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연대는 5월 16일부터 6월 13일까지 ‘21세기 레닌주의’ 연속 공개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자세히 보기). 레닌주의에 대한 오해가 세간에 상식처럼 퍼져 있는 가운데, ‘21세기 레닌주의’에서는 레닌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살펴보고 오늘날에도 적용 가능한지를 토론한다.

이 글은 그 세 번째 주제인 ‘혁명적 당은 21세기에도 유효한가’에서 발제자 이수현 씨의 발표와 정리 발언을 녹취한 것이다. 이수현은 《레닌 평전 2~4》(토니 클리프, 책갈피)의 역자이다.


1919년, 10월혁명 2주년을 맞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 모인 소비에트 대표들(가운데 레닌과 그 오른쪽에 트로츠키가 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아마 제1인터내셔널, 즉 국제노동자협회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지 않았어도 여전히 마르크스였을 것이다. 그러나 레닌은 볼셰비키당을 만들지 않았으면 레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만큼 레닌과 볼셰비키 당, 혁명적 당 이론과 실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레닌과 레닌주의가 여전히 유효하고 적절한지를 따져 보려면 혁명적 당 문제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레닌주의 정당에 관한 오해

그러려면 레닌주의 정당 이론의 핵심 원칙이 무엇인지 밝혀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널리 퍼진 두 가지 오해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한 가지 오해는 이런 거죠. ‘레닌주의 정당은 전능한 (척하는) 지도부가 지배하는 권위주의 조직이다.’

물론 스탈린 시대의 소련 공산당은 그랬습니다. 소련 공산당은 전능한 척하는 지도부가 지배하는 권위주의적 조직이었습니다. 서기장 스탈린의 말은 절대적이었고 서기장과 다른 견해를 표명하는 것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건 모험이었습니다.

스탈린이 재채기를 하면 모든 당원이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이것의 현대판은 휴전선 너머 김정은이 한마디 하면 다들 물개 박수를 치는 모습에서 볼 수 있죠.

어쨌든 그것은 스탈린주의 정당이었습니다. 레닌주의 정당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1936년에 트로츠키가 《배반당한 혁명》에서 지적했듯이 “비판의 자유와 사상 투쟁은 볼셰비키 당내 민주주의의 확고한 내용”이었습니다. 역사적 기록을 보면 볼셰비키 당내에서는 철학부터 전술까지 모든 문제에 대해 이견과 논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흔히들 독재자로 묘사하는 레닌도 당내 표결에서 여러 번 패했습니다.

예를 들어 1907년 두마(러시아 신분제 의회) 선거 참여 문제, 1910년 멘셰비키와 통합하는 문제에서 레닌은 패배했고, 1917년 9월에 민주협의회 참가 여부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레닌은 패배했습니다. 같은 해 11월 제헌의회 선거를 연기하자는 레닌의 주장은 묵살당했죠.

레닌이 격렬한 논쟁 끝에 비로소 다수를 획득한 사례도 많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가 1917년 4월에 제시한 ‘4월 테제’입니다. 당시 임시정부와 결별하고 노동자 권력으로 나아가자는 이 주장을 레닌은 아주 격렬한 논쟁 끝에 관철했습니다. 결정적인 10월 무장봉기를 앞두고 레닌은 빨리 무장봉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다른 볼셰비키 지도자들이 꾸물대는 걸 보고 열 받은 레닌이 중앙위원을 사퇴하겠다고 협박하는 일도 있었죠. 1918년 1월에 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조약을 체결하는 문제를 두고도 레닌은 처음에는 소수파였다가 나중에 비로소 그의 뜻을 관철했습니다.

이런 사례에서 레닌이 승리한 것은 단지 그의 개인적 권위나 설득력 있는 주장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견해가 사태의 객관적 논리에 부합하는 것으로 판명났기 때문입니다.

레닌이 죽기 얼마 전, 1921년 3월에 당내 분파를 금지해서 토론과 논쟁을 억압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지난 토론에서 이야기했듯이 내전 말기의 위기 상황에서 취한 일시적 조처라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또, 뒤집어서 보면 적어도 그때까지는 당내에서 분파를 허용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분파를 금지하는 것이 곧 논쟁을 금지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분파가 금지된 후에도 논쟁은 계속 허용됐습니다. 당내 민주주의가 진짜로 중단된 것은 스탈린이 득세한 1923년부터였는데 그조차도 1928년에 스탈린이 완전히 승리하기 전까지는 절대적이지 않았습니다.

레닌주의 당에 대한 둘째 오해는 레닌주의 정당 이론을 옹호하는 것은 곧 볼셰비키 당이 채택한 조직 모델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것이 오해인 이유는 그렇게 확고하고 공식화한 모델이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거니와 볼셰비키의 조직적 실천이나 관행을 오늘날 체계적·세부적으로 모방하거나 복제하는 것은 말 그대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볼셰비키는 당시 제정 러시아의 엄혹한 탄압 속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불법 상황에 맞는 이런저런 조직 형식을 취했습니다. 그런데 완전하진 않지만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발전한 한국이나 서유럽 같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활동하는 혁명가들이 레닌과 볼셰비키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굳이 가명을 쓰거나, 모임에 갈 때마다 경찰의 미행을 우려해 길을 빙빙 돌아가거나 하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오늘날에도 이집트와 같이 엄혹한 군부 독재 치하에서 활동하는 혁명가라면 볼셰비키의 이런 활동 방식들을 모방하거나 차용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한국에서 1970년대~1980년대 박정희·전두환 군사 독재 치하에서 활동하던 투사들처럼요.

어쨌든 오늘날 볼셰비키의 조직 형식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여기서 잠깐 레닌주의 조직의 독특한 원칙으로 흔히들 거론하는 민주적 중앙집중주의 개념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민주적 중앙집중주의란 민주주의 더하기 중앙집중주의입니다. 민주적으로 의사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을 실행하기 위해 행동을 통일하자는 것이죠.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철저하게 권위주의적인 파시스트 정당이나 스탈린주의 정당을 제외하면 개혁주의 정당이든 혁명적 정당이든 노동조합이든 거의 모든 노동자 조직은 민주주의와 중앙집중주의를 결합해야 합니다.

일단 민주주의가 없는 조직에는 아무도 가입하거나 돈을 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누가 ‘우리 단체는 민주주의를 배격합니다’고 하는 데에 들어가고 싶어 하겠습니까?

또, 중앙집중주의가 없다면 조직 자체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당이나 노동조합 같은 조직의 핵심은 여러 사람이 함께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하다못해 등산 동호회도 등산을 하려면 행동을 통일해야 합니다.

너무 간단히 논의하긴 했지만 민주적 중앙집중주의를 볼셰비즘이나 레닌주의 정당 이론의 본질적 특징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독자적인 혁명적 당 건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레닌주의 정당 이론의 핵심 원칙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은 저의 독창적 생각이 아니라, 토니 클리프의 《레닌 평전》에 나오는 내용을 요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레닌주의 정당 이론의 핵심 원칙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혁명적 당을 독립적으로 건설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 같은데 여기서 핵심은 ‘독립적’에 있습니다. 레닌이 건설하려 한 정당은 사회주의 혁명에 분명하게 헌신하는 정당이었습니다. 이런 당에서는 지도부와 당원이 모두 혁명을 자신의 목표로 확실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혁명은 ‘촛불 혁명’ 같은 은유적 혁명이 아니라 말 그대로 진정한 대중 봉기, 즉 부르주아 자본주의 국가를 파괴하고 새로운 노동자 국가로 대체하는 혁명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개혁주의자, 레닌 자신의 표현으로는 ‘기회주의적 사회민주주의자’를 당에서 배제하는 것이었습니다(1914년까지 ‘사회민주주의자’는 ‘마르크스주의자’와 같은 뜻이었습니다). 레닌은 사회주의자들 사이에도 혁명적 사회주의자가 있는가 하면 기회주의적 사회주의자도 있다고 지적하며 그런 사람들과 같은 당 안에서 활동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바로 이런 문제의식 때문에 그 유명한 1903년 볼셰비키와 멘셰비키의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이걸 둘러싸고 워낙 말들이 많기 때문에 잠깐 설명을 해야겠습니다.

러시아 말로 볼셰비키는 다수파, 멘셰비키는 소수파를 뜻하죠. 이 이름은, 엄밀히 말하면 당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기관지 〈이스크라〉(불꽃) 편집부 구성에 관한 논쟁에서 비롯했습니다. 표결에서 승리한 레닌파가 다수파, 즉 볼셰비키였고 반대편인 마르토프파가 소수파, 즉 멘셰비키였죠. 그러나 분열의 진정한 핵심 쟁점은 당원 자격을 규정한 ‘당 규약 1조’였습니다.

레닌과 볼셰비키는 당원이 당 기구에 몸소 참여할 것을 요구하는 ‘엄격한’ 규정을 주장한 반면에 마르토프와 멘셰비키는 더 느슨하고 ‘관대한’ 규정을 원했습니다. 마르토프의 규약 초안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당원은 당비를 내고 … 물질적으로 당을 지원하고 … 당 기구의 지도를 받아서 정기적·개인적으로 협조하는 사람으로 한다.” 레닌은 당원이 당 기구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지만, 멘셰비키는 꼭 직접 들어가진 않더라도 당 기구의 지도를 받아서 정기적·개인적으로 협조한다고 느슨하게 열어 둔 것입니다.

당시 당 조직이 불법인 상황에서 당원이 당 기구에 들어와야 하는지 아닌지는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당 기구에 들어가면 조직 사건이 났을 때 시베리아 유배를 갈 수도 있었겠지만, 당 기구에 들어가 있지 않다면 유배까진 안 당하거나 빠져나갈 구멍이 있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불법 상황에서 당원 규정을 두고 나타난 차이가, 나중에는 당이 어떤 조직이어야 하느냐는 개념적 문제로, 즉 노동계급의 확실한 선진적 부위만을 묶는 조직이냐 아니면 노동계급 전체를 포괄하고 표상하는 조직이냐는 차이로까지 발전합니다.

처음에는 이게 분명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레닌 자신도 1903년에 멘셰비키와 분열할 때 이 차이 때문에 조직적 분열을 감수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당시에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이 분열의 핵심은 서로 다른 정당 개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레닌은 경계가 엄격하고 철저하게 혁명적인 정당을 주장한 반면, 마르토프는 태도가 덜 분명한 사람들에게도 문이 열려 있는 더 ‘관대한’ 정당, 당시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노선에 더 가까운 정당을 주장했습니다.

레닌은 이렇게 혁명적 정당의 독립성 문제에서 비타협적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1905년 혁명이 패배하고 찾아온 반동기에도, 불법 활동을 청산하고 합법 활동으로 가자는 청산주의자들이나, 볼셰비키·멘셰비키 분파의 차이를 뛰어넘어 대통합하자는 화해주의자들(이 중에는 트로츠키도 있었습니다)과 격렬하게 싸웠습니다.

오늘날 당시의 논쟁을 보면 뭐 저렇게 희한한 딱지를 붙여 가면서 서로 싸웠나 싶을 수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그런 논쟁들에는 정치적 의미가 있었고 조직적 차이가 정치적 전략과 당 개념의 차이로 발전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쨌든 그런 논쟁과 투쟁의 실제 결과는 1914년 제1차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 레닌은 노동계급 속에 만만찮은 기반이 있는 비타협적인 혁명적 당을 건설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볼셰비키 당에는 개혁주의적 분파가 전혀 없었습니다.

반면에 제2인터내셔널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1917년 러시아 혁명과 1918년 제1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혁명적 물결이 유럽을 휩쓸자 다들 혁명파, 개혁파, 중간파로 쪼개지는 사태를 맞이합니다.

러시아 혁명 후에 레닌은 개혁주의로 전락한 사회민주주의라는 이름 대신에 공산주의를 채택했고, 1919년에는 혁명의 국제적 확산을 위해 제3인터내셔널, 즉 흔히 코민테른으로 줄여서 부르는 국제공산당을 창설했습니다.

그리고 코민테른은 바로 레닌주의 정당 이론의 첫째 원칙, 다시 말해 혁명가들의 독립적인 당 건설을 명확하게 표방했습니다. 코민테른은 노동계급 혁명, 자본주의 국가 파괴,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헌신하는 정당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죠. 그래서 이른바 ‘21개 조건’ 같은 것을 내세워서 개혁주의자들이나 중간주의자들이 공산당에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런 걸 정리해 보면 처음에 레닌은 개혁주의자들과 결별하고 그들을 배제하는 정책을 어느 정도는 본능적으로 실제로는 러시아에만 적용했는데, 1914년 8월 이후에는 완전히 의식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으로도 적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동계급 대중과의 관계

레닌주의 정당 이론의 둘째 핵심 원칙은 첫째 원칙을 변증법적으로 보완하는 것입니다. 즉, 혁명적 당은 노동계급 대중의 일상적 투쟁에 참가해서 그들과 최대한 가까운 관계를 확립하는 바탕 위에서만 건설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레닌은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시간, 임금, 노동조건 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모든 투쟁에 참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지난 토론에서 이야기했듯이 모든 차별에 문제를 제기하고 맞서 싸우는 ‘민중의 호민관’이 돼야 한다고도 주장했죠.

레닌은 대중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라면 경찰이 배후 조종하는 주바토프 노동조합 같은 곳과도 관계를 맺으려고 했습니다. 경찰 첩자였던 가퐁 신부가 노동자들의 지도자로서 떠올랐을 때는 그와도 관계를 맺으려 노력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가퐁 신부가 경찰 첩자임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1902년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는 직업 혁명가들의 당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레닌은 1905년 혁명이 한창일 때는 당의 문호를 개방해 노동자를 대거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레닌이 한 말을 그대로 고수한 선임 볼셰비크들과 충돌하기도 했죠.

1905년 혁명이 패배한 후에 찾아온 반동기에도 레닌은 어떻게든 대중과 관계를 유지하려고 매우 협소한 신분제 의회인 두마에 참여하자고 주장했다가 다른 볼셰비크들한테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운동이 되살아나자 볼셰비키는 1910년 학생 시위에, 2년 뒤에는 레나 금광 학살 사건에 항의하는 대중 파업에 관여했고, 합법 일간지인 〈프라우다〉를 발행해 대중적 기사들로 지면을 채우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노동계급 대중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대중 속에 뿌리내리려는 노력 덕분에 레닌과 볼셰비키는 1917년 혁명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바탕 위에서 창설한 코민테른에서도 레닌은 초좌파주의 경향에 맞서 투쟁했습니다.

초좌파주의는 1919년 혁명적 물결이 일고 운동이 엄청 고양되자 열정적이지만 경험 없는 많은 사람들이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에 새롭게 입문하면서 나타난 경향이었습니다. 이들은 기존 노동조합이나 사회민주주의 노동자 정당을 무시하고 그저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고 주장하는 아주 혈기왕성한 혁명가, 투사들이었습니다. 레닌은 이제 갓 운동에 입문한 이 혁명가들이 유치하게 혁명적 구호를 남발하면서 대중과 괴리되고 고립을 자초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보고 《좌파 공산주의 유치증》을 써서 초좌파주의 경향을 비판했습니다.

당시 초좌파주의자들의 주장은 노동조합과 부르주아 의회·선거 무용론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레닌의 비판은 핵심만 말하면, 노동조합이나 부르주아 의회·선거 따위가 우리 혁명가들에게 쓸모없다고 해서 계급에게, 대중에게도 쓸모없어졌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노동계급과 대중의 다수, 심지어 상당히 의식이 앞선 소수조차도 노조나 의회에 환상을 품고 반동적 노조 지도자나 개혁주의 정당을 추종한다면, 그런 노조 안에서 활동하거나 선거를 이용해 대중과 접촉하고 대중이 실제 경험을 통해 그 한계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 레닌의 주장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레닌주의 정당 이론의 두가지 원칙을 살펴봤는데, 중요한 점은 두 원칙을 결합하는 것입니다. 하나만 하는 것은 비교적 쉬울 수 있거든요.

거의 모든 소규모 조직이 전 세계를 위한 올바른 혁명적 강령을 가진 독립적인 혁명적 당을 자처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 레닌, 트로츠키 등의 저작에서 훌륭한 강령을 뽑아서 ‘우리는 이런 것들을 표방하는 혁명적 당이다’ 하고 주장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런 조직은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또, 노조에 가입하고 지역사회 운동에 참여해서 활동하더라도 그 안에서 정치적 문제나 혁명적 당 건설의 필요성을 제기하지 않는다면 계급과 가까운 관계를 확립하는 일도 비교적 쉬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독립적이면서도 대중과 유연한 관계를 맺기. 이런 것이 레닌주의 정당 이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들끼리 뭉치는 것은 쉽지만 밖에서 우리와 생각이 다른 대중을 만나 설득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제 레닌의 혁명적 당 이론이나 사상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필요하냐는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100년 전과 오늘날의 현실은 아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겠습니다. 그때는 러시아 혁명의 성공과 유럽을 휩쓴 혁명적 물결 덕분에 레닌의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레닌의 주장을 경청하고 지지했죠.

오늘날은 완전히 딴판입니다. 레닌주의 지지자들은 극소수죠. 또, 급진적 대중운동이 일어나도 거기에서는 레닌주의 정당뿐 아니라 모든 정당을 불신하고 적대하는 태도가 훨씬 더 두드러집니다.

정당에 대한 불신

예컨대, 2011년 이집트혁명이 한창일 때 타흐리르 광장에서도 정당과 정치 조직에 대한 불신과 거부가 있었고, 스페인의 인디그나도스(분노한 사람들) 운동에서도 대중이 점거한 광장에서 정당과 깃발은 금지됐습니다.

깃발 금지는 우리도 경험을 해 봤죠. 2008년 광우병 촛불 때 노동자연대 전신인 ‘다함께’가 종종 이런 공격의 표적이 됐습니다.

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오큐파이’(점거하라) 운동에서도 정당을 불신하는 정서와 태도가 유행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습니다. 동물을 비하하려는 건 아닌데 부르주아 정당들이 워낙 개판이어서, ‘정당’ 하면 진저리를 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흔히 좌파 정당으로 여겨지는 우파 사회민주주의 정당,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도 대중을 속이고 기대를 저버리는 짓을 많이 해서 사람들이 환멸을 느끼고 싫어합니다. 그래서 정치 전반을 불신하고 혐오하는 정서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정당 자체를 문제 삼는 주장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모든 정당은 비민주적이고 위계적이라고들 주장하는데, 가만 보면 노동조합, 병원, 학교, 사기업, 언론사, 경찰, 군대 등 이 사회의 거의 모든 기관이 비민주적이고 위계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방금 열거한 기관들 중에 노조를 제외하면 정당만큼 민주적이고 덜 위계적인 조직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기관들은 민주적 요소나 선출 과정 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이죠.

정당의 반민주적 특징을 인간 본성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면, 어떤 정당의 비민주성이나 위계적 특징은 그 정당이 생겨나고 활동하는 자본주의 사회 자체의 위계적·비민주적·계급적 성격에서 비롯한다고 봐야 합니다.

둘째, 정당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지나쳐서 모든 정당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되는 것이, 그래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이 모두 무소속 개인이 되는 것이 과연 노동계급과 서민에게 이로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는 부자, 즉 자본가가 엄청나게 득을 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재산과 연줄과 온갖 유리한 지위를 이용해 지금보다 훨씬 더 정치적 지배력을 강화할 것이기 때문이죠.

노동 대중은 노조든 정당이든 오직 집단적 조직을 통해서만 자본가들의 권력과 지배에 저항할 수 있습니다.

단지 선거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입니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일상적 시기의 지배적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기 때문이죠.

자본가들은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퍼뜨릴 조직적 수단이 아주 많습니다. 부르주아 정당과 정치인들뿐 아니라 수많은 대중 매체, 각종 연구소, 대학교를 비롯한 교육 기관 등도 있죠.

그래서 노동계급과 사회주의자들도 자신들의 세계관을 만들어 내고 발전시키고 널리 알릴 수 있는 독자적 조직이 필요합니다. 노동조합도 어느 정도 그런 구실을 하지만 그 ‘경제적’ 성격 때문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에서는 정당이 결정적 구실을 합니다. 왜냐하면 정당은 지식인과 노동자를 한데 모으고, 당원들의 지적 수준을 높이고, 그람시가 말한 ‘유기적 지식인’, 즉 노동계급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된 지식인을 만들어 낼 뿐 아니라 그 지식인들이 의무적으로 노동자들에게 배우도록 만들기 때문이죠.

그래서 정당이 중요하고 필요한 것입니다.

사실 모든 정당을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탈리아 파시즘이나 나치 독일, 우리가 한국에서 경험한 군부 독재의 엄혹한 탄압뿐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 대중에게 이롭기는커녕 오히려 노동 대중의 이익을 엄청나게 침해할 것입니다.

이 문제를 이렇게 돌려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모든 폭력에 원칙적으로 반대한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은 사실 기껏해야 반체제 운동이 비폭력 운동을 고수하도록 만드는 데나 성공할 뿐, 자본주의 국가를 설득해 군대나 경찰을 해체하고 폭력을 포기하게 만들 가망은 전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자본가 계급을 설득해서 그들의 정당, 즉 미국의 공화당·민주당, 한국의 자한당·민주당 따위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 또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정당 일반에 반대하는 주장은 오직 우리 편에만 악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특히 새롭게 급진화하거나 처음으로 중요한 투쟁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모든 정당에 반대하는 이런 정서, 즉 정당 불신이나 정당 혐오의 약점은 그런 사람들이 막상 부르주아 선거라는 구체적 현실에 직면하면, 개혁주의 정당이 약간의 급진적 미사여구를 쓰기만 해도 그런 정당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는 태도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페인의 인디그나도스 운동이 딱 그런 경우였습니다. 이 운동의 참가자들은 광장에서 정당과 깃발을 금지해야 한다며 모든 정당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포데모스라는 좌파 개혁주의 정당이 등장하자 인디그나도스 운동 참가자들이 이 정당의 지지 기반이 되고 열정적 선거운동원, 활동 당원들이 됐습니다.

10만여 명에 이르는 포데모스 당원은 대부분 인디그나도스 운동 참가자였습니다. 포데모스는 창당한 지 얼마 안 된 신생 정당이었는데도 선거에서 100만 표 넘게 얻었습니다. 압도적으로 인디그나도스 지지자들의 표였습니다.

미국의 점거하라 운동이 버니 샌더스 선거 운동으로 이어진 것도 정치 일반에 반대하다가 갑작스럽게 (좌파 개혁주의) 정당 지지로 돌변한 비슷한 사례입니다.

정당과 운동의 관계

여기서 두 가지 쟁점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정당과 운동의 관계 문제입니다. ‘운동에 올 때 정치는 집에 두고 오시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고 합니다. 사실 모든 정당을 적대하는 많은 사람들은 어떤 일관된 이론을 따라 목적의식적으로 정당 자체를 거부한다기보다는 이른바 ‘자율적’ 운동이나 ‘풀뿌리’ 운동 안에 정당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당은 의회나 선거 영역에만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둘째 쟁점은 오늘날 레닌주의 당의 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시리자나 포데모스, 또는 영국에서 코빈이 이끄는 노동당 같은 범좌파 정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흔히 “개혁이냐 혁명이냐”라는 낡은 이분법을 이제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먼저 첫째 쟁점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운동에서 정당을 배척하는 태도에는, 운동 안에 정당이 있으면 사람들이 싫어할 것이고 그래서 운동이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반영돼 있습니다. 또,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흔히 혁명적 당이 운동에 참가하는 것은 ‘불순한’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의심합니다. 당원을 모집한다거나 표를 얻으려고 한다거나 노동자연대처럼 신문을 판매하는 ‘영리 활동’을 한다거나 [좌중 폭소] 하는 꿍꿍이속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순한 의도를 가진 정당이 순수한 운동을 왜곡하거나 ‘납치’할 것이라고 의심합니다.

그러나 먼저 혁명적 당이 득표 활동을 하거나 당원 가입을 받는다거나 신문을 판다고 해서 사람들이 과연 싫어하기만 할까 반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 경험으로 보나 우리 자신의 경험을 보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죠.

얼마 전에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이 벌어졌을 때 노동자연대는 그 운동 안에서 정말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에는 참가하고 싶은데 노동자연대가 신문을 팔아서 가기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이것은 쓸데없는 기우이거나 그냥 특정 조직이 싫어서 둘러대는 핑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정당이 개입하거나 지도하면 운동이 원래 목적을 벗어나 그 정당의 이익이나 이데올로기에 희생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 가능성 자체는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점은 혁명적 정당이나 개혁주의 정당은 물론 세상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운동에는 모종의 지도부가 있기 마련인데, 혁명적 지도부이든 개혁주의적 지도부이든 또는 ‘비정치적’ 지도부이든 잘못된 지도를 할 가능성 자체가 원천적으로 없는 지도부는 없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혁명적 당 자체의 문제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혁명적 조직이나 당이 운동에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유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말했듯이 “공산주의자는 노동계급 전체와 동떨어진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진지한 사회주의자라면 운동과 자신의 이해관계를 분리하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운동이 승리하도록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실제로 진지한 혁명가들은 구체적 개혁을 쟁취하는 데에서도 개혁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잘 싸웁니다. 투쟁을 제대로 하죠.

둘째, 혁명적 조직이나 정당이 신입회원이나 당원을 얻으려면 실제로 가장 열심히 활동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가입을 하겠죠. 대충 얼렁뚱땅 활동하면 당원을 가입시키기 힘들겠죠. 그리고 열심히 활동해야 할 뿐 아니라 어떻게 싸워야 승리하는지도 잘 아는 최상의 활동가가 돼야 합니다.

셋째로 혁명적 당은 다른 나라나 지역, 과거의 역사적 투쟁 경험 등에 대한 지식으로 다른 활동가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트로츠키는 “당은 계급의 기억”이라는 유명한 말을 했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처음으로 이런 운동을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다른 나라나 역사적 경험을 보면 똑같은 상황은 아니어도 비슷한 맥락이나 구도 속에서 벌어진 비슷한 일들이 많습니다. 혁명적 당의 당원들은 역사와 국제적 경험에서 배울 수 있고, 그래서 다른 활동가들에게도 더 나은 방법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해 줄 수 있습니다. 당은 계급의 기억이기에 그렇습니다.

둘째 쟁점을 보겠습니다. 요즘은 범좌파 정당이 대세이고 유일한 현실적 대안이라는 주장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것은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낡은 이분법을 초월해 개혁주의자와 혁명가가 자본주의 체제 변혁 전략으로 모두 단결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제2인터내셔널의 특징이었던, 개혁주의자들과 혁명가들의 연합체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조직은 혁명가들을 의회주의적 사회 변혁에 헌신하게 해서 사실상 개혁주의적 전망에 종속시킵니다. 그리고 이런 개혁주의적 전망은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 때문에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다음 주제인 《국가와 혁명》의 쟁점들과 연결되는데, 오늘 발표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토론 정리

아래로부터 당 건설이라는 주장을 언뜻 들으면 그럴듯하고 바람직해 보입니다. 우리는 언필칭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주장하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당 건설도 아래로부터 하는 게 맞을 듯하지만, 문제는 앞서 말했듯이 일상적 시기의 지배적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동계급 대중 다수는 지배자들의 사상을 받아들이거나 기껏해야 개혁주의에 그칩니다.

집에 물이 샌다고 해서 처음부터 집을 때려 부수고 다시 짓자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시멘트 바르고 방수 조치를 해서 어떻게든 살아 보자고 생각하죠. 마찬가지로, 난생 처음 투쟁에 나서는 노동자들은 설령 자본주의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처음부터 이게 다 자본주의 탓이니까 자본주의를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싸우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대체로 체제 내에서 조건을 개선하는 것 정도를 목표로 하는데, 사실 그것조차도 싸워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투쟁 경험을 거쳐 또는 주위에 혁명가들이 있다면 그들과 토론과 논쟁을 거쳐, 어찌 보면 대단히 지난한 과정 끝에 혁명적 의식에 도달합니다.

물론 사회가 급격하게 변하고 투쟁이 폭발하는 시기에는 사람들의 생각이 순식간에 바뀝니다. 레닌이 말했듯이 그런 혁명적 시기에는 보통 때 10년 걸려서 바뀔 생각이 일주일 만에, 심지어 하루 만에 바뀌기도 합니다. 그렇게 대중의 의식이 한껏 고양될 때는 아래로부터 당을 건설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레닌은 1905년 혁명 때 당의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그러나 일상적 시기에는 결코 그런 식으로 혁명적 당을 건설할 수 없습니다.

레닌주의 정당이 전위당인 것은 노동계급의 선진 부위의 당이기 때문인데, 아무리 선진적 노동자나 혁명가라도 조직으로 묶여 있지 않으면 일상적 시기에는 주변 상황의 압력에 휘둘리기 쉽습니다. 투쟁이 맨날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맨날 승리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투쟁이 패배하면 혁명가들도 따라서 무너지거나 좌절할 수 있습니다. 혁명적 당은 이런 일을 막는 방패 구실도 합니다. 혁명가들은 자신이 싸우는 전투 현장에서는 패배했을지라도 다른 곳에서 다른 동지들이 싸우는 것을 보고 거기에서 승리의 가능성을 보면서 기운을 되찾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는 혁명적 조직을 통해서 ‘조직의 쓴 맛’이 아니라 좋은 맛을 느끼고 배울 수가 있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레닌의 차이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노동자들이 사회주의 의식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로자와 레닌의 생각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에는 다르게 주장하는 것처럼 들리는 말이 있습니다. “노동계급 자신의 노력으로는 노동조합 의식만을 발전시킬 수 있을 뿐이다” 같은 말들이 그렇죠. 그러나 레닌이 그 전에 쓴 글이나 1905년 혁명 때 쓴 글에서는 노동계급이 본능적으로 사회민주주의자라고, 노동계급은 얼마든지 사회주의자가 될 수 있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레닌의 기본 생각은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였는데,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는 ‘경제주의자들’과 논쟁하는 맥락에서 노동조합 투쟁의 한계와 정치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하다가 도를 지나친 표현을 했다(‘막대 구부리기’)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주의는 교육받은 유산계급의 산물”이라는 카우츠키의 주장을 인용해서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했지만, 실천에서는 그런 주장을 부정했고 나중에는 그것이 틀렸다고 명시적으로 말했죠.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주장한 것은 룩셈부르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사회주의 의식에 도달하는 과정의 불균등성 문제에서 레닌과 룩셈부르크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레닌은 혁명적 조직으로 그 불균등성을 극복할 수 있고, 불균등성을 극복하는 과정을 단축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당시 룩셈부르크가 활동하던 독일에는 세계 최대 사회주의 정당인 독일 사민당이 있었는데, 룩셈부르크는 사민당의 보수성이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자가 되는 것을 가로막는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대중 파업 같은 투쟁에 나서면 사회주의 정당 지도자들의 보수성이나 관료주의 따위는 금방 극복될 것이라고 룩셈부르크는 주장했습니다. 노동자들이 일단 싸우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사회민주당과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제치고 혁명의 한 길로 달려나갈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반면에 레닌은 그 과정이 예정돼 있지 않으며 혁명적 조직으로 그 과정을 매개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이것이 레닌과 룩셈부르크의 차이입니다.

볼셰비키와 멘셰비키의 당원 자격 논쟁에서 시작된 조직적 차이가 정치적 차이로 발전하는 과정에 대해서 애초부터 정치적 차이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는 1903년 당대회를 성사하는 데에서 주도적 구실을 한 〈이스크라〉파가 분열한 것인데, 그 전까지 이들 사이에 기본적으로 정치적 차이는 없었습니다. 논쟁이 벌어지고 분열하기 전까지 그들은 레닌이 1899년에 쓴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항의”나 1902년에 펴낸 《무엇을 할 것인가》의 주장에 동의했습니다. 토니 클리프가 말했듯이 이론적으로는 다들 동의한 문제를 실천에서 조직적으로 구현하려 할 때 조직관의 차이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바로 그런 조직관의 차이 때문에 슬슬 개혁주의에 문을 열어 주고 그것이 혁명 전략의 차이, 그리고 정치적 원칙의 차이로까지 발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시간 제약 때문에 못 다한 이야기를 마저 해 보겠습니다.

러시아 혁명 후 10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중요한 경제적·정치적·사회적 변화가 있었지만 혁명적 당의 필요성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혁명적 당을 필요하게 만든 계급투쟁의 근본적 특징들, 즉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헤게모니, 노동계급 대중의 정치 의식과 자신감의 불균등성, 자본주의 국가의 중앙집권적 권력, 개혁주의의 배신적이고 해악적인 구실 따위가 여전히 존재하고 앞으로도 계속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혁명가가 된다는 것은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트로츠키는 말했습니다. 저는 오늘날처럼 그 말이 가슴에 와 닿는 때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류는 여전히 착취, 폭력, 억압, 차별, 소외에 시달릴 뿐 아니라 이제는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가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은 많은 혁명가가 필요한 때입니다. 레닌은 아르키메데스의 말을 비틀어서 “우리에게 혁명가 조직을 달라. 그러면 러시아를 뒤엎어 보이겠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죠. 오늘날 우리는 ‘우리에게 혁명가 조직을 달라. 그러면 자본주의를 뒤엎고 인류의 미래를 새롭게 개척할 것이다’라는 말을 모토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ILO핵심협약비준 촉구 공동행동의 날’ 집회에서 노동자연대 회원들이 신문을 판매하고 있다 ⓒ이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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