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걸핏하면 단속을 하며 성소수자들을 괴롭혀 온 경찰에 맞서 성소수자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올해는 ‘스톤월 항쟁’이 일어난 지 50주년 되는 해다. 스톤월 항쟁은 국제 성소수자 운동의 기념비적 사건이다. 1969년 6월 28일, 뉴욕의 ‘스톤월 인’이라는 성소수자들의 술집을 경찰이 단속하자, 그동안 숨죽였던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드랙퀸(여장남자), 히스패닉, 흑인, 성 판매자들이 단속에 맞서 돌과 술병을 던지며 항의했다. 항의는 항쟁으로 확대됐고 성소수자들은 경찰에 맞서 거리에서 6일간 전투를 벌였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열리는 ‘성소수자 자긍심 행진’(한국의 퀴어퍼레이드)의 기원도 여기에 있다. 스톤월 항쟁 다음해에 성소수자들이 뉴욕,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등지에서 여전한 경찰의 해코지와 국가 기구의 억압에 맞서 자신들의 투쟁을 드러내고자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집회와 행진을 조직한 것이다.

스톤월 항쟁은 서구 성소수자 운동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성소수자 운동은 주류 사회에 인정받으려 주로 로비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스톤월 항쟁의 여파 속에서 이런 온건한 전통과 급진적으로 단절한 새로운 성소수자 운동이 등장했다. 그런 단체 중 하나인 동성애자해방전선(GLF)은 창립 선언문에서 자신들을 “우리는 기존 사회제도가 철폐되기 전에는 아무도 완전한 성 해방을 누릴 수 없다는 각성으로 뭉친 혁명적 집단”이라고 선언했다.

이 운동은 1968년 세계를 뒤흔든 반란과 미국에서 전투적으로 벌어진 흑인 공민권 운동과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의 분위기를 반영했다.

스톤월 항쟁의 주도적 활동가이던 트랜스젠더 실비아 리베라는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말했다.

“당시 우리는 모두 수많은 운동에 참여했어요. 다들 저마다 여성 운동, 평화 운동, 공민권 운동에 참가했죠. 우리는 모두 급진주의자였어요.”

동성애자해방전선은 모든 억압받는 사람들의 해방 없이는 성소수자 해방도 불가능하다고 보고, 미국 지배자들에 맞서 싸우는 다른 집단들을 지지했다. 동성애자해방전선의 첫 번째 행동 중 하나는 혁명적 흑인 해방 단체 흑표범당의 지도자 휴이 뉴턴의 석방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동성애자해방전선은 동성애 억압이 자본주의 자체에서 생겨난다고 봤고, 핵가족 제도와 전통적인 성 역할에 도전했다. 그래서 주류 사회의 관용이나 제한적 개혁이 아니라, 혁명적 변화를 원했고 모두를 위한 성 해방이라는 전망을 제시했다.

자긍심 행진의 시작 스톤월 항쟁의 여파로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자긍심을 뽐내며 거리를 행진하기 시작했다. ⓒ출처 NewYork Public Library

동성애자해방전선은 성소수자를 거부하는 시설에서 연좌 농성을 조직하고, 편견을 조장하는 정치인을 따라다니며 항의하고, 동성애 혐오 신문사의 사무실을 점거하거나 그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규정한 정신의학회 대회를 방해하고, 성소수자 술집 단속에 맞서 경찰과 전투적으로 싸웠다.

이 운동의 성취는 분명했다. 1970년대 말 미국의 절반이 넘는 주에서 반反동성애법이 폐지됐고, 수십 개 도시에서 차별금지법이 제정됐다. 1973년 미정신의학회는 한 세기 넘게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규정하던 것을 삭제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여론도 크게 바뀌었다.

비록 1960년대 반란의 물결이 쇠퇴하면서 이 운동도 약화했지만(당시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급진적이었지만 정치적 혼란도 많았던 약점이 한몫했다), 이 운동은 실질적인 개혁을 성취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보여 줬다. 차별받는 사람들과의 연대와 아래로부터의 전투적·급진적 투쟁 말이다.

오늘날에도 50년 전에 경찰과 맞서 싸운 사람들이 상상했던 “완전한 성 해방”은 아직 성취되지 못했다. 1990년대 이르러 성소수자 운동은 급진성을 잃고 기업과 사회 상류층과 연계를 확대하는 데 골몰하며 점차 협소화·보수화했다. 그 결과 극소수 중간계급 이상 성소수자들은 사회 주류, 심지어 서구에서는 지배층의 일부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대다수는 여전한 차별과 혐오에 시달린다.

트럼프와 서구 지배자들은 무슬림과 난민에 대한 편견을 부추기고 자신이 전 세계에 저지르는 범죄를 세탁하려고 성소수자 인권을 들먹이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서구 성소수자들(특히 트랜스젠더)은 여전히 차별을 겪고 있다.

성소수자 해방은 사회 전체의 변혁과 모두를 위한 해방과 동떨어질 수 없다는 스톤월 항쟁의 급진적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