상시집배원(무기계약직)인 이은장 씨는 곧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사망했다. 잠든 그의 옆에는 정규직 지원서가 놓여져 있었다고 한다.

이은장 씨와 평소 자주 연락을 주고 받았던 세종우체국 소속 한 집배원은 고인의 노동조건을 생생히 이야기해 줬다.

“사망 4~5일 전에도 통화를 했었어요. ‘요즘 저 힘들어요. 업무량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요’라고 하소연을 하더라고요. 사람이 없다는 구실로 자기 구역이 아닌 구역을 받아서 업무를 했어요. 비정규직이다보니 정규직이 되기까지는 관리자들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부당한 지시가 있어도 꾹 참고 [일을] 합니다.

“상시집배원들은 입사 후 1달 사이에 10킬로그램은 빠집니다. 점심시간을 제대로 지키면서 식사하기가 어려워요.”

“제가 은장이에게 ‘너희는 주 52시간 맞추냐?’고 했더니, ‘주 52시간은 지키죠. 서류나 전산 상으로요. 퇴근 시간 [미리] 찍어 놓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세종우체국으로 오기 전에 공주우체국에서도 근무했었어요. 공주우체국 집배원들은 실제 일한 시간과 전산 상 근무시간이 달라요. 관리자들이 ‘시간외근무는 없다’라고 지시를 내려요. 무료노동에 시달려요. 국가기관에서 불법을 자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은장 씨가 처했던 현실은 장시간·중노동에 시달리는 집배원들의 노동조건과 비정규직의 차별과 설움을 한 눈에 보여 줬다.

적자 운운은 거짓말

집배원들의 과로사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집배노조에 따르면, 지난 해에만 25명이 사망했는데 이는 2010년 이후 최대 수치다. 올해 들어 5월 14일 현재 7명이 사망했다.

그럼에도 우정사업본부는 지난해 우편사업 적자액이 최대를 기록했고 올해는 더 늘 것이라며, 수익성 회복을 위해 비용 절감과 인력 쥐어짜기에 나섰다.

우정사업본부가 내놓은 방안들을 살펴 보면 집배원들을 노동조건을 더한층 악화시킬 것들로 가득하다. 이는 최근 연이은 집배원 사망과도 무관하지 않다.

5년간 흑자가 2조 원이 넘는데도 노동자들은 과로사 ⓒ조승진

집배원 증원 약속 파기, 토요택배 폐지 약속 파기, 집배원 노동강도를 더 강화시킬 배달 이원화(통상우편물 배달과 택배 배달 구역 분리) 시행, (인력 증원 없는데도) 시간외근무 수당 절반 삭감과 연가 보상 일수 강제 축소, 집배원 상시출장여비(외근직인 집배원에 대한 일종의 보상 수당) 10퍼센트 감축, 초소형 택배 집배원 배달 확대, 수수료 절감을 위해 위탁택배원 하루 배달 물량 개수 제한 등등이다.

그리고 지난해 하반기부터 주 52시간제를 맞춘다며 관리자들은 집배원의 노동시간을 (전산 상) 일방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여기에 시간외수당을 주지 않으려고 출근시간을 오전 8시로 당겨 시행하는 곳도 늘고 있다.

그래서 집배원들은 무료노동을 최대한 줄이려고 노동강도를 스스로 더욱 높이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배달량이 워낙 많아 시간외 무료노동이 일상화되어 있다. 집배원들은 지난해보다 체감 상 택배량이 최소 20퍼센트 이상 증가했다고 말한다.

전국의 집배원들이 전해 준 최근 현실을 들어 보면, 끊이지 않는 집배원 사망은 우정사업본부의 예고된 참사임을 알 수 있다.

“계속 누적돼 왔던 것이 터지고 있지 않나 싶어요. 요즘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상황입니다. 우편물이 줄어 든다며 시간외근무를 줄이고 있어요. [그러나 실상은] 택배 물량이 늘어나고 있고 그에 따라 [택배] 반품 건수도 늘어나고 있어요. 다른 택배사들이 배달한 택배의 반품 접수도 우체국에서 하고 있습니다. 관리자들의 통제가 심한 것도 스트레스에요. 공공서비스를 강조하면서 적자 운운하며 집배원만 쪼고 일 시키고 돈은 안 주고 있어요. 공공서비스답게 적자를 끌어 안고 가야지, 집배원만 쥐어짜서 돈을 벌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강경민 고양일산우체국 집배원)

“제주도는 인구 유입 속도가 전국 최고인데, 유입 인구 대비 증원이 충분치가 않습니다. 일을 서두르다보니 쉬는 시간도 없이 일하게 되어 노동강도도 강화되고 심리적 부담감도 큽니다. 택배가 전년 대비 20~30퍼센트 가량 증가했어요. 특히 매해 9월부터 다음해 2월 설 연휴까지는 택배와의 전쟁입니다. 배달 체계를 이원화[월-금 일반우편물 배달조, 화-토 택배 배달조]로 바꾸게 되면 이동 거리가 늘어나 노동강도는 더 심해질 것입니다.”(김정일 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조 제주서귀포우체국지부장)

“적자 논리를 현장에 들이대며 일은 더 빡세게 시키면서 인원은 늘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몇 년 사이에 택배 물량이 40퍼센트 증가했고, 소형 택배량도 늘어났는데 말이죠. 그리고 우정사업본부가 얘기하는 주 5일제[배달 이원화]는 우리가 요구하는 주 5일제와 다릅니다. 우리도 남들 쉴 때 같이 쉬고 싶습니다. 이번에 공주에서 사망사고가 일어났지만 전국의 다른 우체국도 비슷한 사정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흘러가면 누가 어디서 어떻게 죽을 지 알 수 없습니다.”(조경훈 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조 인천계양우체국지부장)

ⓒ출처 공공운수노조

인력 증원과 처우 개선에 예산을 투입하라

집배원들이 연이어 죽어 나가고 다음은 누가 될 지 노심초사하고 있는데도, 우정사업본부는 재정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인력 증원은 없다고 냉정하게 못 박았다. 심지어 집배원들의 연이은 사망 소식이 밝혀진 다음 날, ‘2019년 7월 1일부터 토요근무 폐지’ 약속을 공식적으로 파기했다. 우정노조도 이에 발끈했다.

문재인 정부는 집배원들의 살인적인 노동조건을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기업주들을 지원하는 대책은 신속하고 과감하게 추진하지만, 집배원을 살리기 위한 비용에는 잔인할 정도로 인색하다.

정부와 우정사업본부는 우편사업이 적자라며 우는 소리를 하지만, 이는 진실이 아니다.

우편사업과 금융사업, 보험사업 등 전체 우정사업본부 경영수지 현황은 연속 흑자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 간 흑자액만 무려 2조 2000억 원이 넘는다. 이 돈이면 부족 인력을 충원하고도 남는다.

우정사업본부는 높은 인건비 비중과 우편물량 감소 때문에 적자가 난다지만,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우편사업에서 정부 일반회계로 749억 원이나 빼갔다! 우정사업본부의 모든 인건비와 각종 경상정비는 우편사업 지출분으로 짜놨다. 명목상 우편사업 인건비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편사업의 적자는 노동자들이 비효율적이어서가 결코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중 산업재해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에는 집배원 증원도 합의했다. 연이은 집배원 사망은 문재인 정부 책임이다. 정부와 우정사업본부는 즉각 예산을 투입하고 인력을 대폭 증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