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개정을 주도하던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직에서 별안간 해고됐다.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이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의 해고에 합의하다 ⓒ출처 이인영 페이스북

여야 3당 교섭단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위원장 자리를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자한당)이 나눠 갖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현 사개특위 위원장이 민주당 의원(이상민)이므로, 어느 쪽 특위 위원장이 바뀌든 심상정 의원은 정개특위 위원장직을 빼앗기게 된다.

심 의원은 지난해 7월 정개특위 구성과 함께 위원장에 내정됐고, 10월 공식 선출됐다. 진보(중도좌파) 정당이 2004년 원내 진출한 뒤 확보한 국회 첫 위원장이었다.

민주당은 심상정 의원에게 사전 통보는커녕 언질을 주거나 교감조차 하지 않았다. 심 의원은 자신의 처지가 문자 해고 통보를 받는 비정규직 신세 같다고 반발했다.

민주당이 자한당과 공조하며 정의당의 뒤통수를 때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민주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요구하는 정의당 등을 제치고 자한당과 손잡고 새해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그동안 자한당은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 교체를 집요하게 요구했다. 그래야 선거법 개정을 저지할 수 있다고 봐서였다. 민주당은 결국 심 의원을 자한당에 제물로 바친 것이다. 자한당은 득의만면하며 국회로 회군했다. 심상정 의원은 “민주당이 나경원을 살리고 심상정을 버린 게 양당 체제의 본질”이라고 반발했다.

이를 통해 민주당은 실수 연발로 난감해진 자한당을 살려 줬다.

개혁 후퇴와 배신으로 문재인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기고만장해진 황교안은 오버하다 실수를 일삼았다. ‘아들 저(低)스펙 취업’ 발언, ‘외국인 노동자 임금 차별화’ 발언 논란을 계기로 기자들과 질문-답변 회피하기, 여성 당원들의 ‘속옷 엉덩이 춤’ 비판을 좌파가 언론을 장악한 탓이라고 돌리기 등등.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조·중·동 등 우파 언론들마저 내년 총선을 걱정하며 황교안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즈음 정의당은 자한당의 ‘백기투항’을 예상하며 자한당을 뺀 여야 4당의 임시국회 소집과 선거법 개정안 의결 강행을 주장했다.

바로 이때 민주당이 정의당의 뒤통수를 세게 치고, 자한당을 껴안았다. 민주당이 자한당과 사사건건 옥신각신하는 듯해도, 노동자 정당보다 같은 자본가 정당에 훨씬 더 근친성을 느낀다. 그래서 민주당은 부르주아 양당 체제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노동 관련 개혁입법이 문제 될 때 민주당이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서 짐짓 균형을 맞추는 듯하다가 결정적 순간에 사용자 편을 들곤 하듯이, 이번에도 비열한 작태를 되풀이하고 있다.

개혁 대상인 자한당에게 ‘개혁특위’ 위원장 자리를 주는 민주당은 결코 개혁의 주체도, 개혁 동맹도 아니다. 본질적으로 민주당도 개혁 대상이다.

선거법 개정의 운명은?

심상정 의원이 정개특위 위원장 자리에서 해고되면서 선거법 개정 전망은 어두워졌다.

자한당은 이제 선거법 통과가 물 건너갔다고 좋아하는 분위기다. 정개특위와 사개특위가 연동돼 있는 상황에서 두 위원장 자리 중 하나를 자한당이 차지하게 됐기 때문이다. 자한당은 남은 2개월 동안(정개특위 활동 시한) 법안 처리를 최대한 방해할 작정이다. 자한당의 원래 목표도 선거제 개편 무산이었다.

민주당도 선거제 개편에 적극적이지 않다. 정의당 지도부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된 마당에, 민주당이 정개특위장을 맡는 게 차선책(또는 차악책)이라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은 정개·사개특위 중 어느 자리를 맡을지 저울질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냐 공수처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법이냐를 놓고 잇속을 따지고 있는 것이다.

정개특위 위원장을 맡아 ‘(자한당을 제외한) 4당 공조’를 지속하는 게 나을지, (어차피 자한당을 제치고 선거법을 일방 처리할 수 없으니) 권력 기관 개편에 무게를 싣는 게 나을지 주판알을 튀기고 있는 것이다.

사실, 민주당에게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자한당을 제외한 나머지 야당들과 의회 공조 블록을 형성하기 위한 임시방편 같은 것이다. 민주당은 다당제보다 양당 체제를 선호한다.

반면,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은 문재인의 큰 관심사다. 대선 때 제1번 권력 기관 개혁 공약이었다. 국회 시정연설과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그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근 조국 민정수석의 법무부장관 기용설이 정국의 핫 이슈로 부상한 것도 공수처 신설에 힘을 싣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그래서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이원욱은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이 더 우선적이라고 말했다. “[선거제 개편은] 소수 의석 정당들이 표를 많이 받게 하는 정치개혁이고,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은] 노무현 전 대통령 때부터 주장해 왔던 의제였기에 사법개혁 포기는 당 지지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 있다.”

지난해 12월 민주당 당시 원내대표 홍영표도 정의당 등을 배신하고 자한당과 손잡고 예산안을 통과시킨 것을 이렇게 정당화했다. “선거법은 국회의원 밥그릇이고 예산은 국민 밥그릇[이다.]”

민주당은 7월 초 의원총회에서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민주당의 얍삽한 이해관계를 따져보건대, 사개특위 위원장 자리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수처 설치나 검경 수사권 조정은 노동계급이 지지해야 마땅한 진보적인 개혁이 못 된다. 권력자들 간의 파워게임일 뿐이다. 반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노동계 정당들에 이로운 선거 제도다.

민주당이 사개특위 위원장 자리를 선택한다면, 민주당의 반진보·반노동 성격을 다시 한 번 보여 주는 게 될 것이다. 

정의당 지도부는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 노선을 철회해야 한다

교섭단체 합의문에 정개특위 위원장 교체가 포함되리라고 미처 예상치 못했던 듯, 정의당 지도부는 민주당에 극심한 배신감을 드러냈다. 윤소하 원내대표는 6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그러고도 무슨 놈의 협치를 얘기하는가” 하고 격노했다.

그동안 정의당 지도부는 계급투쟁보다는 “반개혁” 세력과의 투쟁을 우선하며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 수위를 조절했다. 당원들 사이에서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질 때도 당 지도부가 애써 비판 수위를 낮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인사 청문회에서 ‘정의당의 데스 노트’가 적중률이 높았던 것도 역설적으로 ‘정의당도 안 된다고 할 정도’의 인물이 대상이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만큼 정의당 지도부가 정부 비판을 자제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민주당에 대한 태도 문제는 정의당 대표 선거에서 뜨거운 쟁점이 돼 있다.

7월 1일 정의당 당대표 후보 토론회에서도 당 전략과 노선을 두고 토론이 치열했다.

주류 사회민주주의자인 심상정 후보는 “선명한 이념”이나 “급진성”이 아니라 “실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현실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수구세력을 퇴출하고 1800만 촛불의 대표 정당을 민주당에서 정의당으로 바꿔야 한다”는 점을 부각했다.

정의당이 애착하는 선거제 개편을 민주당이 배신한 지 3일 뒤에 열린 토론회였는데도, 심상정 후보의 민주당 비판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노동계급을 위한 약간의 사회개혁을 이룬 적도, 그렇게 할 의지와 능력도 없다. 지배계급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제 위기의 심화 때문에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노동자 대중에게 새로운 개혁들을 제공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한때 줬던 것조차 빼앗고 있다. 최저임금과 탄력근로제 개악 시도를 보라. 

따라서 우파의 반발에 민주당이 사실상 항복하고 대중의 진보 개혁 염원을 파렴치하게 배신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거나 일시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러므로 정의당은 민주당을 “개혁 동맹”으로 삼는 자기패배적 모토를 버려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토론회에서 좌파적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대변하는 양경규 후보는 정의당이 “착한 민주당”처럼 행동하다 이번에 민주당에 배신당했다고 지적했다. 양 후보는 “수구세력 퇴출”을 앞세우면 자한당을 누르기 위해 민주당과 공조해야 한다는 압력이 커지게 되므로 정의당의 선거에 어려움을 준다고 옳게 비판했다.