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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항쟁:
군부 통치 종식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전국을 휩쓸다

수단 민중은 군부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다시 한 번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6월 30일 군부 통치의 종식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수단을 휩쓸었다.

시위대는 거듭되는 경찰 폭력과 공중으로 울려퍼지는 총성에도 겁먹지 않고 오후 6시 30분에 대통령궁에 이르렀다.

한 반정부 단체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다. “지구상의 어느 누구도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평화, 정의를 요구하는 수단 민중을 막을 수 없습니다.

“총알, 최루탄, 폭력, 그 무엇도 민중의 의지와 각오를 깨트릴 수 없습니다.”

의사들의 노동조합인 의사중앙위원회에 의하면 수도 하르툼의 이웃 도시 옴두르만에서 4명이 사망했으며, 아트바라 시에서는 시위대 1명이 가슴에 총을 맞고 사망했다고 한다. 수단 동부에 있는 카살라 시에서도 치안 유지군이 시위대에게 발포했다.

[전국적으로] 약 200명이 부상을 입었고 일부는 매우 위중하다.

수단의 항쟁 세력은 군부의 통치 기구인 과도군사위원회(TMC)에 대한 압력을 키우기 위해 이날 “100만 대행진”을 호소했다.

경찰은 하르툼의 시위대를 해산하려고 최루탄을 쐈다.

(北)하르툼 바흐리 지구에서는 시위대 수만 명이 “민정 이양” 구호를 부르짖었고 경찰이 시위대를 공격했다. 하르툼 동부의 마무라와 아르크위트 지구에서도 경찰이 시위대를 탄압했다.

‘V’자를 한 손을 치켜들고 수단 국기를 펄럭이는 시위대는 하르툼의 알사하파 지구 일대를 가득 메웠다.

시위 참가자 제이나브는 이렇게 말했다. “6월 3일의 광장 점거 순교자들을 위해 거리로 나왔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보장하는 민간 정부를 원합니다. 군부 독재를 끝내고 싶습니다.”

또 다른 시위자는 이렇게 말했다. “다음 번에는 제가 순교자가 될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군사위원회에게 통치권을 위임한 적이 없습니다. 모든 민중이 군사위원회에 반대합니다.”

“피에는 피”

하르툼의 자브라 지구에서는 시위대가 “피에는 피”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했다고 한다. 하르툼의 다른 지구에서도 집회가 열렸다고 한다.

AFP 특파원은 치안 유지군이 공항으로 가는 길에서 시위 인파를 막아 섰다고 보도했다.

옴두르만과 수단 동부의 가다레프 시에서는 치안 유지군이 시위대에게 최루탄을 쐈다고 한다.

(北)코르도판 주의 주도 엘오베이드, 동다르푸르 주의 주도 에드 대인, 알카다리프 주의 주도 알카다리프에서도 대규모 행진이 벌어졌다.

수단에서는 일요일이 첫 근무일이어서 6월 30일 시위에 동참하기 위해 일부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다.

파업이 퍼져서 총파업으로 발전한다면 군부를 무너뜨릴 수 있다.

과도군사위원회는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한다. 군부는 살인마 집단인 신속지원군의 폭력과 지역 강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아랍에미리트의 지원으로 연명한다.

이 나라들은 영국을 비롯한 서구 강대국에게서 물자와 무기를 공급받아서 수단의 살인 정권에게 넘겨 준다.

6월 30일 영국 외무장관 제러미 헌트가 시위를 지지하는 트윗을 올린 것은 매우 역겨운 위선이다. 영국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에게 무기를 쥐어 줘서 예멘 내전에 개입하는 데 도움을 줬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이 무기를 수단 정부에게 넘겼다.

또한 영국은 유럽연합과 함께 “불법 이주와의 전쟁”을 위해, 돈을 대서 수단 정권을 지원했다.

수단 민중은 굳은 용기와 각오로 군부 독재를 끝낼 수 있다. 그러려면 자신의 힘을 온전히 발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외부 세력의 중재나 군부와의 협상에서 손을 떼고, 파업과 대중 동원을 기반으로 힘을 길러야 한다.

수단 항쟁이 걸어 온 길

2018년 12월 19일 ─ 항쟁이 분출하다

팔라펠[중동식 샌드위치]과 기타 생필품의 가격이 3배로 뛰자 이에 항의하는 시위들이 벌어졌다. 이 저항은 쿠데타로 집권해서 30년간 수단을 통치한 오마르 알바시르 정권에 맞선 정치적 항쟁으로 빠르게 발전했다.

수단 철도망의 심장부이자 노동자 저항의 오랜 전통이 있는 도시 아트바라에서는 분노한 시위대가 바시르의 정당인 국민의회당의 지역 사무소들에 불을 질렀다.

저녁에는 아트바라의 저항에 고무되어 수단 북부의 다른 도시들에서도 시위가 일어났다. 다음 날에는 더 많은 지역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2018년 12월 25일 ─ 항쟁이 성장하다

시위는 수단 전역으로 퍼졌다.

성장하는 항쟁의 중심에는 수단직능인협회(SPA)가 있었다. 교사, 의사, 기술자, 약사 등이 중심인 수단직능인협회는 노동자들에게 직장에서 행동을 벌이도록 촉구하고 행진을 조율하는 데에 일조했다.

12월 25일 수단직능인협회는 바시르 퇴진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전달하려고 수천 명을 모아 수도 하르툼에 있는 대통령궁으로 행진했다.

치안 유지군은 시위대가 대통령궁에 다다르기도 전에 최루탄과 고무탄, 실탄 사격을 퍼부어 그들을 해산했다.

2019년 1~3월 ─ 탄압에 맞서 반격하다

항쟁을 분쇄하기 위해 바시르는 탄압과 양보를 결합했다. 바시르는 팔라펠 보조금 삭감 계획을 철회했다.

그러나 운동[의 요구]는 이미 이 특정 쟁점을 한참 넘어섰다.

수단직능인협회는 반정부 단체들에게 반정부 연대체를 건설하자고 촉구했고, 기본적·민주적 요구들을 담은 ‘자유와 변화의 선언’에 서명했다. 이 선언은 항쟁이 앞으로 추구할 공통의 요구를 담았다.

‘자유와 변화를 위한 연합’은 반정부 세력을 포괄하는 우산 조직 구실을 했다.

이 연대체는 바시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 훨씬 이상을 요구했지만, 수단 사회의 완전한 개편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정부는 운동을 분열시키려고 다르푸르 출신 학생들을 시위의 배후로 지목하여 기소했다. 바시르는 다르푸르 지역에서 30만 명을 학살한 바 있다.

다른 지역의 시위대는 “우리 모두가 다르푸르다”라는 구호로 화답했다.

지금까지 하르툼에서 매일 시위가 벌어졌고, 종종 여성들이 지도력을 발휘했다. 학생들도 선두로 나섰다.

지방에서도 행동을 조직하기 위해 “저항 위원회”가 꾸려졌다.

시위가 벌어진 첫 달에만 적어도 40명이 국가 폭력으로 사망했다.

2월 바시르는 내각을 개편하고 지방 장관들을 군 장성들로 교체했으며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4월 6일 ─ 점거 시작

수단직능인협회는 하르툼의 국방부 청사 앞으로 행진할 것을 호소했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시위들이 하나로 모여 대규모 대중 저항을 선보였다. 북아프리카 알제리에서 독재자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가 쫓겨난 것도 항쟁을 고무했다.

하르툼에서 행진을 마친 시위대는 흩어지지 않고 국방부 주변을 점거하여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시위 참가자들은 치안 유지군의 공격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식량 공급과 물 공급, 치안을 조직했으며 문화 행사를 열고 끊임 없이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런 사례가 다른 몇몇 도시로 번져 나갔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단지 개인이 아니라 직장에서 조직된 단체로서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4월 11일 ─ 바시르가 퇴진하지만 군부가 권좌에 남다

시위 규모에 겁먹은 군부 지도자들은 바시르 퇴진을 발표했다. 몇 시간 동안 전국에서 시위대가 이 소식에 환호했다.

그러나 군부는 민간으로 권력을 이양하는 “과도기” 동안 통치권을 넘겨받겠다고 밝혔다. 수장 바시르가 퇴진했는데도 옛 정권의 구조를 유지하려 했다. 즉 바시르 없는 바시르 체제를 추구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즉시 거리로 돌아와 군부 퇴진을 요구했고, 다음 날 군사위원회를 이끌던 아와드 이븐 아우프가 쫓겨났다.

광장 점거는 지속됐다.

군사위원회는 항쟁 지도부와 협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민간과 군의 권력 균형을 둘러싸고 그들은 결코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5월 28~29일 ─ 총파업

거리 시위와 함께 파업이 늘고 있었다. 이제 항쟁 지도부는 총파업을 선포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전국에서 공공부문과 민간 기업 노동자가 참가한 총파업은 큰 성공을 거뒀다.

몇몇 지역에서는 행동을 조율하기 위해 파업 위원회가 설치됐다. 이런 위원회가 권력에 도전하는 기반이 될 수 있을지에 관해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자유와 변화를 위한 연합’ 내 온건파는 군부와의 협상을 주장했다.

위기가 임박했음이 명백했다. 불길하게도 군부 지도자들은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반동적인 주변 국가를 순방했다. 이 나라들은 모두 군부를 지지했다.

6월 3일 ─ 학살

군부가 지휘하는 악명 높은 무장 조직 신속지원군이 군사위원회의 병력을 이끌고 하르툼 광장 점거를 침탈하여 최소 110명을 죽였다. 희생자들의 시신을 나일강에 던졌고, 여성들을 강간했으며, 텐트를 불태웠다.

신속지원군은 하르툼 전역을 빠르게 누비면서 바리케이드를 파괴했다.

즉각 [광장 침탈에 항의하는] 시위들과 총파업이 벌어졌다. 이런 움직임은 큰 성공을 거뒀지만 항쟁 지도부는 3일 만에 이를 취소했다.

흉폭한 탄압 때문에 시위 규모가 줄었다.

6월 30일 ─ 백만 행진을 호소하다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해 자유와 변화를 위한 연합은 수단 전역에서 대중적 행진을 호소했다. 사람들은 엄청난 규모로 이에 응했다.

출처 영국의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 2661호

필자 찰리 킴버는 서울에서 열리는 마르크스주의 포럼 ‘맑시즘2019’에서 ‘오늘날 개혁주의와 혁명’, ‘트럼프, 버니 샌더스 그리고 민주사회주의당’ 등을 주제로 발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